지난달 4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에서 우주인과 기술자들이 오리온 우주선 모형 안에서 착륙 훈련을 하고 있다. 오리온은 2040~50년 4명의 우주인을 화성에 데려다줄 목표로 나사가 개발중인 차세대 유인 우주선이다. 나사/라디슬라브 시니악 제공
화성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화성의 날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의 별’이라는 이름과 달리, 화성은 사실 굉장히 추운 곳이다. 지구보다 태양으로부터 1.5배 멀고, 대기가 얇기 때문에 기온이 지구에 비해 전체적으로 낮다. 극지방의 경우 영하 143도에 이를 정도다.
뜨거운 것은 바로 화성에 대한 지구인들의 관심이다. 지난해 영화 <마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료 5명과 화성에 착륙했다가 홀로 고립된 우주인의 이야기다. ‘핫’한 억만장자들인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는 화성을 두고 한판 붙을 태세다. 전기차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머스크는
“2025년까지 인간을 화성에 보내겠다”고 호언하고 있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의 최고경영자인 베조스도 “화성 이주는 멋진 일”이라며 관심이 높다. 돌아오지도 못할 최초 화성인 24명을 뽑겠다는 한 유럽 민간단체(마스원)의 계획에 20만명 넘는 사람이 몰리고, 하와이에 만든 가상의 화성 기지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끈다. 19세기말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우주전쟁>(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이 큰 인기를 끈 이후 이렇게 달아오르기는 오랜만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끝난 그때와 지금, 차이가 있을까? 화성은 우리 곁에 얼마큼 다가온 것일까?
코끼리 26마리 드는 힘의 안전시스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디디며 “이것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화성에 내딛는 인간의 첫발은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핵심은 당연히 우리를 화성까지 실어다 줄 우주선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우주 탐사선, ‘오리온’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최기혁 달탐사사업단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나라 정부와 민간에서 화성 탐사를 말하지만, 세계 각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고려했을 때 미국의 오리온은 현재 실현 가능한 유일한 유인 화성 탐사선으로, 나사의 1순위 사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인류의 화성까지 여정,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를 우주선 오리온을 해부해 보았다. 나사는 2030년대에 유인 화성 궤도 비행을 마치고 2040~50년에 화성 땅을 밟겠다는 계획이다.
1969년 7월20일, 우주선 ‘아폴로’는 암스트롱을 달에 보냈다. 1961년 소련의 최초 유인 우주비행에 자극받은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인 아폴로는 1960~70년대를 주름잡은 미국의 유인 우주선이었다. 이후 미국의 유인 우주계획은 ‘우주왕복선’이 건네받았다. 비행기 같은 형태의 우주왕복선은 한번 사용으로 소모되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1980~2000년대에 걸쳐 사용되었다.
달에 처음 인간을 보내고(아폴로), 우주정거장에 과학자들을 실어 나르고 데려왔던(우주왕복선) 이들의 영광은, 우주인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 아폴로는 1호부터 사고로 출발했다. 훈련 도중 일어난 화재 사고로 3명의 우주인이 숨졌다. 1986년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이륙 73초 만에 공중 분해되어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당시 이륙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2003년에는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이 우주로부터 지구 돌입 중에 사고가 발생해 우주인 7명이 숨졌다. 우주왕복선은 2011년 완전히 퇴역했다.
유인 우주탐사라는 선배들의 막중한 임무를 이어받은 오리온의 첫 번째 특징은 이런 희생을 막기 위해 고안된 안전장치이다.
발사중단시스템(LAS·Launch Abort System)이라는 이름의 이 시스템은 오리온의 앞머리를 차지하는 뾰족한 부분인데, 깔때기와 같이 생겼다. 깔때기의 넓은 부분이 우주인들이 타는 ‘승무원 모듈’과 결합하는데, 특수재질 몸체가 모듈을 감싸 주변의 열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한다. 로켓 추진체 등이 폭발하는 최악의 경우, 깔때기는 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 단위 시간에 순간적으로 약 18만 킬로그램힘(kgf·지구 표준중력가속도에서 1㎏ 물체가 받는 힘)의 추진력을 발생시켜 승무원 모듈을 로켓으로부터 떼어내 도망시킨다. 이는 코끼리 26마리를 들어올리는 힘으로 레이싱 자동차보다 42배 빠르게 가속하는 정도다. 이후 이 안전장치는 폭발 지점으로부터 먼 곳으로 승무원 모듈을 향하게 한 뒤, 튕겨 보내서 안전한 곳에 낙하산을 펴고 내려앉게 해준다.
