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기자의 사이언스온
검은 구멍, 빛기둥, 빛고리… 직접 볼 수 없는 작고 검은 천체인데
과학과 예술이 그려낸 ‘상상도’ 실제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다음달 초 열흘간 실체 포착 나서 이제 실물 블랙홀에 좀 더 가까운 영상을 얻을 수 있을까?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연구원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지구촌 전파천문학자들이 다음달 5~14일 열흘 동안 지상 8곳의 12개 대형 전파망원경을 동원해 실제 블랙홀의 윤곽을 보려는 ‘사건지평선 망원경’(EHT) 관측 프로젝트에 나선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의 안과 밖을 잇는 넓은 경계지대를 말하는데, 물질이 사건지평선을 거쳐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때 그 일부는 에너지로 방출되기에 높은 해상도의 관측 장비를 동원한다면 사건지평선 언저리를 볼 수 있다. ‘지구관측망 슈퍼컴 알고리즘’ 총출동 하와이와 북미, 남미, 유럽과 남극 등지의 내로라하는 대형 전파망원경들이 동시에 향하는 관측 대상은 두 블랙홀이다. 하나는 2만8000광년 떨어져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에이스타)’ 블랙홀, 다른 하나는 5500만 광년이나 떨어진 은하 ‘엠87’의 중심에 있는 ‘처녀자리 A*’ 블랙홀이다. 어떤 별자리 방향의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전파원이란 뜻에서 ‘A’ 기호가 붙었으며, ‘*(스타)’는 그것이 블랙홀임을 뜻한다. 국제 협력관측에 참여하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손봉원 연구원은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전파 신호를 더 증폭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높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며 “12개 전파망원경이 각자 전파 신호를 포착하고 이 신호들을 한데 모아 ‘가상의 망원경 초점’에서 종합하면 사실상 지구만한 전파망원경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와이 북미 남미 유럽 남극 등
지구촌 8곳 12개 대형 전파망원경 2만8000광년·5500만광년 거리 2곳
동시에 일제히 전파 신호 관측 신호 모아 ‘가상 망원경 초점’에서 종합
사실상 지구만한 전파망원경 효과 여름쯤 1차 분석 끝나면 ‘윤곽’ 기대
한-일 학자들 따로 협력연구도 국내 연구진은 공동운영 시설인 하와이 전파망원경(JCMT)의 관측 활동에도 직접 참여한다. 관측 기간에 이곳에 머물 정태현 천문연 연구원은 “처음으로 블랙홀의 실측 영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하는 관측”이라며 “기대와 예측대로 새로운 블랙홀 모습과 물리 현상을 볼 수 있을지 설레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12개 망원경의 열흘간 관측 데이터가 한곳에 모이면, 이후엔 슈퍼컴퓨터와 분석 알고리즘이 각자 수집된 흩어진 데이터를 거대한 가상 망원경의 초점에 모인 데이터로 변환하고서 본격적인 해석과 분석 작업을 벌인다. 손 연구원은 “여름쯤 1차 분석을 마치면 이번 관측이 성공적인지 판단할 수 있을 테고 겨울쯤엔 분석 결과와 영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번 관측과는 별개로, 한국과 일본 천문학자들은 한·일 전파관측망(KaVA)을 따로 가동해 다른 전파 파장대에서 두 블랙홀 사건지평선의 근처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분출(제트) 사건을 집중 관측한다는 협력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15~50년 사이 100여개 발견 블랙홀을 보려는 관측 시도는 천문학에서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블랙홀의 병합 현상을 관측했던 우종학 서울대 교수(천문학)는 “지난 15~20년 동안 우리은하 근처에서 블랙홀을 지니는 은하들이 100여 개나 잇따라 발견될 정도로 큰 진전이 이뤄졌다”며 “이제 많은 은하 중심에 거대 블랙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동안의 오랜 관측 연구 덕분”이라고 말했다. 블랙홀의 존재를 보여주는 천체가 처음 발견된 건 1960년대였다. 항성들은 ‘핵융합’으로 별빛을 내는데, 이런 핵융합 작용으론 도무지 해명할 길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특이한 천체 ‘퀘이사’가 발견된 이래, 블랙홀의 실체는 천문학의 큰 관심사가 됐다. 퀘이사는 나중에 거대 블랙홀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러 분명한 증거들이 블랙홀 주변의 천체들에 나타나는 중력과 역학 현상에서 발견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은하 중심부에 거대 블랙홀이 있을 가능성이 여러 관측에서 잇따라 보고됐다. 우 교수는 “우리은하 중심에 태양계 2배만한 공간에 태양 질량의 400만배나 되는 거대 중력이 있고 여러 항성들이 그 둘레를 공전하는 현상이 발견됐는데, 이처럼 작은 공간에 이처럼 큰 중력을 지닌 천체는 블랙홀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블랙홀은 천문학에서 실재하는 관측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하 중심부에 거대 블랙홀이 있다는 발견은 이제 은하 연구에서 커다란 패러다임 전환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관측을 통해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며 고에너지의 빛을 내는 활동성 블랙홀도 발견됐으며 이와 달리 활동을 멈춘 블랙홀도 존재한다는 게 밝혀져 왔다. 블랙홀 실체에 더 접근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블랙홀 자체를 볼 순 없더라도 블랙홀의 윤곽을 드러내는 그 ‘그림자’를 보려는 구상이다. 손 연구원은 “거대 블랙홀의 주변에선 고에너지 입자와 거대 자기장이 격동을 일으키는데 이때 에너지 발산의 전파 신호를 높은 해상도로 포착할 수 있다면 그 ‘그림자’를 통해 블랙홀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블랙홀의 그림자’는 이번 국제 협력관측에서 관측의 목표이자 최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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