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용어 논란
지난달 19일 오전 고농도 미세먼지로 뒤덮힌 서울 강남의 한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 혼란, 학계 난감, 국제소통 지장 환경부 “잘못 고치겠다” 개명 추진에
전문가들 ‘분진이냐, 먼지냐’ 갑론을박
대기환경학회 설문조사 결과 주목돼 먼지는 ‘에어로졸’로 불리는 대기 중 입자상 물질(PM)의 일부일 뿐이다. PM10과 PM2.5를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부르는 것은 연기, 연무, 안개, 미스트, 스모그 등 에어로졸을 구성하는 다양한 고체·액체상 물질을 빠뜨린 잘못된 호명인 것이다. 환경부가 자료에 ‘미세먼지(PM2.5)’라고 적고, 언론이 ‘초미세먼지’로 바꿔 읽은 고등어발 입자상 물질은 먼지가 아니라 탄소 성분과 연소물질로 구성된 연기 형태의 미세입자, 증기가 응축된 액체 입자인 미스트 등이다. 미스트를 모르는 사람도 연기와 먼지가 다른 것은 안다. ‘고등어발 초미세먼지’에 평균적 언어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겪었을 혼란이 ‘담배연기’를 ‘담배먼지’라고 우기듯 상식에도 과학에도 부합하지 않는 용어 탓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률상 존재하지 않는 ‘초미세먼지’ 심지어 이런 논란의 주인공인 초미세먼지는 ‘법률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환경정책기본법은 ‘미세먼지(PM10)는 입자의 크기가 10㎛ 이하인 먼지’, ‘미세먼지(PM2.5)는 입자의 크기가 2.5㎛ 이하인 먼지’라고 설명하고 있고, 대기환경보전법은 먼지에 대해서만 ‘대기 중에 떠다니거나 흩날려 내려오는 입자상 물질’로 정의해놓았을 뿐이다. 요컨대 ‘초미세먼지’는 법적으로 근본이 없는 용어란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학술적 근거가 있고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용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 대기환경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대기 중 입자상 물질을 크기 2.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를 경계로, 미세입자(fine particle) 영역과 거대입자(coarse particle) 영역으로 구분해왔다. 국제사회에서 PM10은 우리말 ‘부유입자’로 번역될 수 있는 ‘Suspended particle’(서스펜디드 파티클), PM2.5는 ‘미세입자’라는 의미의 ‘Fine particle’(파인 파티클)로 불린다. ‘초미세’에 해당하는 ‘ultra-fine’(울트라파인)이라는 꾸밈말은 크기가 0.1㎛ 이하인 PM0.1에 붙여 쓴다. 이처럼 학계와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개념을 적용하면 한국에서 초미세먼지로 불리는 PM2.5가 사실은 미세먼지이고, 법에 미세먼지로 정의돼 있는 PM10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거대먼지이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이 부실한 기초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례다. 미세먼지에서 초미세먼지까지 이어진 오류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환경부다. 1993년 PM10을 환경기준에 처음 도입하면서 PM10에 ‘미세’라는 꾸밈말을 붙였기 때문이다. 당시 작명 논의 과정 초기에 참여했던 백성옥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호흡성’을 붙이자는 제안을 환경부가 국민에게 불안감을 준다고 거부하면서, 더 작은 먼지도 관리한다는 거니까 ‘미세먼지’로 부르자는 얘기가 나왔던 것이 나중에 그대로 이름이 됐다”고 말했다. PM10에 ‘미세’를 써버린 상황에서 국민에게 PM10보다 더 작은 PM2.5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초미세’라는 표현이 호출될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와 동떨어진 용어 사용은 월경성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주변국들과의 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기환경학회 정용원 회장(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은 “학생들에게 용어가 잘못됐다고 가르칠 때마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못했나 하는 자책감도 들고 괴롭다”고 털어놨다. “‘입자’로 바꾸면 유해성 희석될 우려” 이런 문제점을 환경부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 개명 논의 단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개명이 곧 과거 자신이 작명을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환경부의 소극적 자세 탓이었다. 이러던 환경부가 최근 ‘매를 맞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가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대기환경학회를 상대로 개명을 위한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적극적 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대기환경학계에서는 환경부에 아직 통일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PM10에 ‘부유’(suspended), PM2.5에 ‘미세’(fine)라는 꾸밈말을 붙이는 식으로 국제기준에 맞게 고치고, ‘초미세’(ultra-fine)라는 표현은 PM2.5보다 더 작은 입자상 물질이 환경기준으로 등장할 때를 위해 아껴두자는 데까지는 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입자상 물질’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학술적으로만 보면 ‘입자상 물질’이라고 그대로 써주거나 ‘입자’라고 줄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에 따라 일본 환경법에서는 PM10과 PM2.5를 ‘부유입자’와 ‘미소입자’로 명명했고, 중국에서도 ‘가흡입과립물’과 ‘세과립물’이라는 용어로 입자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미세입자’로 바꿔 부르는 방안에는 환경부 쪽이 부정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부정적 개념이 들어 있는 먼지를 중립적 개념의 입자로 대체하면 인체 유해성 개념이 희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학계의 의견은 ‘분진’이라는 용어를 가져오자는 쪽과 ‘먼지’라는 용어를 그대로 두자는 쪽으로 크게 갈려 있다. ‘먼지’를 선호하는 학자들은 “이미 20년 이상 사용되면서 국민에게 익숙해져 있는 만큼 먼지에 사전적 의미를 넘어 입자상 물질을 포괄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학문적인 엄밀성을 다소 양보하는 현실론인 셈이다. 반면 “잘못된 용어를 고치려면 제대로 고치자”며 분진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원칙론에 가깝다. 이들은 30년 이상 학계와 교육 현장에서 입자상 물질인 에어로졸을 지칭하는 용어로 써온 ‘분진’으로 통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16년 전 환경부에 공식적으로 미세먼지 용어의 문제점을 제기했던 김동술 전 대기환경학회장(경희대 환경공학과 교수)은 “영어 표현인 에어로졸을 대체할 용어를 찾기 위해 과거 학회에서 2년간이나 공개 논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30여년간 지속해서 고민했지만, 분진보다 더 좋은 용어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분진은 일본식 한자 표현인데다 사전적 의미가 먼지와 차이도 없는데 왜 굳이 순수한 우리말인 먼지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반박이 제기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학회 지도부는 전체 평의원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겠다며 설문조사를 추진 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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