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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인간의 한계와 겸양을 배우는 곳

등록 2017-06-05 08:36

한 해 4500만명이 찾아오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실험장
‘개발-보전’ 갈등의 현장이기도
사람들에게 가까워진 건 반갑지만
운동과 놀이 공간 취급 아쉬워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가 국립공원 50주년 기념 행사로 지난달 20일 변산반도에서 열린 ‘명사와 함께하는 힐링로드 걷기’에 참가한 청소년들에게 적벽강의 지질학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가 국립공원 50주년 기념 행사로 지난달 20일 변산반도에서 열린 ‘명사와 함께하는 힐링로드 걷기’에 참가한 청소년들에게 적벽강의 지질학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간 내설악 십이선녀탕의 옥색 물빛은 충격이었다. 이후 때 묻지 않은 자연 하면 꼭 그때의 정경이 떠오른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살 때 진달래꽃을 따먹느라 먼 산으로 들어갔다가 능선 넘어 펼쳐진 북한산의 거무튀튀하고 웅장한 연봉을 보고 한동안 넋을 잃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국립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 존 뮤어는 1869년 요세미티 계곡을 본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산으로 된 그 원고의 장엄한 한 페이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일생을 다 바치고 싶다. 그 광경은 얼마나 웅장한가! 그 장엄함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짧은가!”

하지만 환경기자가 되어 다시 본 국립공원은 숭고하고 장엄한 자연이라기보다 개발과 보전, 원주민과 공원 당국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갈등의 현장이었다. 분명한 건 국립공원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미국처럼 방대한 야생이 없는 한반도에서 국립공원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실험하고 고민하는 장소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좋아한다. 성인의 28%가 매달 한 번 이상 등산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인은 ‘등산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한다. 물론 장시간 노동의 스트레스를 풀고 체력단련과 함께 적은 비용으로 교제활동을 하는 데는 등산만한 것도 없다. 그 비싼 등산복과 장비는 두었다가 어디에 쓸까. 그러니 연간 4500만명이 국립공원을 찾고, 단풍철 주말엔 설악산에만 10만 인파가 닥친다.

국립공원이 사람들에게 가까워진 것은 반갑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백두대간의 핵심이자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국립공원의 고산지대가 그저 운동과 놀이 공간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다. 대피소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편의시설을 늘리라는 요구가 높다. 뮤어는 요세미티를 다니며 고기 없이 빵과 물만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는 “이 멋진 야생 상태에서 온전한 자유의 삶을 누리려면 자신을 훈련하고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공원은 인간의 한계와 겸양을 배우는 곳 아닐까.

지난 5월20일 변산반도국립공원 힐링로드 걷기대회에서 시민들과 채석강에서 적벽강까지 해안을 걸으며 국립공원의 또다른 가치를 실감했다. 자연사의 증거인 지층을 탐방객들이 직접 만져보면서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공룡시대인 약 9000만년 전 변산반도에는 백두산보다 큰 화산이 활동했다. 화산 계곡에 형성된 호수 바닥에 화산재와 모래, 자갈이 오랜 세월 쌓여 굳은 퇴적층이 채석강과 적벽강의 해안 절벽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민들은 화산의 칼데라가 함몰하면서 큰 사태가 생겨 미처 굳지 않은 퇴적층이 굽고 뭉개진 흔적과 호수가 용암으로 뒤덮여 사라지기 직전 뜨거운 용암이 퇴적층의 진흙과 자갈과 뒤섞여 표범 무늬로 굳은 독특한 암석을 보면서 당시의 격변을 더듬었다. 국립공원의 지질명소는 자연사 이야기의 보고이기도 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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