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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26일 밤 8시33분’을 걱정하시는 분들께

등록 2016-09-23 20:28수정 2016-09-25 16:31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이근영
미래팀 선임기자 kylee@hani.co.kr

자연재해 때마다 찾아뵙는 ‘재난 전문기자’입니다. 지난 7월 ‘울산 지진은 대재앙의 전조일까요?’라는 질문에 “울산 앞바다의 잦은 지진이 큰 지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요. 사과 말씀을 올려야 할까요? 물론 경주와 100㎞ 떨어져 있는 울산 지진이 경주 지진의 전조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해에서 근래 잦아진 지진이나 울산 지진, 기상청 관측 사상 최강의 경주 지진 발생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기여했다는 점에서 울산 지진을 경주 지진의 예고편으로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산 지진은 대재앙의 전조가 아니라는 얘기를 더 큰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단정으로 읽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다 보니 24일 밤 또는 26일 밤 8시33분께 또다시 큰 지진(여진)이 올 것이라는 루머조차 딱 잘라 “아니다”라고 말하기 두려워지네요. ‘일본 지진감지 프로그램 그래프’라는 것도 황당하지만, 12일 규모 5.8 지진이 일어난 시점이 저녁 8시32분54초였고 19일 4.5 여진이 발생한 시점이 저녁 8시33분58초라는 우연성 때문에 일주일 뒤인 26일 저녁 같은 시각에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추정이지요.

혹시나 해서 조사해 봤어요. 22일 밤 10시까지 발생한 규모 2.0 이상의 지진 141건이 일어난 시간대를 분류해보니, 34건이 저녁 8시부터 8시59분 사이에 일어났어요. 141건이 24시간대에 고르게 일어났다면 1시간에 평균 약 6건이 발생했겠지요. 34건이면 저녁 8시대에 평균의 5배가 넘는 엄청난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착시예요. 34건 가운데 31건이 12일 저녁에 일어났어요. 규모 5.1 전진이 일어나고 5.8 본진이 일어난 사이에, 또 본진 뒤에 숱한 여진이 이어진 것이지요. 규모를 2.5 이상으로 좁혀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요. 모두 42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3건이 저녁 8시대에 일어났는데, 이 가운데 21건이 12일 저녁에 발생한 거예요.

하지만 “26일 저녁 8시33분에 여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못박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한 길 사람 속은 짐작이라도 해볼망정 10㎞ 땅속은 알 길이 없기 때문이지요. 지진이 일어날 것을 단 몇초 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는 1960년대부터 수십년 동안 1조원을 쏟아부으며 첨단기술을 개발했지만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난 뒤 지진 발생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 연구팀은 자연 방사성 기체인 라돈이 지진의 전조를 나타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이탈리아 라퀼라에서도 2009년 한 측량기사가 라돈 배출량으로 지진을 예고한 일이 있었는데, 전문가들이 이 사람을 설렁설렁 조사하고서 “엉터리”라고 선언한 일이 있었어요. 공교롭게 일주일 만에 규모 6.3 지진이 일어나 309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지요. 사망자에는 잘못된 정보를 받고 대피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29명이 포함돼 있어요. 그렇다고 라돈으로 예측한 지진의 전조가 맞은 건 아니에요. 지진은 애초 예측했던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진 발생 8초 전에 주민에게 통보해주는 지진 조기 예보 시스템인 ‘셰이크 얼러트’(ShakeAlert) 사업을 구축했다고 해요. 자신이 사는 곳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마이 셰이크’라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것도 지진을 미리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진이 발생한 뒤 지진파보다 훨씬 빠른 전기신호로 주민에게 알리겠다는 거예요. 지진파는 P파가 먼저 온 뒤 S파가 오는데, 피해는 S파 때 발생해요. P파가 감지된 뒤 S파가 오기 전 몇초 동안 빨리 알려주면 대비를 할 수 있겠다는 거지요. 일본에서도 이것을 이용해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어요.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요?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은 “규모 5.8이면 반경 10㎞, 규모 6.5로는 반경 30㎞에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30㎞면 P파와 S파 사이가 5~6초밖에 안 된다. 내가 피해 지역에 있다면 조기경보 받아서는 소용이 없다. ‘어~’ 하다 보면 지나갈 것이다”라고 말해요. 정보를 빨리 알면 심리적 안도감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 면에서 도움이 되겠지만 예방 효과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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