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과학
마음 이론
마음 이론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무도리 고(Go)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여러 출연자들에게 찾아갈 목표 지점들을 지정해 주고 다른 사람이 어디 갈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지점을 자유롭게 찾아가도록 하는 게임을 벌였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은 오직 사람만 갖고 있다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으나, 최근의 연구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체도 그런 능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한도전’ 무도리 고 특집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 진화학과 고인류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이미 20세기에 ‘인간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의 후보를 추리고, 이에 걸맞은 특성을 지닌 초기 인류 화석을 찾고자 노력했다. 인간이 자연의 중심이며 진화의 최종 결과라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상식’을 뿌리째 뒤흔드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과연 ‘인간의 조건’이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인간이 진화 종착점이라 주장하나
고릴라에게 문자 가르칠 수 있고
새도 언어 비슷한 노래 만들어내
대형 유인원도 다른 개체의 의도
파악할 수 있다고 ‘사이언스’ 보도
침팬지도 ‘마음 이론’ 적용될 수도
문화는 인류 독점적 특성 아니다 그럼에도 인류가 다른 생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인간만의 고유하고도 우월한 특성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지 연구하는 진화학자와 고인류학자는 이런 특성의 존재를 가장 열심히 탐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20세기에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의 후보를 추리고, 이에 걸맞은 특성을 지닌 초기 인류 화석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런 특성의 흔적을 지닌 화석은 고인류학자들의 ‘성배’였는데, 최초의 인류를 찾기 위한 여정은 바로 이 성배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들의 격렬한 논쟁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류의 특성 후보는 크게 네 가지였다. 큰 두뇌(빼어난 지적 능력), 두 발로 걷는 능력,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그리고 도구 사용이다. 우선 도구부터. 인류가 속한 직계 ‘가문’에 속할 최초의 인류 후보를 찾던 영국 태생의 고인류학자 메리와 루이스 리키 부부는 1960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부서진 두개골 일부와 아래턱뼈, 치아, 그리고 부서진 손가락뼈 화석을 발견했다. 새로운 인류 화석이었다. 마침 이 지역에서는 돌로 만든 조악한 도구도 많이 발견됐다. 이 미지의 인류가 바로 석기를 만든 주인공이라고 확신한 리키 부부는 1964년 과학잡지 <네이처>에 새 화석을 발표하면서 ‘호모 하빌리스’(손 쓴 인간)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키가 이 종을 자신있게 새로운 호모 속 인류로 분류하고 이름까지 붙여준 데에는, 도구를 쓰는 게 인류의 중요한 특징이자 조건이라는 당시의 인식도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동물행동학 연구 결과는 도구가 인간의 조건이라는 미신을 깨고 있다. 도구를 쓰는 건 생각보다 고급 기술이 아니며, 인류만이 그 과제를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 거의 모든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 19세기부터 보고된 특성이다. 도구로 삼는 재료도 나뭇가지와 나뭇잎, 풀, 돌 등 다양하다. 이들은 긴 나무나 풀로 물이나 꿀, 개미 등을 먹고, 돌을 이용해 단단한 견과류를 깨먹는다. 코트디부아르의 열대우림 내 침팬지 유적을 연구한 영국 레스터대 연구팀의 2007년 논문에 따르면, 침팬지가 도구로 돌을 쓴 흔적의 연대는 43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침팬지가 인간에게 배워서 도구를 쓴 게 아니다”라며 인류와 침팬지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성일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짧은 노랫가락 전하는 십자매 침팬지와 가까운 대형 유인원인 보노보 역시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밝혀졌다. 긴 나무나 돌, 뿔 등으로 땅을 파기도 하고, 돌로 뼈를 부숴 골수를 빼먹는다. 인류의 조상이 했으리라 짐작하고 있는 도구 사용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유인원만의 일도 아니다. 조류인 까마귀 역시 도구를 쓴다. 