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3일 도쿄에서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을 가진 뒤 활쫙 웃고 있다. EPA/도쿄 연합뉴스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특히 분해라는 게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몸에선 늘 분해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거죠.”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스미 요시노리(71) 일본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는 3일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과 한 전화통화에서 수상 배경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손을 대는 자신의 신념을 꼽았다.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물질의 생성 등 무엇이 만들어지는 것을 연구할 때, 그는 한발 떨어져 생명의 또다른 중요한 현상인 분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3일 오스미 교수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하며 “세포 조직의 분해와 재활용이라는 기본적 과정인 ‘오토파지’라는 현상의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노벨위원회는 “오스미 교수의 발견은 세포가 어떻게 세포 내 물질을 재활용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냈다”며 “그의 발견은 감염에 대한 반응 등 여러 생리과정에서 오토파지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오토파지는 자신의 불필요한 성분을 스스로 잡아먹는 것으로 ‘자가포식(자식) 작용’이라 부른다. 이를 이용하면 실제 정상 세포와는 다른 암 세포를 잡아먹는 치료제를 만드는 등 여러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 백찬기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자식작용은 최근 암, 근육기능 이상 질환, 퇴행성 신경질환, 감염질환, 노화 등 다양한 질병에 관여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런 작용과 관련된 질병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항암제 및 신경질환 치료약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성공하면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과 이상 반응을 최소화하면서 질병은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미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최근 오토파지를 통해 단백질의 재활용(리사이클)뿐 아니라 우리 몸의 위험한 단백질을 적극적으로 파괴해 세포를 깨끗하게 하는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예로 신경세포에서 유해한 단백질이 분해되지 못하고 축적되면 파킨슨병 등이 발병한다는 사실이 후속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낸 일본 사회는 다시 한번 큰 기쁨에 빠졌다. 이로써 일본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25명으로 늘었다. 일본 언론들은 “1980~90년대에 일본에서 이뤄진 여러 과학적 성취가 많아 올해도 (의학상 외에도) 물리학상·화학상 등 여러 분야에서 수상이 예상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엔에이치케이>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일본인의 단독 수상은 29년 만”이라며 이번 수상을 한층 더 반겼다.
과학 분야뿐 아니라,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올해 일본인으로 세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다. 평화상 분야에서도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시민들’의 수상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오스미 교수는 1945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1967년 도쿄대 교양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록펠러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오토파지 현상을 집중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8년 도쿄대 조교수 등을 거쳐 2014년부터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로 재직해 왔다. 그는 이날 밤 요코하마의 도쿄공업대 연구실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기초 생물학 연구를 이어온 나같은 사람이 이런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 젊은이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스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느낀다”며 축하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