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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게임으로 연구 품앗이 따로 또 같이, 공개-공유

등록 2016-11-23 10:23수정 2016-11-23 10:46

[오철우 기자의 사이언스온] 디지털온라인시대 과학 풍경

알츠하이머질환 막힌 뇌혈관 찾기
온라인게임으로 시민 참여 유도

일손 돕고 새로운 직관 아이디어도
참여자 이름으로 저자 목록에도 올라

단백질 접힘 구조·양자역학 게임도
더 나은 해법 찾는 길 보여줘

뇌 비밀 밝히는 연구전략으로
데이터 공개와 공유, 협력 목소리

클라우드 서비스 등 기술 활용
주제 먼저 정하고 ‘분산된 협력’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 과학의 풍경도 바뀐다.

공개형 온라인 학술논문들이 점차 대세로 자리잡는가 하면 지능형 알고리즘이 예전엔 엄두도 못 내던 거대한 데이터를 처리해 새로운 발견을 이뤄낸다. 한쪽에선 과학 온라인 게임에 참여한 시민들이 연구자들이 다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해법을 제시하며 돕는다. 논문의 저자 목록엔 ‘게임 참여자’라는 이름도 오른다. 다른 쪽에선 각지에 흩어진 과학자들이 뇌의 비밀을 공략하는 연구전략으로 수평의 네트워크를 이뤄 데이터 공개과 공유, 협력 연구를 하자고 촉구한다.

10여년 전인 2005년에 각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모여 ‘2020년 과학’을 내다보는 보고서를 내어 과학 하는 방식을 바꿀 가장 큰 영향으로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꼽은 적이 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유전체학)는 “한국인, 호랑이 등 표준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연구 경쟁력의 기반도 결국 컴퓨터”라며 “디지털 온라인이 과학 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고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1.

빨리 많이 찾을수록 높은 점수

알츠하이머 뇌에서 막힌 혈관을 찾는 ’스톨 캐처스’ 게임의 화면. 아이즈온알츠(EyesOnALZ.com) 제공
알츠하이머 뇌에서 막힌 혈관을 찾는 ’스톨 캐처스’ 게임의 화면. 아이즈온알츠(EyesOnALZ.com) 제공
“나쁜 단백질 덩어리로 막힌 뇌혈관을 찾아라.”

컴퓨터 화면엔 뇌속 핏줄들이 흐릿한 흑백의 현미경 영상에 어지럽게 나타난다. 영상 이곳저곳을 헤매다 피 흐름이 막힌 곳을 재빠르게 많이 찾아 ‘클릭’ 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실험용 쥐들의 뇌혈관 영상에서 피 흐름이 막힌 곳을 찾는 온라인 게임이다.

알츠하이머를 연구하는 미국 코넬대학교 등 연구진이 운영하는 이 게임 ‘스톨 캐처스’(막힌 곳 찾기, eyesonALZ.com)는 그저 재미만을 위한 게 아니다. 게임은 현실의 연구실과 이어져 있다. 알츠하이머의 원인물질로 꼽히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 덩어리 탓에 흐름이 막힌 뇌혈관을 찾아내는 이 게임은 실험실의 부족한 연구 일손을 돕는 구실을 한다. 뇌혈관 막힘이 알츠하이머 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밝히는 질환 연구의 속도를 높인다.

아르엔에이(RNA)의 염기배열 규칙을 찾는 온라인 게임 ‘이터너(EteRNA)’의 실행 화면. 이터너 연구 그룹
아르엔에이(RNA)의 염기배열 규칙을 찾는 온라인 게임 ‘이터너(EteRNA)’의 실행 화면. 이터너 연구 그룹
시민참여 게임이 연구자의 일손을 돕거나 새로운 직관의 아이디어를 주는 성공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게임의 분석 결과는 정식 논문으로도 여러 편 발표됐다. 2011년 미국 연구진은 너무 복잡해 풀기 어렵지만 생명·질환 연구에선 중요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게임 ‘폴드 잇’(Fold it)을 공개한 뒤 안정적인 단백질 구조를 만들어가는 게임 참여자들의 도움을 얻어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http://scienceon.hani.co.kr/31766). 2014년엔 한국인 연구자들도 참여한 연구팀이 3만7000명이 참여한 게임 ‘이터너’(EteRNA)를 통해 아르엔에이(RNA)의 염기배열 규칙을 새롭게 분석한 논문을 냈다(http://scienceon.hani.co.kr/148023).