까마귀는 깊은 곳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긴 물건을 적절히 구부려 갈고리처럼 만든 뒤에 꺼내 먹는 수준으로 응용도 한다. 지난 19일 <네이처>에는 브라질의 원숭이도 돌을 깨 구석기와 꼭 닮은 돌조각을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물론 명확하게 도구로 사용할 의도를 가지고 돌을 깼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언어는 어떨까. 역시 여러 동물에서 다양한 수준의 의사소통용 언어가 발견된다. 침팬지의 경우 서아프리카에서 중부아프리카까지 모든 집단이 언어를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언어가 다르다. ‘사투리’가 있는 셈이다. 고릴라에게는 문자를 가르칠 수 있고 이를 이용해 간단한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장류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드러났다. 새에게서 언어의 흔적을 찾는 학자도 있다. 명금류(노래하는 새)에 속하는 십자매는 짧은 노랫가락을 일정한 문법 규칙(순서)에 맞춰 조합해 다양한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이를 교육을 통해 아래 세대에 전수하기도 한다. 십자매는 동남아시아의 야생종을 길들인 것인데, 길들인 새(십자매)가 야생종보다 복잡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노래를 연구하는 오카노야 가즈오 일본 도쿄대 교수팀에 따르면 길들여진 새는 야생에서보다 생존의 위협이 적으며, 따라서 수컷은 암컷이 좋아하는 복잡한 노래를 부르는 데 에너지를 더 쏟을 수 있다. 복잡한 노래 혹은 언어가 반드시 두뇌가 발달한 인류에게서 독점적으로 태어날 이유는 없다. 성선택 등 언어가 진화할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면 작은 새도 언어에 준하는 복잡한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류의 고유한 특성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두 발 걸음과 큰 두뇌다. 이 가운데 두 발 걸음은 아직까지 인류와 비교할 만한 동물이 없다. 침팬지와 고릴라 등 대형 유인원 일부가 두 발로 걷지만, 평소 네 발로 걷다가 잠깐씩 손을 들고 걷는 것일 뿐 일상적인 이동 방법은 아니다(이런 식이라면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종종 두 발로 선다). 두뇌 용량의 급격한 증가 역시 다른 대형 유인원과 인류를 가르는 명백한 특성이다. 두뇌 용량의 증가 시기와 특성이 다른 유인원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장자크 위블랭 박사팀이 2015년 ‘영국왕립학회 철학회보B’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류의 두뇌 크기는 약 200만년 전까지 비교적 일정하다가(침팬지보다 약간 크다), 그 이후부터 커지기 시작한다. 대략 우리의 직계 조상 호모 속이 등장한 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때는 몸집도 함께 커졌기 때문에 체격 대비 두뇌 크기 비율이 급히 늘어난 것은 아니다. 체격 대비 두뇌 크기가 증가한 시기는 약 60만년 전부터다(크리스토퍼 러프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팀의 1997년 <네이처> 논문). 어느 쪽이든 이미 인류가 다른 유인원과 결별한 뒤에 일어난 일로, 인류 고유의 특성임은 분명하다. 호모 에렉투스는 빗살무늬 그림 남겨 하지만 과학은 명석한 두뇌에 대한 신화마저 해체하며 계속 인류의 특권적 지위를 박탈하고 있다. 지난 7일 과학잡지 <사이언스>에는, 대형 유인원이 다른 개체에게도 자신과 다른 의도나 욕망, 믿음, 지식 등 속마음이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함을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흔히 ‘마음 이론’이라고 부르는 능력이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으로, 그동안 오직 사람만 갖고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예를 들어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무도리 고(Go) 특집 프로그램을 보자. 피디(PD)는 여러 출연자들에게 찾아갈 목표 지점들을 지정해 주고 다른 사람이 어디 갈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지점을 자유롭게 찾아가게 했다. 다만 각각의 지점을 가장 먼저 찾은 사람만이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출연자들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다른 출연자를 따돌리며 목표 지점을 향했다. 하지만 작전에 실패해 번번이 허탕을 치는 출연자가 있었고, 이들 모두의 동선과 의도를 훤히 알고 있는 시청자는 출연진의 잘못된 판단과 그에 따른 허탕을 보며 재미있어했다. 여기에서 출연진의 의도(속마음)를 알아채는 시청자의 능력이 바로 마음 이론이다. 이 능력 덕분에, 시청자들은 출연진의 생각이 현실과 불협해 어이없이 틀림을 알고 재미를 느낀다.
침팬지의 경우 서아프리카에서 중부아프리카까지 모든 집단이 언어를 사용할뿐더러, 다른 개체의 속마음을 추정하는 능력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AP 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