발사중단시스템이 전에 없던 인상적인 기능이긴 하지만, 오리온의 핵심은 역시 승무원이 탑승하는 ‘승무원 모듈’과 주요 기능을 맡는 ‘서비스 모듈’이다. 승무원 모듈은 영화 <마션>의 우주선과 마찬가지로 최대 6명이 탑승할 수 있다. 첫 화성 비행 때에는 4명이 탑승할 계획이다. 모듈은 원뿔에서 뾰족한 부분을 잘라낸 것처럼 생겼다. 달에 갔던 아폴로와 같은 형태다. 승무원들은 모듈을 바닥에 두었을 때 하늘을 바라보고 눕는 방식으로 탑승하게 된다. 하지만 지표면에서 위를 향해 나아가는 탈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눕는다기보다는 앉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우주 공간을 날고 있는 오리온호의 개념도. 나사(NASA) 제공
‘2000개→60개’ 줄어든 스위치
모양은 아폴로와 유사하지만 오리온은 수십 년 사이 등장한 신기술들로 무장했다. 단적인 예가 조종석이다. 아폴로의 경우 2000개에 달하는 무수한 스위치들이 배열돼 보는 이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면, 오리온은 세 개의 터치스크린을 중심으로 단순화시켰다. 개발진의 리 모린 박사는 “스위치를 60개로 줄였다. 그만큼 이를 연결하는 내부의 전선 회로도 단순화시켰는데, 설계의 유연성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모듈은 격렬한 발사 때와 2700도에 달하는 고온을 견뎌야 하는 대기권 재돌입 때 우주인들이 자리 잡는 곳이기 때문에 단일벽 탄소 나노튜브와 같은 첨단 소재 기술도 도입됐다.
승무원 모듈의 공간은 바닥 지름 5m에 높이가 3m 정도다. 화성까지 가는 내내 이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면, 승무원들은 절반도 못 가서 서로 잡아먹을지 모른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둘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6~8개월가량 걸릴 전망이다. 이 때문에 우주선이 일단 우주 공간에 진입하고 난 뒤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부착하는 방안도 구상되고 있다. 이를 ‘심우주 주거공간’(deep space habitat)이라고 한다. 심우주란 지구로부터 달 사이의 비교적 ‘앞마당’에 해당하는 우주와 대비해서 먼 곳의 깊은 우주를 뜻하는 말이다. 오리온은 계획대로면 인류 최초의 ‘심우주 유인 탐사선’이 되기도 한다.
나사는 지난해 ‘탐사 파트너들의 차세대 우주기술’(NextSTEP)이라는 계획에 따라 민간회사들의 주거공간 개발 아이디어를 공모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몇 가지 계획들이 제안됐다. 대표적인 구상을 보면, 원통형의 주거공간과 그만큼 늘어난 무게를 감당할 극저온추진엔진 등이 오리온 머리 부분 앞에 부착되는 형태다. 부착 방법은 지구 궤도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 필요한 부품들을 미리 올려놓고 오리온을 띄운 뒤 정거장이나 부근에서 결합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주거공간은 장기 탐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머물 뿐이다. 최기혁 단장은 “화성 항해와 귀환까지 승무원은 모두 1년 반 넘게 우주 공간에 머물게 되는데 이 경우 신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또 밀폐된 공간에서 6명이 장기 생활할 경우 발생하는 갈등과 스트레스도 사회과학 연구 분야”라고 말했다.
서비스 모듈은 태양광 패널이 날개처럼 달린 뒷부분으로, 승무원 모듈에 결합해 우주 공간에서 오리온에 추진력을 제공한다. 또 실험하는 데 쓸 전기를 생산·저장하고 공기와 물, 적절한 온도를 우주인에게 제공하는 생존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이런 무거운 우주선을 지금껏 인간이 밟아보지 못한 공간까지 날려 보내려면 추진 로켓도 강력해야 한다. 미 항공우주국은 오리온을 위한 초대형 추진체도 새로 만들고 있다. 이는 우주발사시스템(SLS·Space Launch System)이라고 부른다. 이 로켓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강력한 로켓이 될 전망이다. 2011년 계획이 처음 공개돼 한창 개발 중인 이 로켓은 최종 화성 탐사 시기까지 4단계에 걸쳐 점차 강화되며 개발될 계획이다. 최종 단계인 ‘블록2 카고’의 경우 순간적으로 140톤을 지고 날아오를 수 있다. 아폴로를 우주로 보냈던 새턴V 로켓도 한때 140톤 무게를 싣고 발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발사 시스템은 새턴V에 비해 더 효율이 높고 조립이 쉬우며 저렴하게 설계됐다. 오리온과 우주발사시스템의 설계는 치밀하다. 그렇다면 계획은 현재 어떤 단계에 와 있을까? 실현 가능성은 있는가?