양자역학 게임도 빠질 수 없다. ‘퀀텀 무브스’라는 비디오 게임의 결과물은 지난 4월 <네이처>에 실렸다. 원자의 에너지 상태를 바꾸지 않으면서 원자 위치를 빠르게 옮길수록 높은 점수를 얻도록 했는데, “양자컴퓨터 분야의 실제 문제를 시각화해 다룬 게임”(이순칠 카이스트 교수)이다. 양자컴퓨터 연구자인 이 교수는 “예컨대 탄성 물체가 중력장에서 어떻게 운동할지는 뉴턴 식만으로 추측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튀는 공을 보며 공을 어떻게 다룰지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며 “마찬가지로 양자역학 문제에서 사람들이 비디오 게임을 통해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원자의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면서 가장 빠르게 원자 위치를 옮길 때 높은 점수를 얻는 양자역학 게임 ’퀀텀 무브스’의 실행 화면. 사이언스앳홈(scienceathome.org) 제공
원자의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면서 가장 빠르게 원자 위치를 옮길 때 높은 점수를 얻는 양자역학 게임 ’퀀텀 무브스’의 실행 화면. 사이언스앳홈(scienceathome.org) 제공


“집단지성은 문제 푸는 강한 힘 될 것”
- 인터뷰 / ‘과학게임단체 활동’ 하이카

핀야 하이카 덴마크 오루후스대학 연구원(물리학 박사)
핀야 하이카 덴마크 오루후스대학 연구원(물리학 박사)
덴마크 오르후스대학의 물리학자 핀야 하이카(사진)는 ‘퀀텀 무브스’를 비롯해 여러 과학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단체인 ‘사이언스앳홈(scienceathome.org)’에서 활동한다. 그는 <한겨레>에 보낸 이메일에서 “컴퓨터 성능과 지능형 알고리즘의 발전이 앞으로 과학 연구의 지형을 아주 다르게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민참여 과학 게임이 많아졌다. 이런 추세는 무얼 의미할까?

“연구자들도 이젠 전문교육과 컴퓨터 성능만의 한계를 깨닫고 있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단순화해 해법을 찾는데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해 답을 찾아간다. 집단지성은 문제를 푸는 강한 힘이 될 것이다.”

-사이언스앳홈 단체는 언제부터 어떻게 활동했나?

“우리 단체는 양자역학 게임을 만든 오르후스대학의 야콥 셰르손 교수를 중심으로 네댓 해 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물리학자, 인지과학자, 사회과학자, 게임 개발자 등이 큰 팀을 이루고 있다. 시민 12만 명이 여러 게임에 참여했으며 600만 번 넘게 게임이 실행됐다.”

-과학에 실제 도움을 주는가?

“양자역학 게임은 원자를 안정 상태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얼마나 빨리 옮길 수 있는냐의 양자역학 문제를 풀려는 연구자들한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게임 참여자들의 직관은 생각지 못한 해법을 찾아준다.”

-시민참여 과학 게임은 어떻게 진화할까?

“우리는 게임 참여자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과학 문제 풀이에 쏟도록 안내한다. 재미도 있고 동기 부여도 되는 일이다. 시민참여 프로젝트는 더 많아지리라 예상한다.”

#2.

