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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프로러호가 지나간다는데…” 관측 망원경 하나 없으니

등록 2017-07-10 11:10수정 2017-07-10 11:12

[박상준의 과거창]
미 인공위성 한반도 통과하던 1958년
신문엔 “한국의 과학연구 실정 한심”
천문애호가 조직도 1970년대야 탄생
일본에서는 1870년 <여지지략>을 통해 서양 천문학 지식이 널리 소개됐다. <여지지략>에서 태양계 행성을 표시한 부분(맨 왼쪽).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일본에서는 1870년 <여지지략>을 통해 서양 천문학 지식이 널리 소개됐다. <여지지략>에서 태양계 행성을 표시한 부분(맨 왼쪽).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1987년에 발견된 한 소행성에는 ‘동아천문학회’(東?天文??)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동아천문학회는 1920년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천문학 애호가 모임이며, 처음에는 ‘천문동호회’라는 명칭으로 시작했다. 전문 학자들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관측자들까지 모두 아우른다는 취지로 당시 교토제국대학 조교수이던 야마모토 잇세이가 주도하여 설립한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마모토 잇세이는 1910년에 핼리 혜성이 지구에 접근했을 때 이를 관측하기 위해 교토제국대학 물리학부에 천체망원경이 설치되면서 최초의 천문학 전공생으로 입학했고, 나중에 천문학자가 된 뒤에는 25권 이상의 저서를 출간하는 등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일본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널리 소개된 것은 1870년에 나온 <여지지략>(輿地誌略)을 통해서이다. 이 책은 우치다 마사오가 서양의 여러 서적들 내용을 번역해 펴낸 것으로 일본에 서구 문물을 알리는 국민 교과서의 위상을 지니며 흔히 ‘메이지 시대의 3서’로 꼽히곤 한다.

야마모토 잇세이는 <화성의 연구> 등을 통해 천문학을 대중에게 알렸다.
야마모토 잇세이는 <화성의 연구> 등을 통해 천문학을 대중에게 알렸다.

여기에는 태양계 행성들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지구와 비교한 크기 비율, 영어 이름의 가타카나 표기 등이 함께 나와 있다. 목성 표면의 줄무늬나 토성의 테 등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해야만 알 수 있는 세부 묘사가 반영되어 있고, 명왕성은 발견되기 전이라서 빠졌다.

일본에서 일찍이 1920년대부터 천문 애호가 조직이 태동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범천문인 조직은 1972년에 이르러서야 기록이 보인다.(학술단체인 한국천문학회는 1965년에 설립.)

1972년 11월호 <학생과학>에는 ‘한국 아마튜어 천문가 클럽 탄생’ 기사가 실려 있다. 9월27일에 60여명의 회원이 과학세계사 회의실에 모여 창립했다는 내용이다. 회장은 당시 <학생과학>을 발행하던 과학세계사의 남궁호 사장이며 부회장은 한국일보 서광운 특집부장이었다. 서광운은 우리나라 일간지 최초로 한국일보에 과학부가 생겼을 때 초대 부장을 맡았던 과학전문기자 출신이며 서기로라는 필명으로 직접 에스에프(SF) 소설도 여러 편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고문으로는 조경철, 현정준 등의 천문학자와 양인기 중앙관상대장 등이 참여했다.

‘한국 아마튜어 천문가 클럽’은 발족하자마자 곧 한-일 천문인 교류 사업을 벌여, 1972년 10월 초에 일본 천문 관측단이 한국에 와서 자코비니 유성우 합동 관측 행사를 벌였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이날 기대와 달리 유성우가 나타나지 않아 양국 천문인들은 밤새 우의를 나누는 데 만족했다고 한다.

일본에는 일찍이 1920년대 천문 애호가 조직이 탄생했지만, 한국의 범천문인 조직은 1972년에 이르러서야 기록이 보인다. 그해 <학생과학> 11월호에 실린 ‘한국 아마튜어 천문가 클럽 탄생' 기사.
일본에는 일찍이 1920년대 천문 애호가 조직이 탄생했지만, 한국의 범천문인 조직은 1972년에 이르러서야 기록이 보인다. 그해 <학생과학> 11월호에 실린 ‘한국 아마튜어 천문가 클럽 탄생' 기사.

‘한국 아마튜어 천문가 클럽’ 발족 기사에는 회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주요 천문 관측 시설들을 나열한 부분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에는 서울대 문리대, 남산 어린이회관, 경기고교, 경북과학관 등 네 곳에 플라네타륨(천체투영기)이 있었고, 그와 함께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어린이회관 등에서 다양한 구경의 천체망원경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나온다. 이 부분이 눈에 띄는 이유는 당시보다 14년 전인 1958년에 이런 신문기사가 났기 때문이다.

“미국 인공위성 익스프로러호가 부산 상공을 지난다는데 현재 국내에는 이를 관측할 아무런 시설도 없다. 중앙관상대 천문관계자는 ‘좋은 기회이나 망원경 하나 제대로 없으니 하는 수 없다’고 한다. 서울대 문리대 실험무선국에서도 인공위성의 전파 신호를 잡지 못한다 하니 외신보도만을 유일한 과학연구 자료로 삼고 있는 한국의 과학연구 실정이 한심하다.”(경향신문 1958년 2월7일)

우리나라의 아마추어 천문인 조직은 일본에 비하면 시작이 많이 늦었지만, 개별적으로 천체 관측을 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로 알려진 이원철은 1926년에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수물과 교수를 지냈는데, 1938년에 일제의 강압으로 퇴직하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천체망원경으로 관측 실습을 지도했다고 한다. 그 제자 중에서 훗날 천체망원경을 구하거나 직접 만들어서 관측을 한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원래 천체 관측은 쌍안경으로도 가능하며, 아마추어용 천체망원경은 제작 원리도 간단한 편이다. 특히 1970년대 이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대기도 맑고 빛 공해도 적어서 서울에서도 맨눈으로 은하수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아마추어 천문가 활동을 했던 분들에 대한 제보를 기다린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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