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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110년 전의 한국인들도 분자·원자 배웠다

등록 2016-10-31 11:01수정 2016-10-31 11:07

[미래] 박상준의 과거창
외국책 번역 그친 ‘신찬소물리학’
자생적 과학관 투영됐다면…
국내 최초의 물리학 교과서인 <신찬소물리학>(왼쪽)과 이 책이 편역한 제이 도먼 스틸 박사의 <자연철학 14주>(오른쪽). <신찬소물리학>은 <자연철학 14주>의 도판을 그대로 살렸지만 많은 내용을 생략하기도 했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국내 최초의 물리학 교과서인 <신찬소물리학>(왼쪽)과 이 책이 편역한 제이 도먼 스틸 박사의 <자연철학 14주>(오른쪽). <신찬소물리학>은 <자연철학 14주>의 도판을 그대로 살렸지만 많은 내용을 생략하기도 했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이는 혜강 최한기(1803~1879)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에 번역되어 나온 서양의 책들을 통해 서양 천문학과 지리학 등을 접한 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홍대용(1731~1783)이나 김석문(1658~1735)은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설 및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당대의 식자층에게 진지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잊히고 말았다. 요컨대 서양의 근대과학, 혹은 그와 같은 수준의 자생적 과학관이 뿌리내릴 토양은 안 되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과학 과목들이 자리 잡은 것은 일본의 영향 아래 진행된 갑오개혁 뒤이다. 1895년 앞뒤로 이어진 일련의 개혁 조치들 중엔 과거제 전면 폐지와 신식 학제 도입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신식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교과서도 속속 간행되었다.

우리말로 된 최초의 물리교과서는 광무 10년(1906년)에 국민교육회에서 출간한 <신찬소물리학>(新撰小物理學)으로 여겨진다. ‘고등소학’, 즉 지금의 중학교 과정에서 볼 책으로 냈던 것이다. 이 책은 1873년에 미국의 교육자인 제이 도먼 스틸 박사가 펴낸 <자연철학 14주>를 편역한 것이다. 원서는 300쪽이 훌쩍 넘어가는 두툼한 책이지만 <신찬소물리학>은 많은 부분을 덜어내어 100여쪽 정도로 요약했으며 그나마 글자가 크고 성기게 들어가 있어 텍스트의 양이 훨씬 적다. 그래도 원서에 있는 핵심 내용은 다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분자와 원자부터 시작해서 인력, 중력 등 각종 힘의 개념, 힘의 작용, 그리고 액체와 기체의 성질, 소리와 빛, 열, 마지막으로 전기와 자기에 관해서까지 설명하고 있다. 도판도 64개나 실려 있다.

두 책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도판은 원서의 그림을 그대로 다시 그려 실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생략된 항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쌍안경’을 설명하고 나서 원서에는 입체경(stereoscope)에 대한 설명이 뒤이어 나오는데 <신찬소물리학>에는 빠졌다. 용어를 설명한 예로는 렌즈(lens)의 경우 ‘만곡면(彎曲面)이 유(有)한 투명체(透明體)’라고 서술해 놓았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빠르게 서양의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했다. 그런데 정작 서양에서는 지금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을 통해 기계적 세계관과 과학만능주의를 성찰의 관점으로 곱씹고 있다. 비록 그 실체가 흐릿할지언정 우리에게도 고유의 전통 과학사상이 있었다면, 그걸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 역사에도 전근대 사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혁명적 발상을 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다. 관련 학자들만이 화석화된 박제를 찾아보듯 하는 수준을 넘어, 대중들의 교양 차원으로까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새롭게 풀어쓰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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