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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이 캐리어로봇은 자못 거창한 꿈을 갖고 있다

등록 2017-02-26 21:44수정 2017-02-28 15:56

[미래] 곽노필의 미래창
자율주행차가 ‘주행중 자유’라면
이 로봇은 ‘보행중 자유’를 지향
이동성의 새로운 혁신 일으킬까
캐리어로봇 지타는 한 번 충전에 걷기 속도로 8시간 움직일 수 있다. 피아지오 제공
캐리어로봇 지타는 한 번 충전에 걷기 속도로 8시간 움직일 수 있다. 피아지오 제공
여행은 즐겁지만 무거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땐 가능한 한 짐을 줄이려 애쓴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 뒤 물건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가노라면 ‘대신 들어줄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머지않아 이런 불편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캐리어 가방이나 핸드 카트, 장바구니를 대신할 수 있는 바퀴 달린 화물 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반려견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다닌다.

유럽 최대 스쿠터 제조업체인 이탈리아의 피아조가 미래 이동성 기술 프로젝트로 내놓은 첫 작품이다. 스쿠터와 로봇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이 로봇은 작은 드럼통 모양을 하고 있다. 성인 무릎 높이의 둥그런 통 안에 최대 중량 18㎏, 부피 32.6ℓ의 화물을 담아 운반할 수 있다. 휴대용 창고나 개인용 배달기기로 불러도 좋을 이 로봇의 이름은 지타(Gita). 이탈리아어로 ‘짧은 여행’이란 뜻이다. 장애물 탐지와 회피 기능이 있어 복잡한 거리에서도 인파와 부딪치지 않고 다닐 수 있다. 다리가 아닌 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에 계단을 이용할 순 없지만, 휠체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닐 수 있다. 최고속도 시속 35㎞ 내에서 속도 조절도 가능하다. 지문인식 시스템과 각종 센서 등으로 보안 장치를 해뒀다.

지타를 부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우선 전용 허리띠를 착용해야 한다. 허리띠 앞부분에 카메라가 달려 있다. 자율주행차들은 전방의 물체에 레이저를 쏘는 라이다를 쓴다.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지타는 일반 비디오카메라를 달았다. 그러곤 시간별로 캡처한 이미지들을 비교한다. 라이다처럼 사람을 추적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캡처한 이미지와 허리띠 카메라의 이미지를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따라간다. 한 번 지나온 길은 입체지도 형태로 저장해 뒀다가, 나중에 혼자서 똑같은 경로를 밟을 수도 있다. 다른 지타들과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타가 시선을 끄는 건 기능 자체보다 그 뒤에 숨은 새로운 ‘이동의 자유’ 때문이다. 피아조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업체들이 자율주행 승용차나 화물차를 생각할 때 우리는 좀 더 작은 크기로 복잡한 도시 공간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인도나 골목길을 재빠르게 다니는 작고 가벼운 이동수단을 통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페달을 밟는 즐거움을 돌려주려 한다.” 자율주행차가 ‘주행 중의 자유’를 지향한다면, 지타는 ‘보행 중의 자유’를 지향한다. 차를 탈 때뿐 아니라 걸을 때에도 양손을 자유롭게 해줌으로써 이동성의 자유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는 얘기다.

지타는 공간 데이터 축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 지도기술에서는 어려운 구석구석의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보들은 공항, 유원지, 주차장 같은 비정형 공간에서 아주 긴요한 내비게이션 도구가 된다.

지타가 정식으로 출시되면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일단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 장을 본 물건을 집까지 가져다주는 운반 도우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개를 산책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개의 목줄을 지타와 연결하면, 지타에 저장된 평소의 산책길로 개를 안내할 수 있다. 요즘 확산되고 있는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지타에 적용해보면 또 어떨까? 그러나 피아조가 생각하는 주된 시장은 공공 서비스 영역, 특히 시설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기관들이다. 온종일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작업 요원들이 도구를 갖고 다니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로원 등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짐꾼으로도 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택배원이나 우편배달부의 보조운반수단으로도 괜찮아 보인다.

이런 용도들의 공통점은? 인간 활동을 돕는 도구라는 점이다. 피아조는 “현재의 운송·로봇 산업은 일을 능률화하면서 노동을 박탈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우리는 인간을 대체하는 대신 인간의 능력을 강화·확장하는 제품을 개발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6개월간 쇼핑몰, 대학 캠퍼스, 양로원 등에서 현장 테스트를 벌여 1차 검증에 나설 예정이다.

피아조는 영화 <로마의 휴일>(1953)에서 오드리 헵번이 그레고리 펙과 함께 로마 시내를 질주했던 바로 그 스쿠터를 만든 업체다. 원래 항공기 등을 제작하던 업체였지만 2차대전 직후 내놓은 스쿠터 ‘베스파’가 대히트를 치면서 주력제품이 바뀌었다. 로마의 골목길도 거뜬히 다닐 수 있는 작은 몸집에다, 긴 치마를 입은 여성들도 쉽게 탈 수 있는 개방형 낮은 발판이 혁신적 이동성 모델로 받아들여진 덕분이었다. 지타는 피아조가 베스파 탄생 70년 만에 미래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로 내놓은 작품이다.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모터사이클이나 승용차 수준의 안전과 제동, 균형 능력을 갖춘 똑똑하고 재빠른 화물운반수단”이다. 흔히들 미래를 위한 혁신에서 성공하려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타가 내세운 ‘보행 중 자유’는 과연 70년 전의 스쿠터처럼 새로운 이동성 혁신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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