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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100년 전, 용산서 비행기 날던 시절

등록 2017-08-07 08:53수정 2017-08-07 09:25

[미래&생명] 박상준의 과거창
한반도 최초 비행기 선보인 곳...용산연병장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박경원 아닌 ‘권기옥’
한반도에서 비행한 최초의 비행기인 일본의 오토리호(1913년).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한반도에서 비행한 최초의 비행기인 일본의 오토리호(1913년).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항공 노선은 어디일까?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모든 항로 중에서 오로지 이 구간만 이용객 1천만명을 넘었다. 답은 서울(김포)~제주이다. 뉴욕, 도쿄, 런던, 상하이, 어디에도 이보다 더 붐비는 노선은 없다.

항공 여행의 역사는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로부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13년에는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의 용산연병장에서 한반도 최초로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선을 보인다. 일본인 나라하라 산지가 만든 비행기 오토리호였다. 당시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운집한 청중이 6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일본인 비행사들의 비행 시범 행사는 연달아 계속 열렸다. 유료 행사였기에 수입도 꽤 되었지만, 아마 식민지 사람들에게 일제의 우월한 과학기술력을 과시한다는 의도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간 비행 시범 쇼가 반복되어 반응이 시들해질 즈음, 미국에서 곡예비행사가 왔다. 1917년 여의도비행장, 아트 스미스가 커티스 비행기를 몰고 이륙한 다음 보여준 묘기는 놀라웠다. 청중들 머리 위를 아찔하게 지나가는 초저공 비행이나 급반전 등은 물론이고, 연기로 공중에다 글씨를 쓰거나 심지어 비행기 날개에 사람을 세워놓고 날기까지 했다. 당시 그의 비행 쇼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경성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관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키운 청년들이 있었다. 바로 안창남과 권기옥이다. 안창남은 경성에서, 그리고 권기옥은 평양에서 스미스의 비행 쇼를 보고 파일럿의 꿈을 키우게 된다.

안창남은 흔히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로 알려졌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땅에서 비행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안창남은 1921년 일본에서 조종사 면허를 딴 뒤 1922년에 귀국하여 금강호를 타고 여러 차례 시범 비행을 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민족적 자긍심에 뿌듯해하며 엄청나게 열광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안창남보다 앞서서 중국이나 미국에서 먼저 조종사가 된 한국인들이 있으며, 당시 재미동포 중에는 1차 대전 막바지인 1918년에 프랑스로 가 독일과의 국경지대에서 비행선 조종사로 참전한 이응호(조지 리)라는 인물도 있었다. 안창남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던 중 1930년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왼쪽부터 이상화 시인, 권기옥, 이상정(독립운동가. 권기옥의 남편이자 이상화의 형). 정혜주씨 제공
왼쪽부터 이상화 시인, 권기옥, 이상정(독립운동가. 권기옥의 남편이자 이상화의 형). 정혜주씨 제공

1901년생으로 안창남과 동갑내기인 권기옥은 10대 소녀 시절 고향 평양에서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 쇼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뒤 항일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쫓기자 중국으로 망명했는데, 비행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계속 거절당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당시 임시정부 재무총장이던 이시영의 추천서를 갖고 마침내 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한 다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 된다. 그는 어떻게든 비행기를 마련하여 직접 조선총독부를 폭격하기를 원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장제스의 중국 공군에 소령으로 입대해, 1932년에는 상하이를 침공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일본군 진영에 기총소사를 퍼붓기도 했다. 해방 이후 귀국해서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우리나라 공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1957년부터는 16년 동안 <한국연감>을 발행하는 등 출판인으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1988년에 작고했다.

1925년 출간된 <응용과학전서>에 소개된 프랑스 드부아틴 전투기. 서울에스에프아카이프 제공
1925년 출간된 <응용과학전서>에 소개된 프랑스 드부아틴 전투기. 서울에스에프아카이프 제공
권기옥은 2005년에 영화 <청연>이 개봉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누구인가 하는 논쟁이 촉발될 때 재조명된 바 있다. 영화의 실제 모델인 박경원은 권기옥보다 2년 늦은 1927년에 일본에서 비행기 조종 면허를 딴 뒤 조종사로 활동하다 1933년에 추락사고로 사망했는데, 생전의 성향이 친일파였음을 부인하기 힘들어 여러모로 권기옥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권기옥의 생애는 2015년에 평전 <날개옷을 찾아서>(정혜주)가 출간된 이후에야 제대로 주목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비행기와 비행사들은 분명 이 땅의 청년들 시야를 넓히는 데 기여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유럽에서는 극동까지 장거리 비행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와서, 1923년에 프랑스 비행기가 유럽에서 출발한 것으로는 최초로 한반도에 착륙했고, 뒤이어 25년에는 러시아, 26년에 덴마크, 27년에 체코 비행기들이 속속 한국 땅에 내려앉았다. 이들은 모두 최종 목적지인 도쿄에 앞서 중간 기착지로 한반도를 거친 것이다.

1913년부터 간이비행장으로 쓰이던 용산연병장은 1916년에 여의도에 제대로 조성된 비행장에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다가 일제는 1942년에 김포비행장을 새롭게 건설한다. 애초 동양 최대 규모로 계획되었다가 2차 대전 중의 자금난으로 축소된 이곳은, 종전 직전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훈련비행장으로 쓰였던 어두운 역사도 있다. 그로부터 70년 뒤, 이 비행장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로의 기착지가 될지 그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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