12개국 60여 과학자 공동과제 제안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과학 연구의 중요한 활동이라면, 그 목표로 가는 길엔 여러 갈래의 연구전략이 있을 수 있다. 연구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 개별 실험실의 값진 데이터를 공유하며 협력 연구를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활발해진 뇌과학 연구 분야에서 지구촌 차원의 협력 연구를 강조하는 ‘대안의 연구전략’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12개 나라 60여명 과학자들은 ‘뇌과학의 세 가지 과제’라는 보고서를 내어 △여러 생물종의 뇌 지도를 만들어 해부학적 차이를 규명하고 △작은 에너지만으로 고난도의 연산을 해내는 뇌 능력을 이해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며 △뇌과학 지식을 뇌질환 치유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향후 10년의 도전과제로 제시했다. 이들은 뇌 연구의 공유와 협력을 강조했다(http://scienceon.hani.co.kr/429381).

얼마 전 <네이처>에도 비슷하게 새로운 연구전략을 제안하는 신경과학자들의 글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알렉상드르 푸제 교수 등 3명은 뇌과학의 여러 대형 프로젝트 덕분에 연구 인력과 자원은 늘었지만 흩어진 개별 연구들이 뇌과학의 방대한 주제를 다루기엔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http://scienceon.hani.co.kr/450356). 이들은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저장과 소통의 디지털 온라인 기술을 적극 활용해 흩어진 연구실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특정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협력하는 ‘분산된 협력’의 연구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데이터 공유’와 ‘분산 협력’이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연구 문화는 지구촌 연구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리잡을까.


“연구비 책정보다 문제에 먼저 초점”
- 인터뷰 / ‘대안 연구전략’ 푸제·메이넨

알렉산드리 푸제 스위스 제네바대학 교수
알렉산드리 푸제 스위스 제네바대학 교수
‘뇌과학의 새로운 연구전략’을 강조해온 스위스 제네바대학 알렉상드르 푸제 교수와 포르투갈 신경과학자 잭 메이넨(샴팔리마우드재단 연구소 연구책임자)은 ‘공유와 협력’이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 걸맞은 연구 문화임을 강조했다.

-연구 자원이나 데이터 공유 기술, 실험·이론 도구들이 풍부한 지금이 뇌 연구를 위한 거대 협력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왜 그런가?

푸제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물음은 몇 개 실험실에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고작 300여 뉴런으로 이뤄진 작은 벌레의 뇌조차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인간 뇌는 차치하더라도 7000만 뉴런과 700억 연결로 이뤄진 쥐 뇌를 이해하는 데에도 지구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메이넨 “뇌과학 분야에서 너무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가 다뤄지고 표준화도 이뤄지지 못해 많은 연구실의 값진 데이터가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규모의 협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연구전략이란 무엇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인가?

푸제 “기존 방법에선, 일단 연구비가 주어지면 연구자들은 각자 연구실로 되돌아가 따로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역전하자고 제안한다. 과학자들이 먼저 어떤 주제가 거대 협력을 통해 이점을 얻을 수 있는지 찾고, 그 뒤에 연구비가 배치되어야 한다.”

잭 메이넨 포르투갈 샴팔리마우드재단 연구소 연구책임자
잭 메이넨 포르투갈 샴팔리마우드재단 연구소 연구책임자
메이넨 “물리학·유전체학 등 분야에서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유럽입자물리연구소나 인간게놈 프로젝트). 특정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서 흩어진 채 연구실이 협력한다. 그런 협력이 뇌과학에도 필요하다.”

-디지털 온라인 기술이 과학 연구의 방식을 바꾸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나?

푸제 “협력은 다양한 연구자들이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할 때 최상이 된다. 최근까지 이것은 연구자들이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함을 뜻했다. 당연히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최근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진보 덕분에 떨어져 일할 수도 있다. 온라인 회의, 클라우드와 데이터 서버가 있다. 공유에 필요한 하드웨어는 이미 존재한다.”

-뇌과학이 풀려는 중요한 물음은 무엇인가.

메이넨 “물음은 아주 많다. 예컨대 뇌는 몇몇 개별 사례를 통해 어떻게 빠르게 일반화에 도달할 수 있나? 개별 뇌들은 어떻게 서로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 있나? 신경세포는 어떻게 그리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나? 이런 문제를 풀려면 매우 구체적인 신경망 연산과 특정 행동 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그런 협력연구가 필요하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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