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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부엌을 돌려 파티를 할까? 서재를 돌려 낭독회 할까?

등록 2016-10-31 11:01수정 2016-10-31 11:13

[미래] 커버스토리
공유주택의 진화
cities_세계적으로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심화하면서 임대료가 높아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 공유주택이 떠오르고 있다. 공유주택은 단순히 돈을 아끼자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교류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다. 최근 등장하는 다양한 공유주택들은 어떻게 교류를 활성화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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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엠베가 제안한 ‘미니리빙'은 ‘유닛'을 이용해 닫으면 사생활을 즐기고(왼쪽), 열면 적극적으로 이웃과 교류할 수 있게 도와준다(오른쪽). 베엠베는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주간 2016’에서 이 콘셉트를 공개했다.
베엠베가 제안한 ‘미니리빙'은 ‘유닛'을 이용해 닫으면 사생활을 즐기고(왼쪽), 열면 적극적으로 이웃과 교류할 수 있게 도와준다(오른쪽). 베엠베는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주간 2016’에서 이 콘셉트를 공개했다.
“개인이 꾸민 선반에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습니다. 그 선반을 공유하면 어떨까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인 선반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는 곧바로 공유주택의 한 형태로 진화했다. 일본의 건축디자인업체 온디자인(ondesign)은 30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개인의 취향이 담긴 선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공유공간을 더욱 즐겁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온디자인의 이 아이디어는 지난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주간 2016’에서 자동차회사인 베엠베(BMW)가 제안한 ‘미니리빙'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온디자인은 베엠베의 ‘미니리빙' 프로젝트의 건축디자인 부문에 참여했다.

자동차회사가 왜 주거에 뛰어들었느냐는 질문에 베엠베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항상 도시에서 공간의 창의적 사용법을 고민해왔다. 자동차 ‘미니'도 바로 그 질문에서 나온 답이다. 도시에서 매력적이면서도 가격이 적당한 집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해 미니리빙을 제안한다.”

특정 도시공간으로의 인구 쏠림 현상은 임대료를 대폭 올리면서 주거비용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남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그 비용을 나누자는 취지로 시작된 공유주택은 도시화가 거세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니리빙도 그중 하나다.

베엠베가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 2016’에서 공개한 ‘미니리빙'의 모형집. 바깥으로 접히는 선반 ‘유닛’이 여럿 달려 사생활의 공개로 이웃과 내밀한 교류를 꾀할 수 있다.
베엠베가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 2016’에서 공개한 ‘미니리빙'의 모형집. 바깥으로 접히는 선반 ‘유닛’이 여럿 달려 사생활의 공개로 이웃과 내밀한 교류를 꾀할 수 있다.
내 사생활은 ‘필요할 때만’ 보여줘

미니리빙의 개념은 30㎡(9평)의 개인공간을 기본으로 한다. 이 방에는 바깥으로 접히는 선반 ‘유닛’이 여럿 달려 있다. 여기서 유닛이란 부엌이나 서재 등의 기능을 담은 채 바깥쪽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든 벽체의 일부를 의미한다. 유닛을 바깥의 공유공간 쪽으로 회전시키면 그대로 사생활을 이웃에 공개해 더 내밀한 교류를 꾀할 수 있다.

