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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사라지는 아마추어무선사, 당신이야말로 자유의 수호자

등록 2017-02-20 10:50수정 2017-02-20 10:52

[미래] 박상준의 과거창
주파수 맞으면 전세계 누구와도 교류
일제, 군사정부 때 탄압받기도 했지만
우주탐사 기여한 전통의 ‘시민과학자’
‘포켓몬고’의 인기를 보니 오래전에 즐겼던 비슷한 취미가 생각난다.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정보통신기기를 가지고 위치기반의 아이템을 수집하는 건 마찬가지다. 더구나 전세계가 대상이고 수십년 동안 계속하기도 한다. 바로 아마추어무선(HAM)통신과 단파방송을 청취하는 에스더블유엘(SWL: Short Wave Listening)이다.

아마추어무선사나 단파방송국들은 방송을 듣고 수신보고서를 보내면 답례로 카드를 보내준다.
아마추어무선사나 단파방송국들은 방송을 듣고 수신보고서를 보내면 답례로 카드를 보내준다.

아마추어무선사 및 단파방송국들은 ‘QSL’(큐에스엘)이라는 카드를 발행하는데, 방송을 듣고 수신보고서를 보내면 답례로 이 카드를 보내준다. 세계 각국에서 받은 카드들을 보며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아프리카나 중동 등 통신을 듣기 힘든 곳(30여년 전 기준)에서 어렵게 카드가 날아오면 무척 반가웠다. 당시 소련이나 동구권처럼 직접적인 우편물 교환이 쉽지 않은 ‘적성국’들과는 제3국으로 우회해서 카드를 주고받기도 했다.

사실 단파방송 청취는 오해를 부르는 위험한(?) 행위이기도 했다. 단파방송은 주파수 특성상 전리층에 반사되어 몇천㎞ 먼 곳까지 도달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제방송용으로 널리 쓰이는데, 그러다 보니 체제 선전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북한도 서로 상대방 지역에 라디오 방송을 한다. 게다가 흔히 ‘간첩’ 하면 떠오르는, 이불 뒤집어쓰고 난수표 방송을 듣는 이미지도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정치적, 이념적 차이를 떠나 전세계의 다른 무선사들과 통신을 즐긴다. 마치 라디오 방송처럼 주파수만 맞으면 누구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의 아마추어무선사가 교신하는 것을 한국에 있는 내가 듣고 두 사람 모두에게 수신보고서 카드를 보낼 수도 있다.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자기 신호가 얼마나 먼 곳에서 어느 정도 세기와 선명도로 들리는지 정보를 받아 통신기기나 안테나를 개량한다. 이렇듯 전파통신을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무선사들은 발명가와 함께 가장 전통이 긴 시민과학자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전파통신공학의 역사에서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달에 전파를 쏜 뒤 그 반사파를 받아 서로 교신하는 월면반사(EME)통신, 소리뿐 아니라 티브이 화면을 주고받는 에스에스티브이(SSTV)통신 등등의 기술을 일찍이 1950년대부터 발전시켰고, 이 중 일부는 우주 탐사에 이용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도 아마추어무선사들의 역할이 크다. 전화, 인터넷, 스마트폰 등등 모든 통신기기가 불통이 되면 결국은 아마추어무선 통신에 의지하게 된다. 중계기나 기지국, 통신위성이 없어도 아주 먼 거리까지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런 취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광범위한 보급에 밀린 탓이다. 개인적으로도 아마추어무선 통신을 들으면서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곤 하다가 어느 날 인터넷으로 외국 사람과 채팅을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세상이 바뀌었구나!’

냉전시대에 스파이나 첩보 정찰기가 목숨 걸고 적대 국가에 침투하여 찍어 오던 주요 시설물 사진을 이젠 초등학생도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예전엔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 가면 연락이 끊어지기 십상이었지만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전혀 단절 없이 교제를 이어간다.

사람은 늘 세상을 향한 소통과 정보 공유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단파방송 청취는 그런 욕구에 부응하는 20세기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수단이자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이던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 단파방송 청취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경성라디오방송국의 한국인 직원들 몇몇이 몰래 미국과 중국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관련자 포함 300여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으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1992년에 <미국의 소리>(VOA) 한국어방송 50주년 기념 대담에서 옛 경성방송국 직원들이 증언하는 등 몇몇 자료가 전해지지만 독립운동사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정보 공유와 소통이 활발할수록 시공간적 시야는 확장되고, 억압적 사회 체제나 편협한 사고가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누린 21세기의 세대라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이룰 거라고 기대하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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