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얇게 착 달라붙는 문신 같은 센서. 센서들은 각종 생체신호뿐 아니라 자외선 노출과 같은 환경 요인에 이르는 다양한 건강 변수를 측정할 수 있다. 정밀의료의 가까운 미래상에서는, 의료가 일상생활 모니터링과 진단기능을 통합해 개인에 맞춘 건강 코칭도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 일본 도쿄대 소메야 타카오 교수 연구진 http://www.ntech.t.u-tokyo.ac.jp/en/
누구나 가까운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해한다. 사회에 진출하기 이전인 예비직업인, 진로나 전공을 결정하려는 학생 등은 특히나 가까운 미래 사회의 유망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직업인으로 활동 중인 사람들도 가까운 미래에 사회와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그 모습을 예측하는 데 관심이 많은데, 그 이유는 예측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활동(새로운 사업방향이나 아이템)의 기회를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도 당연히 가까운 미래에 의료와 신약이 어떤 방향으로 변해갈지 궁금해한다.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낙오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제약바이오 산업을 대한민국의 핵심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관심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의료, 신약의 모습에 대해선 일반인의 궁금증도 대단히 크다. 많은 매체를 통해 ‘100세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그 길어진 인생 동안 어떤 방식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는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런 주제와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건강을 지키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림 1. 정밀 의료의 개요. 건강 관리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정밀 의료에 기여할 수 있다. 출생 전후에 유전형 검사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질병 위험을 파악할 수 있고 집에서는 맞춤형 건강 모니터링 장치를 통해 자기 몸의 위험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모니터링 장치들은 환경 및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통합하여 건강 포털(그림에서 회색 부분)에 전송한다. 출처: Sci Transl Med. 2018 Feb 28;10(430), pixabay.com의 그림으로 재구성
의료, 신약의 가까운 미래를 지배하게 될 개념으로, 많은 분들이 ‘개인 맞춤형 의료’(Personalized medicine)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개념도 점차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라는 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실 두 개념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전자의 표현이 개별적인 치료신약이나 치료기구의 개발과 같은 한정적인 의미로 인식되는 데 비해, 후자의 경우는 다양한 개인 건강정보(예를 들어 기존에는 가족력과 유전조사 등의 제한적 정보만 사용되었지만, 앞으로는 생활습관과 사회경제적 요인을 모두 고려한다)를 기반으로 개인에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를 적용하여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도록 돕는 헬스케어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 그림)
기존 의료 시스템은 개인이 필요에 따라 병원에 가고, 그곳에서 일시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질병과 관련된 제한적인 정보들을 기초로 개인의 건강 상황(특히 이미 발생한 질병)을 판단하고, 일률적인 치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개인의 다양한 건강 정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간(또는 지속적으로) 수집되고 이 많은 데이터가 한 곳(통합 건강 포털)으로 전달된다. 개인의 빅데이터는 질병이 생기기 이전에 미리 생활습관(수면습관, 식사습관, 운동습관 등)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해야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개인에게 코칭을 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또한 질병이 감지되면 유전적 요인을 포함한 개인적 질병 특성에 근거해 치료를 하도록 개인의 빅데이터는 활용된다.
이런 시스템의 완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생활습관과 건강지표들을 실시간으로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스마트 주택, 그리고 거기에서 모인 빅데이터를 분석해 개인 질병 특성을 고려한 치료를 설계하는 다양한 치료 전략들(다양한 신약들)이 꼭 필요하다. 이들 가운데서 익숙한 이름이지만 아직 그 활용 방법에는 익숙하지 못한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스마트 주택의 가까운 미래 모습을 먼저 알아보자.