오리온에 ‘심우주 주거공간’(Deep Space Habitat)을 결합한 모습. 왼편의 오리온호 앞머리로 추가 추진엔진과 주거용 공간들이 붙어 있는 모습이다. 나사(NASA) 제공
“나사가 너무 서두르고 있다”
오리온은 현재 나사의 의뢰를 받아 민간제조사 록히드마틴이 만들고 있다. 지난 1일 록히드마틴은 오리온 함체 외벽에 추진용 튜브 용접을 다는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오리온이 계획대로 조립 중이라는 뜻이다.
2014년 12월, 나사는 오리온 완성 앞에 놓여 있던 가장 큰 언덕 가운데 하나를 넘었다. 실험용 오리온의 첫 우주 공간 발사 실험이다. 사람을 태우지 않은 오리온은 지구 궤도에서 4시간24분 성공적으로 비행하고 태평양에 계획대로 착수했다.
2030년 화성 비행 계획의 차질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은 우주발사시스템에 오리온을 실어 쏘아 올리는 2년 뒤다. 2018년 11월, 오리온은 달을 돌고 지구로 되돌아오는 경로를 날 예정이다. 아직 사람은 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달 궤도에 6개의 큐브샛(정육면체 모양의 인공위성)을 올려놓는 임무도 수행한다. 최초 유인 비행은 5년 뒤인 2021년이 목표다. 4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달을 돌 계획이다. 2026년에는 최초의 심우주 유인 탐사를 시도한다. 지구 주변으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향해 우주인이 날아가 경로 조정 가능성 등을 실험한다. 그리고 2030년대에 오리온은 드디어 화성을 목표로 출항하게 된다.
물론 나머지 과정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온갖 천재들이 모인 나사에서도 끊임없이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역사를 보면 개발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련한 사업가인 머스크의 민간 로켓기업 ‘스페이스엑스(X)’도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의 아끼는 위성이 실려 있던 팰컨9 로켓의 폭발 사고를 막지 못했다.
성패를 결정하는 다른 중요한 문제는 돈이다. 오리온은 애초 조지 부시 행정부의 우주계획인 ‘컨스털레이션(별자리)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우주정거장과 달을 거쳐 심우주를 잇는 거대한 장기 유인 우주탐사 계획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너무 많은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이 계획을 취소했다. 당시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허덕이던 상황이었다. 오리온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미국 회계감사원은 지난 7월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감사원은 “나사가 이 계획을 서둘러 성공시키고자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필요보다) 예산이 부족한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는 우주발사시스템이 너무 비싸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우주발사시스템에는 개발에서 2018년 첫 발사까지 모두 70억달러(약 7조7000억원)가 들 전망이다. 우주접근협회(Space Access Society) 같은 민간단체들은 “나사가 너무 많은 예산을 이 로켓에 투자해 다른 우주 프로젝트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며 “로켓은 민간에 맡기고 나사는 다른 곳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머스크는 25억달러만 있으면 더 강력한 140~150톤급의 로켓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미국 의회에서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일부 있다. 하지만 민간의 화성 탐사 시도에 대해 최 단장은 “기업은 비용을 이유로 안전에 들어갈 예산을 삭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섣부른 접근은 위험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2030년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영화 <마션>과 같이 화성 흙으로 감자를 기르는 것 같은 일은 바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화성 궤도까지 인간을 보내는 것 못지 않게, 인간이 화성 땅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화성은 지구 절반 크기에 중력은 3분의 1 정도이지만, 탈출하려면 5㎞/s의 속도를 내야 한다. 소설 <마션>을 보면 나사는 우주인이 화성 땅을 밟기도 전에 미리 귀환용 로켓을 화성 땅에 떨구어 놓는다는 설정을 제시한다. 나사는 이르면 2040년대에 화성을 밟겠다는 목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지난 8일 찍어 10일 공개된 사진. 화성 샤프산 근처로 멀리 뿌연 먼지 사이로 보이는 곳은 게일 분화구 가장자리다. 흐르는 물의 흔적이 발견된 화성은 태양계에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나사 제공
화성이 들려줄 대답
이런 난관들에도 굳이 화성을 가야 할 이유란 무엇일까? 화성이 하루가 24시간37분으로 지구와 비슷하고, 뜨거운 금성이나 구름 행성인 목성에 비하면 그래도 살 만한 행성이라는 점이 하나의 매력이다. 덕분에 무서운 속도로 지구 자원을 소모하는 인간이 개척할 새 거주지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미래의 경제성과 달리 현재의 개척에 앞장서고 있는 과학자들은 다른 이유를 꼽는다. 미 항공우주국의 선임과학자인 엘런 스토팬은 화성 탐사의 이유에 대해 나사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는 인류가 오래도록 숙고해온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인가? 다른 세계에서도 생명이 자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생명 자체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 말이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사람이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과 조우하는 순간, 인류 역사는 새로운 장에 접어들지 모른다.
글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