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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지구온난화는 헛소리? 미 정부 ‘사이비 과학’에 뿔난 과학자들

등록 2017-03-13 08:36수정 2017-03-13 17:12

[미래] 도널드 트럼프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
인간 활동으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의 비율은 61%밖에 안 된다. 화석연료 산업계와 결탁한 일부 과학자로 인해 과학이 정치화되면서 정쟁의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들이 트럼프 행정부로 입성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연구 결과가 나오면) 온라인 매체인 <브라이트바트>가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나 혼자 논문을 쓰게 되면 ‘연구자는 어떤 재정적 지원도 받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넣어도 문제 되지 않아요. 이런 경우, 저는 보통 시간당 250달러를 받습니다. (미네소타주에서 피보디 석탄회사를 위해) 증언했을 때에는 나흘 동안 8시간씩, 합해서 8000달러를 받았어요. (비용은) 저를 대신해서 이산화탄소연합(이산화탄소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단체)에 기부하시면 됩니다.”(윌리엄 하퍼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교수)

“시간당 비용 조건은 좋습니다. 이산화탄소연합에 익명 기부할 수 있습니다만, 혹시 그 단체가 나중에 기부자들을 공개하는지 살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중동 석유회사의 자문사 이앤피(E&P)의 조너선 엘리스)

“법 규정을 다시 확인해볼게요. 하지만 이산화탄소연합 같은 단체가 기부자를 공개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하퍼 교수)

그러나 조너선 엘리스는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만들어낸 ‘가짜 인물’이었다. 조너선 엘리스는 중동 석유회사의 컨설턴트인 것처럼 하퍼 교수에게 접근해 파리 기후변화회의에 앞서 개발도상국에서 화석연료 사용이 이점이 많다는 보고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2015년 11~12월 주고받은 전자우편에서 하퍼 교수는 시간당 250달러를 제시했고, 이해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출처를 밝히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하퍼 교수는 그린피스의 ‘함정 조사’에 딱 걸렸다.

윌리엄 하퍼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른바 ‘기후변화 회의론’의 대표 과학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를 만나고 백악관 과학기술비서관 최유력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 백악관 과학기술비서관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과학기술 흐름에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나 해양대기청(NOAA) 등 최고 권위 연구기관의 예산과 정책 방향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백악관 과학기술보좌관에
윌리엄 하퍼 임명할지 주목
“석유기업 돈 받고 논문 쓰는 장사치”

“기후변화 없다” “백신이 자폐 유발”
미국 정부 포진한 반과학주의자들
세계 과학자 4월22일 “반트럼프 시위”

그러나 그린피스의 함정 조사에 드러났듯, 하퍼 교수는 ‘청부 논문’을 써주고 돈을 받는 ‘과학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다. 취재를 진행한 그린피스의 매체 <에너지데스크>의 탐사기자 로런스 카터는 지난 9일 <한겨레>에 “담배산업이 그랬듯, 화석연료 기업은 학자들에게 돈을 주고 기후변화를 의심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며 “하퍼는 이 보도가 나간 뒤 지금까지 우리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반과학 정부?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입성한 기후변화 회의론자는 하퍼 교수뿐만이 아니다. 하퍼가 논문을 크게 다뤄줄 뉴스 매체로 소개한 <브라이트바트>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배넌은 지난해 11월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임명됐다. 스티브 배넌은 공공연하게 기후변화를 부정했으며, <브라이트바트>는 이 뉴스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

기후변화 정책을 실행하는 환경청(EPA) 청장으로 2월 임명된 스콧 프루잇 전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 역시 대표적인 회의론자다. 환경청장에 임명된 이후인 지난 9일에도 그는 <시엔비시> 인터뷰에서 “이산화탄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지구온난화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 반발을 불러왔다. “날조극은 아니지만, 과학으로 입증된 사실도 아니”라고 말한 라이언 징키도 지난 1일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런 인물들로 행정부가 채워진 건 트럼프의 막말을 봤을 때 놀랄 일도 아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지구온난화를 “허튼소리”(bullshit)라고 하거나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고 중국이 만든 개념”이라고 황당한 음모론을 내지른 바 있다. 그는 예방접종도 믿지 않는데, 한번은 “아주 건강하게 자란 아이가 예방주사를 맞고 한 달 뒤 건강하지 않은 경우를 봐왔다”고 트위트를 올렸다. 새로 신설될 백신안전위원회 위원장에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방주사가 소아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기후변화는 거짓말이 아닐까? “누가 알겠어?” 하는 불가지론이나 음모론에 솔깃해지기 쉬운 건 사실이다. 미국 국민 중 인위적인 지구온난화를 믿는 비율은 61%밖에 안 된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 성향에 따라 과학적 믿음이 상반된다는 점이다. 2014년 ‘퓨리서치센터’ 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 중 온난화를 믿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됐지만(37%), 민주당 지지자는 다른 나라와 비슷한 ‘정상치’에 가까웠다(79%).