다양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에 의해 측정된 정보들은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등의 방법으로 핸드폰으로 모이고, 이 정보들은 건강포털 데이터베이스로 모여 환자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의 건강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출처: www.flickr.com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스마트 주택의 건강 모니터링
이미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건강 관련 기능의 앱(App)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대표적인 형태인 스마트 워치에 익숙한 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욱 다양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그림 2) 팔찌 모양의 스마트 워치를 이용하여 운동량 측정과 각종 생체 신호의 변화를 감지하기도 하고, 신발과 의류를 통한 각종 생체신호 분석은 물론 초기 암의 진단(스마트 브래지어를 통한 초기 유방암을 발견하는 기술도 연구 진행 중)까지도 가능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콘택트 렌즈는 안압과 포도당을 측정해 대사질환을 상시 감시하며, 피부에 얇게 착 달라붙는 문신 같은 센서들(전자피부)은 각종 생체신호뿐만 아니라 자외선 노출과 같은 환경요인에 이르는 다양한 건강 변수들을 측정할 수 있다. 이처럼 측정된 각종 데이터는 스마트폰에 모여 통합 건강 포털로 전송된다. 정밀의료에서는 일상생활 모니터링과 진단기능을 통합하여 건강 관리 담당자(또는 인공지능)의 개인 건강 관련 정보 접근성을 높여 이들이 개개인에게 실행 가능한 코칭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이 각종 건강 정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한다면 왜 굳이 스마트 주택 같은 모니터링 시스템이 더 필요하고 또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될까? 사실 24시간 내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착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연속적인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기 어렵다. 예들 들어 움직이기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해보자. 대사질환의 상시 모니터링을 위해 사용해 본 적 없는 콘택트 렌즈를 쓰시라고 하면 항상 착용할 수 있을까?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 편안한 모니터링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이런 점에서 스마트 주택으로 대표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가까운 미래에 발전하리라고 예측되는 것이다.
주택이나 자동차의 여러 장치들을 통하여 인간의 행동, 생리적 신호, 그리고 생물학적 유체(biological fluids)를 모니터링 한다. 출처: pixabay.coom
매일 출퇴근 하는 동안 스마트 자동차 안의 센서들은 운전 행동을 통해서 스트레스 수준과 졸음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외부 공해(미세먼지) 수준이 높다거나 운전자의 호흡에서 알코올이 감지되면 운전을 삼가도록 경고한다. 스마트 주택 안의 침실에서는 심폐기능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침대 시트에서 잠자는 동안에 정신 건강과 수면의 질이 모니터링 되며, 화장실에서 양치질 할 때 칫솔은 침의 생화학적 분석을 진행하고, 스마트 화장실에서는 소변을 자동으로 분석하여 신체 대사(당뇨병을 포함한)의 문제점을 찾아낼 뿐 아니라 요로감염, 방광암 또는 전립선암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분석해 낸다. 이와 비슷하게 대변을 통해서는 염증성 장 질환과 대장암 등의 진단 정보를 제공하여 대장 내시경 검사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상상 속의 일이 아니라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스마트 디바이스들이 꿈꾸는 가까운 미래상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수많은 연구들을 진행하는 과학자들의 성과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밀의료의 개념과 그 방향은 지금까지 설명된 것들로 예측되지만, 정확한 미래의 모습으로 모두 받아들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상상해보길 바란다.
정밀 의료에 사용되는 정밀 치료제들은?
가까운 미래에 구현될 정밀 의료의 모습은 지금의 의료체계와 많은 부분에서 다를 것이다. 어찌 보면 각종 디바이스들과 정보통신이 의료를 책임지는 듯한 모습으로 상상되기에 충분한 그림들이었다. 그렇다면, 정밀 의료 시대에 사용될 정밀 치료제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그 방향성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변화를 통해 유추해보자.
최근 FDA의 정책에서는 어떤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FDA가 작년 면역항암제에 대해서 특정 부위로 한정되는 방식의 허가가 아니라 암의 성격에 따라서 사용될 수 있는 허가를 처음으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항암 치료제와 관련해서는 유방암, 폐암, 방광암, 피부암 등에 따라서 각각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신약으로 허가를 내주었던 기존의 방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는 암의 위치가 신약의 치료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기보다는, 암의 특성(암 특이적 돌연변이의 발생이 많고 적음에 따른 분류)이 더 중요해지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정밀 의료에 사용되는 정밀 치료제는 개개인의 질병특성에 맞는 치료제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출처: pixabay.com, https://www.youtube.com/watch?v=HQKFgfMO5Sw