미니리빙은 기본적으로 3개 이상의 개인공간이 모여야 완성된다. 3개의 방과 공유공간이 모두 모인 공간은 아파트 내부의 실내공간일 수도, 정원과 같은 실외공간일 수도 있다. 개인공간의 벽체는 유닛화되어 공유공간 쪽으로 회전시켜 열 수 있다. 부엌, 서재, 오디오 시스템 같은 각각의 유닛은 바깥쪽 공유공간으로 열리면서 개방돼 방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연결해준다. 유닛을 열면 이웃을 집 안으로 초대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문자 그대로 활짝 열어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한 방에서는 부엌 유닛을, 다른 방에서는 오디오 시스템을 공유공간 쪽으로 활짝 연다면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고 파티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엌을 공유한 사람의 경우 자신만의 조리도구를 이용해 평소에 즐기던 요리를 쉽게 대접할 수 있고, 오디오 시스템을 공유한 쪽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서로의 취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건축디자인업체 온디자인의 ‘미니리빙' 아이디어 스케치. 각각의 방에서 오디오 유닛과 찬장 등을 개방해 공유공간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 그림 온디자인 제공
일본의 건축디자인업체 온디자인의 ‘미니리빙' 아이디어 스케치. 각각의 방에서 오디오 유닛과 찬장 등을 개방해 공유공간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 그림 온디자인 제공
보통의 공유주택은 사적인 공간과 공유공간이 ‘독립형'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 두 공간을 적절히 섞어 ‘하이브리드'형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미니리빙만의 특징이다.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요소를 이웃들에게 활짝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은 교류의 강도를 확연히 높인다. 특히 원하는 때 원하는 정도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미니리빙의 큰 장점이다.

베엠베가 제안한 ‘미니리빙'
하이브리드형 공유주택 화제

책장, 조리도구, 오디오…
자기 방 선반을 열면
함께 즐기는 공유공간 탄생

온디자인은 미니리빙을 사용하는 시나리오 하나를 소개했다. “① 오후 2시입니다. 일부 선반을 열고 이웃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서재를 열어 이웃들과 함께 일을 합니다. ② 저녁 8시가 되었습니다. 그와 이웃들은 모든 유닛을 전부 열었습니다. 파티가 시작됩니다. 한쪽에서는 요리를 하고, 한쪽에서는 음악 공연이 펼쳐집니다. 서로의 유닛을 활용하니 공유공간의 사용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③ 밤 11시는 잠자는 시간입니다. (미니리빙에 거주하는) 그는 모든 유닛을 닫고 사적인 시간을 즐깁니다.”

온디자인 쪽은 “우리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사용자들에게 자극을 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콘셉트를 만들려 했다. 그런 콘셉트를 ‘선반'을 통해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실용화되는 데 한계는 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회전하는 유닛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 탓에 임대료가 만만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온디자인 역시 “우리가 생각한 타깃은 도시에 사는 젊고 창조적인 독신자들이기 때문에 임대료는 조금 비쌀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개인공간을 위한 작은 유닛 3개 이상을 한꺼번에 수용하려면 큰 아파트나 토지가 필요하다는 점도 한계다. 다만,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국내에서 수요가 줄어든 40평대 이상의 아파트를 활용하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라고 폄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울러 공유라는 삶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건축디자인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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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집은 ‘다운로드’(소유)보다는 ‘스트리밍’(경험) 서비스”

침대 이용권 파는 ‘팟셰어’
개방된 거실에서 밀도 높은 교류
사적 공간 없는 완전개방형

세계적 휴양지에 설치된 ‘롬’
개인 방에선 사생활 보장하지만
커뮤니티 매니저가 사람들 잇는다

도시공간에서의 집은 음악이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변하고 있다. 파일을 완전히 내려받아 소유했다면,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란, 전송되는 데이터가 마치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처리되어 붙은 이름이다. 한번 지나간 데이터는 휘발되어 사라지고, 다시 음악을 들으려면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온디자인이 설명한 ‘젊고 창조적인 독신자들'과 같은 공유주택의 소비자들은 인간관계와 집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행을 하며 아무 곳에서나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유목민’들에게는 어디서 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들은 누군가와 우연히 만나 교류하며 아이디어를 얻는 도시의 순기능을 추구한다.

