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는 재임중 학술논문을 쓴 최초의 대통령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올해 발표된 과학논문 가운데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은 화제가 된 것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전문 연구자가 아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쓴 논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유례없는 선물을 받게 됐다. 영국의 온라인학술활동 분석기관인 알트메트릭(Altmetric)이 최근 발표한 ‘2016년 100대 인기 과학논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8월2일에 <전미의학협회저널>(JAMA)에 게재한 ‘미국의 보건의료 개혁 : 진척 현황과 다음 단계’(United States Health Care Reform: Progress to Date and Next Steps) 논문이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틀어 가장 많이 공유되거나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은 315개의 기사에서 다뤄졌으며 8943개의 트위터, 200개의 페이스북 포스트, 14개의 레딧 포스트에서 공유·언급됨으로써 총점 8063점을 얻었다.
한국인은 왜 오바마논문에 관심을 표명했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논문 첫장. 이름 옆의 ‘JD'는 법학박사란 뜻이다. JAMA
특이한 점은 트위터를 통해 이 논문을 공유한 횟수에서 한국이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다. 학술논문 작성은 고사하고, 연설문마저 비선인물에게 검토해달라고 한 대통령을 보다 못해 탄핵소추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의 부러움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2위는 의료과실이 미국인 사망원인 3위라는 점을 규명한 논문(4912점), 3위는 미 중력파 연구소 라이고(LIGO)의 중력파 검출(4660점), 4위는 거대한 제9행성 존재 가설(4319점), 5위는 관상동맥성질환의 원인 연구에 대한 설탕업계의 로비를 파헤친 논문(4297점)이었다. 이 기관은 올해 발표된 270만개의 논문에 대해 언급한 1700만개의 언론 기사, 소셜미디어, 정책 문서, 학자들의 논평을 분석해 점수를 매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논문에서 적정부담건강보험법(Affordable Care Act), 이른바 오바마케어의 효과를 평가하고 미래의 정부가 취해야 할 보건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했다. 이 논문은 현직 미국 대통령이 출판한 최초의 학술논문이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오바마 논문을 1위로 올려놓은 세가지 요인
상위 100대 논문에 포함된 저자들의 소속 연구기관은 440여개에 이르며, 나라 수로는 42개국이다. 알트메트릭 제공
이 기관은 오바마 논문이 1위를 기록한 배경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저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굳이 대외적으로 알리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살펴봤다. 둘째는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인쇄전(preprint) 논문'이라는 점이다. 이는 과학출판계에서 올해 두드러진 경향이기도 했다. 오바마 논문은 생명과학 분야의 인쇄전 논문이 100대 리스트에 포함된 첫 사례라고 한다. 셋째는 논문이 ‘오픈 액세스’라는 점이다. 오픈액세스는 출판된 연구결과물을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알트메트릭은 이 역시 올해 과학계 전면에 부상한 흐름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논란이 있는 정책을 학술적 언어로 포장해 변호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정치인이 자신의 정책을 학술논문이라는 형태를 빌어 정치하게 스스로 평가하고 이를 모두에게 공개했다는 점에서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만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이 논문을 통해 자신의 임기중 핵심정책에 대한 정치적 공방을 학문적, 이성적 토론의 무대로 끌어올린 셈이다.
알트메트릭은 올해의 100대 논문 리스트는 과학논문을 이제 소수의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사람들이 보고 있음을 드러내줬다고 평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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