암과 치료제를 공부와 수험생에 비유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이 경우를 암에 걸린 상황으로 생각해보자) 성적을 높이는 것(건강해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성적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학생의 상태가 어떤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지, 암기과목이 문제인지 국영수가 문제인지, 기초가 부족한 것인지 그 수험생(암환자)의 문제점(특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좋은 성적(암의 치료)을 올리도록 그 수험생만의 대책(환자만을 위한 정밀 치료제)을 준비해서 실행(치료)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방식대로 국사 과목은 암기과목이니 무조건 오랜 시간 암기만 하라고 강요하는 방법(한 가지 방법을 기존의 약물이라고 생각해보자)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기존 약물로 치료가 가능했던 환자), 그렇지 않은 경우도 대단히 많았다. 하지만, 이제 동일한 과목의 성적이 나쁜 수험생들의 경우도(똑같은 위치에 발생한 암이라도) 수험생의 성적이 좋지 못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여(암의 특성이 어떤지에 분류하여) 그 원인을 극복할 수 있는 공부법(암 특성에 딱 맞는 치료제)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치료제가 가능해지기 시작했으며, 앞으로도 점점 이런 방향으로 신약 개발과 허가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수험생들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하다. 집중력이 부족하면 집중력을 기르는 연습이 동반되어야 성적이 오를 수 있고, 다른 문제 없이 책상에 앉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 그 시간을 늘려야 한다. 모르는 것을 학원에서 배우는 방법으로 좋은 효과를 보이는 학생도 있고, 과외가 효과적인 경우도 있으며, 스스로 풀어내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인 학생도 있다.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철저히 개인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 활용해야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처럼, 효과적인 정밀 치료제는 질병 특성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치료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치료제와 치료법(여러 치료제들의 복합적인 사용을 포함한)의 개발이 정밀 의료 시대를 준비하는 치료제 개발자들이 진행하는 일들이다. 물론 개개인의 다양한 상황에 딱 맞는 치료제들을 수많이 개발해야 가능한 일들로 시간이 많이 걸릴 일들이다. 다만 신약개발의 방향성을 유추하기에는 분명히 의미 있는 변화인 것이다.
‘바이오마커’의 개발과 선택은 정밀 의료에서 중요하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T-iUJwEy0E
FDA의 또 다른 변화 하나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선택한 공부 방법의 변화가 개인에게 맞는지는 어떤 방법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모의시험 성적을 확인해보면, 변화된 나의 공부방법이 적절한 솔루션이었는지 한 달이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에서는 그 판단 근거가 되는 환자들의 치료 효과들을 오랜 시간이 흐른 이후에나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료 결과가 좋을지를 모의고사 성적으로 판단하듯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몇 번의 실패가 있더라도 금방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사용하고 좋은 치료의 결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모의고사와 같이 빠르고,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 할 수 있는 방법의 개발이 신약 개발과 허가에서도 강조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각종 바이오마커(bio-marker)들이다.
쉬운 예로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뇌질환의 경우 수많은 후보 물질들 가운데 임상시험을 통과하는 경우가 드물 뿐 아니라, 허가된 약물들도 질병의 증상을 조금 늦추는 수준의 약물들뿐이다. ‘장기간 약물 투여에 따른 인지기능의 개선’을 확인해야만 허가가 가능했던 것이 기존의 FDA 가이드라인이었는데, 혹시 이 FDA 가이드라인이 수많은 약물들이 실패했던 중요한 이유는 아닐까? 특히, 이런 가이드라인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의 경우 그 적용이 대단히 어렵다.
이런 고민 때문에 최근 FDA는 인지 기능의 개선과 같은 약물 효능 대신에 바이오마커를 임상시험의 평가방법으로 하겠다며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어떤 수험생이 여러 공부 방법들 중 자신에게 효과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할 때, 그 방법의 효과를 하루 또는 몇 시간 만에 간단한 쪽지 시험(바이오마커)으로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면 한 달 이상 소요되는 모의고사보다도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에 자신에게 최적인 공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신약개발에서 바이오마커의 중요성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단지 뇌질환에만 국한 되지도 않는다.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적절한 바이오마커의 개발과 이용이 신약개발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FDA의 변화를 통해 정밀 치료제들의 방향을 예측해보았다. 앞으로는 같은 질병도 개개인의 질병 특성이 더욱 더 반영되는 치료제가 사용되며, 단기간 약물 투여로 장기간 약물 투여 효과를 예측하게 해주는 바이오마커의 개발과 이용이 중요해져간다고 이야기하였다. 물론 현재와 미래의 목표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 그 차이를 극복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수많은 “병의 특성이 심도 깊게 반영되는 치료제와 처방법”의 개발과 “다양하고 정확한 바이오 마커들”이 개발되어 혜택을 받는 환자 맞춤형 정밀 치료제의 시대로 우리는 점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빨리 그 시대가 구현될지에 대해서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하지말자. 많은 시간과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의 결과에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펼쳐질 수도 있고, 다음 세대에 가서도 쉽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세상이 움직이고 있는 방향만은 위에서 언급한 방향으로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태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
tjyoon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