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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빅데이터 통한 ‘정밀의료’, 생체정보 독점이 문제

등록 2017-01-10 09:32수정 2017-01-10 09:38

[4차 산업혁명]
질병 조준 치료하는 ‘정밀의료’
다수의 생애기록·DNA정보 등
바이오 빅데이터 수집이 필수

첨단의술 개발자 막대한 부 창출
정보제공자는 경제적 보상 없고
모르는 사이 정보 빠져나갈수도
“프라이버시는 정밀의료 성공 핵심”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아이는 늘 몸을 부들부들 떨고 화를 냈다. 부모는 무엇 때문인지 가능한 모든 진단을 받아봤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었다. 고통스러운 검사가 3년간 이어진 뒤에야 이유가 밝혀졌다. 유전자 변이로 눈물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사포로 각막을 긁는 듯한 고통을 받아왔다. 이는 미국 듀크대 연구진이 아버지 매슈 마이트와 아들 버트런드의 유전자를 대조한 뒤에야 밝혀졌다. 올해 10살이 된 버트런드는 이에 기반을 둔 맞춤 치료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유전자 분석과 데이터 처리 기술, 둘을 바탕으로 한 분석·치료법이 없었다면 아이는 여전히 끔찍한 고통 속에 살았을지 모른다. 지난해 2월 미국 백악관은 마이트 가족의 예를 소개하며 기존 의료를 이렇게 재편하는 ‘정밀의료’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정밀의료란 유전정보, 생활습관 등 환자의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각자 몸에 맞는 치료를 제공하는 의료를 말한다. 우리 몸은 모두 서로 다르지만, 여전히 공장식으로 대량생산된 똑같은 약을 먹는다. 미국 의료기업 ‘애벗 래버러토리스’(Abbott Laboratories)의 분석을 보면, 이런 표준적인 약물치료는 25~80%의 환자에게만 효과를 보인다. 즉, 어떤 약의 경우 환자 4분의 3은 효과 없이 돈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정밀의료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각자가 가진 병을 정확히 조준하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것이 ‘스마트’(똑똑)하게 변한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의료다.

인간 유전체 분석 비용과 컴퓨터 하드드라이브 가격 그래프를 비교해 보면, 초반에 높은 가격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매우 닮았다. 2001년 한명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비용은 우리 돈으로 1100억원 정도였는데, 2008년께부터 급락해 2015년이면 10만원 수준에 가능하다. 1기가바이트(GB)당 하드 가격을 보면 1980년에는 약 2억2000만원였는데, 2015년이면 35원 밑으로 떨어진다. 기술의 혁신은 인간의 정보를 해독하는 가격과 이를 저장하는 비용을 놀라운 속도로 떨어뜨렸고, 이 덕분에 정밀의료는 비로소 가능해졌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정밀의료를 인공지능 등과 함께 9개 ‘국가전략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밀의료 지원을 공식화하자 우리도 본격적으로 경쟁에 나선 모양새다.

정밀의료 계획에서 가장 큰 예산을 차지하는 것이 코호트 구축이다. 코호트란 특정한 연구 목적 등에 따라 모집한 표본 집단을 말한다. 정밀의료를 하려면 유전자와 환경이 특정 질병과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에 대한 선행 연구와 이를 이용한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 이런 연구를 위해선 충분한 참여자들의 각종 자료를 모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데, 정부가 이런 코호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수집하는 정보에는 성별, 나이, 연락처 같은 기본정보와 유전자(DNA) 정보, 질병력, 소변, 혈액, 생체조직 등 의학정보, 그리고 라이프로그가 포함된다. 라이프로그는 손목에 찬 웨어러블 기기 등을 통해서 기록되는 수면, 운동량, 체온 등 ‘삶의 모든 기록’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정밀의료를 위해 최초 10만명의 코호트를 구축하고 이후 예산에 따라 50만명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정보는 모였을 때 사람을 살리는 치료법을 만들어내지만, 유출되면 개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예컨대 가족에게 암 발병을 알리지 않은 아버지의 병력이 의도치 않게 공개된다면 그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9일 <한겨레>가 입수한 복지부의 ‘정밀의료 세부 추진계획’을 보면 참여자 자신의 정보 통제에 대한 항목은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참여자들의 정보 접근 대책으로는 ‘본인의 검사 결과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앱 및 웹을 통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가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이를 검토한 한 생명윤리학회 이사는 “과거 사례를 보면 이런 코호트는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동의서 한 장을 받아 모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정밀의료의 경우 이렇게 하기엔 수집하는 정보가 너무 방대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프라이버시는 정밀의료 성공의 핵심”이라며 백악관이 별도의 보고서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정보의 수집부터 통제, 활용 등 데이터 흐름 전반에서 참여자가 확인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1500억원가량을 투자해 시범 구축에 나서겠다고 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1300억원가량을 투자해 당장 10만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계획한 것도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체자원은행 등 기존의 유사 사업을 통해 전체 80만명의 정보를 집적하고 있는 세계 최대 생체정보 수집국가이기도 하다.

데이터의 주인이 누구인가도 새롭게 대두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데이터 주인은 수집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연한 통념으로 여겨왔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비용이 비쌌기 때문이다. 이를 지불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저장 비용이 극적으로 떨어지는 반면 이를 이용해 창출되는 부는 극적으로 높아지면서 이런 통념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고 있다.

정밀의료 데이터는 산업적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이를 활용하면 희귀병을 검출하거나 맞춤 약을 제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바이오 데이터를 분석해서 건강 관리를 조언하는 가입형 의료 서비스도 창출 가능하다. 정부는 정밀의료의 연관 산업으로 2025년까지 1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코호트를 제공한 사람들에게는 땡전 한 푼 돌아가지 않는다. 통념에 따라 금전적 보상이 없음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동의서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개념의 창시자이자 실리콘밸리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인 재런 러니어는 저서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이런 데이터 구조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보의 수집자는 막대한 부를 쌓는 동안 제공자는 한 푼의 이득도 챙기지 못하는 구조가 너무 심해져서 정보경제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정보를 활용해 수십조원의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빅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온갖 서비스들에 적용되는 미래에 이런 데이터 빈부 격차는 더 심화할 전망이다. 특히 바이오 데이터 산업은 고령화 추세로 인해 가장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다.

이는 기업들이 내놓을 혁신적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에 대한 당연한 대가 아닐까. 의료의 미래를 위한 공동의 지급 비용 말이다. 반면 과연 이런 데이터 기반 의료가 맞는 방향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보건행정학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정밀의료는 가장 적극적인 ‘개인화’를 추구하는 보건의료로…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개별 문제가 강조되고 개인별 접근이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개인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에는 여러 사회경제적·환경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소득 수준에서 비롯되는 주거 환경의 차이 등 말이다. 정밀의료의 접근법에선 이런 맥락이 모두 거세되고 현재의 데이터만 남는다. 데이터에 따른 대책은 개인별 맞춤 서비스로, 이런 의료가 주류가 되는 사회에서 공공의료 강화 같은 공적인 접근법은 지지를 잃기 쉽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밀의료와 같은 데이터 기반의 혁신은 사회 곳곳에서 도입될 전망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 광고에서부터 들려오는 뉴스, 위험 대비를 위한 보험, 안전을 위한 범죄 예측 등이 맞춤형 빅데이터 분석이 우선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들이다. 데이터 주인인 우리에게 선택의 순간이 오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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