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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토종 괴수 ‘불가사리’는 정말 한반도에 살았을까?

등록 2017-03-06 08:24수정 2017-03-06 08:30

[미래] 박상준의 과거창
먹다 남은 밥풀로 빚은 동물
쇠붙이 먹어치우며 괴물로 성장
‘코 긴 짐승’ 이야기 전해지는데…
1940년대에 딱지본으로 출간된 소설 <송도말년 불가살리전>. 불가사리는 한국의 토종 괴수 캐릭터로, 민간전승을 재창조해 신소설, 영화로 제작됐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40년대에 딱지본으로 출간된 소설 <송도말년 불가살리전>. 불가사리는 한국의 토종 괴수 캐릭터로, 민간전승을 재창조해 신소설, 영화로 제작됐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 같다’는 속담이 있다. 쇠붙이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는 전설의 괴수 불가사리처럼 무지막지하게 패악을 부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불가사리 설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날 잘 알려진 줄거리는 1921년에 현영선이 쓴 소설 <불가살이전>(不可殺爾傳)에서 나온 것이다. 먹다 남은 밥풀로 빚은 조그만 동물이 주변의 바늘이며 그릇, 농기구 등 쇠붙이란 쇠붙이는 죄다 먹어치우며 점점 자라 괴물이 된다. 고려 말 공민왕이 임금 노릇을 옳게 못하던 시절이 배경이며, 당시 나라를 쥐락펴락하던 요승 신돈의 악행이 자세히 묘사된다. 한편 태조 이성계는 변방에서 홍건적을 대적하다가 어려움을 겪지만, 때마침 나타난 불가살이가 적군의 쇠붙이 무기를 모두 먹어치운 덕분에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는 조선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당시까지 전해지던 불가사리 관련 전승들을 작가가 모아 재구성한 것으로, 훈민정음 창제도 땅속에서 나온 바위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해독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미 신소설 시대로 넘어간 시점에 고전소설의 형태로 발표되어 국문학계에서 흥미롭게 여기는 작품이다. 원색적인 표지에 얇은 소책자 형태인 이른바 ‘딱지본’으로 몇 차례 재간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괴수 캐릭터로는 사실 불가사리보다 용가리가 더 유명하다. 그런데 용가리는 완전한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 용가리는 원래 ‘용갈이’에서 온 말이며 ‘용이 갈아엎고 지나간 자리’라는 뜻이다. 한자어인 ‘용경’(龍耕)은 <동국세시기>나 <택리지> 등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나오며 지명으로 붙은 곳도 있다. 정말로 용이 지나간 자리가 있었던 것일까?

사실 ‘용갈이’는 겨울에 나타나곤 하는 기상 현상이다. 강이나 호수가 기온 변화에 따라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할 경우, 거대한 얼음 덩어리끼리 서로 부딪쳐 부서진다. 물은 액체 상태일 때보다 고체 상태일 때 부피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얼음이 부서진 흔적이 남는데, 이걸 보고 옛사람들이 용이 갈고 지나갔다고 한 것이다.

1962년 최무룡, 엄앵란 등 당대의 배우가 출연한 영화 <불가사리>.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62년 최무룡, 엄앵란 등 당대의 배우가 출연한 영화 <불가사리>.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공룡 화석을 보고 용이라는 신비의 괴수를 상상해왔고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을 받아 크고 귀한 것에 용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 큰 회오리바람을 용오름이라고 한 것도 거대한 괴수가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하거나 집무용 의자를 용상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용과 같은 카리스마를 부여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거대 괴수 영화라면 흔히 1967년의 김기덕 감독 영화 <대괴수 용가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앞선 1962년에 <불가사리>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필름은 물론 스틸 컷 한 장 남아 있지 않다. 최무룡, 엄앵란 등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으나 조악하고 허술한 특수효과 등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 영화의 개척자인 나운규가 죽기 전까지 붙들고 있던 영화 기획도 불가사리였다. 그는 폐결핵에 걸려 30대 중반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193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전까지도 친구와 불가사리 영화 얘기를 나눴다. 1962년 영화 <불가사리>는 ‘나운규 비장의 소재 영화화!’라는 선전 문구를 쓰고 있다.

한편 1985년에는 북한에서 영화 <불가사리>가 제작되었다. 고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시절에 만든 것인데, 그가 다시 서방으로 탈출한 뒤 시간이 꽤 흐르고 난 2000년에 극장에서 정식 개봉되는 최초의 북한 영화로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불가사리는 용가리처럼 어떤 과학적 근거를 지니고 있을까? 옛날부터 전해지는 불가사리의 형상을 보면 코가 긴 맥(?·테이퍼)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맥은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 등지에 서식하는 포유류이며 말 또는 코뿔소의 먼 친척인 초식동물로서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는 맥과 아주 비슷한 동물의 전승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개미핥기에 대한 묘사가 해외에서 들어오면서 와전된 것이라는 이론도 있지만, 그보다는 원래 동북아시아 지역에 맥이 살다가 멸종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원숭이는 한반도에서 멸종되었지만 우리나라 곳곳에서 화석이 출토된 바 있으며, 삼국시대에는 떼로 서식했음을 암시하는 기록도 있다.

일본의 ‘국민 괴수’ 고지라는 핵폭탄에 대한 공포가 투영된 정서적 측면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불가사리는 무소불위의 탐욕을 부리는 괴물로서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다.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 같은 존재는 이 땅에 더 이상은 필요 없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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