과학계에서 기후변화는 이미 합의에 도달했다. 회의론자들의 끊임없는 공격 때문에 1990년대부터 기후변화 과학에 대한 ‘메타연구’가 이어졌는데, 가장 최근인 2016년 존 쿡 서오스트레일리아대 교수 등 기후변화 연구자 16명은 그간의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결과, 97%가 온난화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정도 수치면, 학술지 논문 게재→동료 학자의 비판→이론의 수정·발전처럼 ‘동료 평가’(peer review)를 통해 생산되는 지식의 축적 과정에 회의론자는 사실상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지난 2월19일 미국 보스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반과학 행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스턴은 하버드,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유수 대학이 있는 곳이다. ‘지구의 날’인 4월22일에는 전세계 320여곳에서 제2차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보스턴/AP 연합뉴스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지난 2월19일 미국 보스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반과학 행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스턴은 하버드,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유수 대학이 있는 곳이다. ‘지구의 날’인 4월22일에는 전세계 320여곳에서 제2차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보스턴/AP 연합뉴스

이렇게 대중과 과학자들의 인식 격차가 커진 원인은 무엇일까? 담배와 기후변화 등 산업적 이해에 오염된 과학자들을 탐구한 책 <의혹을 팝니다>(Merchants of doubt)를 쓴 나오미 오레스키스 하버드대 교수(과학사)는 12일 <한겨레>에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화석연료 산업계는 ‘회의론 과학’을 생산하고 동시에 공화당 정치인을 후원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의심’을 대중에게 퍼뜨렸다. 과학자들에게 ‘사이비 과학’ 취급 받는 회의론이 언론과 대중에게 과도하게 관심을 받는 모순적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살아 있는 과학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어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정치·경제적 이해, 당대의 문화 등 외부적 요인도 실험실에서 기후모델을 돌리는 과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회의론자들은 이 점을 파고든다. 오레스키스 교수는 이렇게 반박했다.

“물론 과학에도 사회적 단면이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여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작은 정부,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하퍼에게 함정 조사를 진행한 로런스 카터도 “가장 중대한 문제는 하퍼가 연구지원금의 출처를 숨기려 했다는 것”이라며 “저명한 과학학술지는 출처를 명기하지 않는 행위를 비윤리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객관적 현실은 존재한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과학은 파탄 날 것인가? 오레스키스 교수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는 나사의 (기후변화 연구를 위한) 인공위성 연구 부처를 폐지하고 환경청과 에너지부의 과학 예산을 깎는다고 공언했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사람들의 의견은 여전히 과학을 지지하고 신뢰한다. 여타 이슈처럼 대중의 인식과 정치인의 리더십 사이에 불일치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묶어두는 것을 목표로 한 2015년 ‘파리협정’을 탈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지난달 <네이처 기후변화>는 미국이 파리협정을 이행하지 않아도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기후변화 협상은 각국이 눈치 보면서 손해 볼 일은 피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인 움직임은 전체 판을 망가뜨릴 수 있다. 연구진은 미국의 불참 신호가 다른 회원국에 영향을 주면, 지구 평균기온 0.25도 상승에 해당하는 탄소 3500억톤이 추가 배출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과학자들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 지난달 19일 미국 보스턴에서는 과학자와 시민 1000여명은 “객관적 현실은 존재한다”는 피켓을 들고 ‘반과학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보스턴은 하버드,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유수 대학이 있는 곳이다. ‘지구의 날’인 4월22일에도 전세계 과학자들은 320여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백악관 과학기술보좌관 한 명에 이렇게 세계 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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