만남을 주선하는 숙박서비스

미국의 공유주거 업체인 팟셰어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팟셰어는 함께 살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공유숙박시설로서, 가입하면 ‘파데스트리언'이라는 자격을 받아 일종의 팟셰어 `이용권’(access·액세스)을 얻게 된다. 파데스트리언은 미국 할리우드 등 세 지역에 설치돼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팟셰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팟셰어의 엘비나 벡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도시의 트렌드는 소유보다는 접근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뀌고, 자동차는 공유되고, 음식을 잡지 구독하듯 배달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집이 꼭 누군가에 의해 소유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도 되지 않을까요?”

팟셰어에서 침실을 뜻하는 ‘팟'(pod)을 이용하는 비용은 하룻밤에 40~50달러(4만5천~5만6천원). 팟셰어의 침대에는 티브이도 설치돼 있고 짐도 보관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없는 게 있다. 사적인 공간이다. 팟은 그저 침대일 뿐이며, 마치 완전히 개방된 거실에 덩그러니 침대 매트리스를 둔 것처럼 공유공간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는 ‘완전 개방형' 공유주택이다. 아주 단순한 설계다. 다만 의미는 강렬하다.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과 ‘강제로' 밀도 높은 교류를 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팟셰어의 모습. 사적인 공간과 공유공간의 경계가 전혀 없다. 사진 팟셰어 제공
팟셰어의 모습. 사적인 공간과 공유공간의 경계가 전혀 없다. 사진 팟셰어 제공
팟셰어의 침상에는 각각의 이름이 적혀 있다. 서로 자연스럽게 통성명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자료 팟셰어 제공
팟셰어의 침상에는 각각의 이름이 적혀 있다. 서로 자연스럽게 통성명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자료 팟셰어 제공

롬이라는 회사가 내놓은 공유주택도 ‘디지털 유목민'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인도네시아 발리, 스페인의 마드리드, 미국의 마이애미 등 마치 휴가지와 같은 분위기의 공간을 제공하고, 공유주거를 위한 ‘접근권'을 판매한다. 일주일 머무는 데 필요한 돈은 500달러(56만6천원), 한 달에 1800달러(203만7천원)다. 팟셰어와 다른 점은 사적인 공간과 공유공간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는 ‘독립형' 공유주택으로 꾸며졌다는 점이다. 대신 이용자들의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롬은 커뮤니티 매니저를 두고 있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비슷한 관심사의 이용자를 엮어주고 이벤트를 만든다. 이곳에서는 집과 일터의 물리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이용자들이 여행도 즐기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다.

브루노 하이드 롬 대표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용자들은 롬의 공간에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며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곳에서 살아보며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 자신의 예술성을 한껏 올릴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롬의 모습. 이곳에서 사는 ‘주민'들은 여행을 즐기고, 일을 하며 이웃들과 교류를 한다. 사진 롬 제공
인도네시아 발리의 롬의 모습. 이곳에서 사는 ‘주민'들은 여행을 즐기고, 일을 하며 이웃들과 교류를 한다. 사진 롬 제공

모호해지는 나와 이웃의 경계

이 접근권을 바탕으로 이용자는 휴가지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먹고 자고, 일하며 여행지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롬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제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있다. 이제는 물리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커뮤니티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로 바꾸고 있다.”

현재 세계 휴양지 네 곳에 설치된 롬을 찾는 사람은 많다. 마이애미 롬은 항상 꽉 차 있고, 발리 롬은 예약이 넘칠 정도다. 롬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영국의 런던, 일본의 도쿄, 미국 샌프란시스코 4곳에 추가로 공유공간을 낼 예정이다. 모두 좋은 날씨에, 도시의 경제중심지와 가까운 곳이다.

미국 마이애미 롬의 코워킹 공간의 모습. 사진 롬 제공
미국 마이애미 롬의 코워킹 공간의 모습. 사진 롬 제공
앞으로의 집은 더 이상 물리적으로 고정된 공간에 묶여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니리빙에서 보듯, 내 공간과 이웃의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집에 대한 소유권 대신 접근권을 거래하는 시대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접어든 ‘월세의 시대’가 그 단초일지도 모른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인포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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