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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더윗병 30도부터 급증하는데…폭염특보는 33도 돼야 ‘삐~’

등록 2018-08-13 06:00수정 2018-08-13 11:56

[한겨레 미래&과학]
연령·소득·직업별 임계기온 달라
온열질환 발생 패턴도 지역별 차이

서울 서대문·대구 북구는 열대야에
임실·창녕·담양군은 기온에 취약

사회·경제·환경 맞춤형 대책 필요
“열지수 개인별로 전달돼야 효과”
강원도 홍천이 41.0도로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한 8월1일 오후 서울 성수동 공원에 설치된 온도계가 42도를 표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강원도 홍천이 41.0도로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한 8월1일 오후 서울 성수동 공원에 설치된 온도계가 42도를 표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록적인 폭염이 닥쳤던 1994년과 2016년을 넘어서는 혹독한 무더위로 올 여름 더윗병(온열질환)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의 특보 기준으로는 33도 이상이 폭염으로 분류되지만 더윗병은 더 낮은 온도에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1일 서울 낮 최고기온이 39.6도까지 치솟기 이전 서울에서 관측된 가장 높은 기온은 1994년 7월24일의 38.4도였다. 하루 뒤(7월25일) 서울의 일 초과 사망자 수는 80명에 이르렀다. 초과 사망은 평균 사망률보다 높은 사망을 말한다. 당시 서울에서는 하루 최고 18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8년 기상청은 일 평균 사망자 100명보다 50명이 초과하는 때(150%)의 기온 33도와 80명이 초과하는 때(180%)의 기온 35도를 기준으로 삼아 폭염특보(주의보·경보)를 도입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집계된 더윗병 환자 수는 줄기는커녕 해마다 늘어 올해는 7일 현재 3536명(44명 사망)에 이르렀다. 더욱이 그동안 발생한 온열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분석해 나온 ‘임계기온’, 곧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는 온도는 폭염 기준보다 낮은 30도로,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33도 구간에서는 오히려 환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올해초 발간·배포한 ‘국가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기후변화 적응역량 구축·평가’ 보고서를 보면, 2002~2016년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온열질환자 데이터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온열질환은 일 최고·최저기온, 폭염일수 및 지속일수, 최대열파 지속일수 가운데 일 최고기온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또 온열질환자의 임계기온은 주상병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모두 전국 평균적으로 30도로 분석됐다. 온열질환은 열사병·일사병 등이 포함된 질환코드(T67) 계열의 질환을 말한다. 주상병은 치료나 검사에 대한 환자의 요구가 가장 커 의료자원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했던 질환을 가리킨다. 부차적인 질환은 부상병이라 한다. 연구를 주도한 채여라 환경정책평가연 선임연구위원은 “임계기온은 사용데이터와 가공방법, 통계분석방법에 따라 연구별로 다를 수 있다. 다만 현재의 폭염특보 기준이 온열질환자 발생 관리에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8년 폭염특보 기준을 기상청에 제안했던 박종길 인제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폭염특보는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오히려 증가했다면 기준과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온열질환 임계기온이 연령별, 지역별, 직업별, 소득별로 차이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주상병 외래환자의 연령별 임계기온을 보면, 30대 이하에서는 30.3도이지만 40대만 돼도 28.6도로 낮아진다. 40대에서는 35.6도에서 2차 임계기온이 나타나 고온에서 환자가 다시 한번 급증했다. 50대~64살 구간에서도 두차례 임계기온이 나타났는데, 각각 24.1도와 29.9도였다.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낮은 기온에서도 온열질환자가 증가함을 보여준다. 65살 이상에서는 아예 임계기온이 관찰되지 않고 온열질환자가 기온에 비례해 증가했다. 이는 노인들이 기온 상승에 지속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업종별로도 차이가 나 외부 활동이 많은 전기·가스·수도사업의 경우 임계기온 29.0도 이전부터 환자가 증가하다 임계기온 이후 급증해 환자 발생 비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매우 높았다. 농림어업도 임계기온(29.6도) 이전부터 환자 증가세가 뚜렷했다.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나타난 기온은 농림어업의 경우 33도로 이후 환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다른 업종의 환자 증가 정점 기온은 건설업 37도, 제조업과 공공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38도로, 연구팀은 이들 업종 종사자들이 일 최고기온이 올라가도 계속 일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소득별 분석에서, 0분위 저소득층은 임계기온 이전부터 환자가 지속해서 증가하다 임계기온을 기점으로 급증하는 반면 1~5분위는 임계기온 이후 환자 증가세가 뚜렷하지 않았다. 또 0분위는 6월 초순부터 환자가 늘기 시작하는데 다른 분위에서는 7월 중순부터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모든 분위에서 환자가 정점을 이루는 시기는 8월 초순이었다.

지역별 편차도 심했다. 전체 분석 229개 시군구 가운데 온열질환 외래환자 발생 비율이 높은 28위까지를 상위 그룹으로 분류했을 때, 온열질환 주상병과 부상병 발생 비율이 모두 높은 지역은 충남 당진·보령·서천·금산, 충북 청주, 전북 무주·김제·임실, 전남 장성·광양·보성·고흥·신안·영암, 경북 영천, 경남 고성·김해, 부산 기장 등이었다. 특히 발생 패턴이 지역별로 달랐다. 가령 임실군은 임계기온 없이 온도 상승에 비례해 환자가 증가한 65살 이상의 온열질환 발생 패턴과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반면 청주시는 온열환자 증가에 기온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요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임실·창녕·담양·정선군 등 65살 이상 인구 비율이 높고 7·8월 최고기온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지역에서는 고령자 방문 서비스·무더위 쉼터 마련 등의 정책을 펼치고, 열대야 등에 큰 영향을 받는 대구 북구, 서울 서대문구, 인천 강화 등은 조기 폭염경보 등 적응대책에 우선순위를 두는 등 지역별 온열질환 발생 패턴에 따라 대응 체계를 달리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온열질환 발병 비율이 내국인보다 4배나 높아, 폭염 정보 전달 등 외국인에 대한 폭염 대책이 필요함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채여라 선임연구위원은 “현 폭염특보 체계는 단기간의 기온만을 고려하고 있어 지역별·계층별로 다른 취약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더운 날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지역별·직업별 폭염 영향 결정 요인이 무엇인지 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길 교수도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폭염특보에서 나아가 개개인들이 실제 작업장에서 몇분 일하고 몇분 쉬어야 할지, 물을 얼마나 마셔야 할지 등을 개개인의 환경에 맞춰 정보를 생산·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 연구팀은 최근 개인형 맞춤 폭염대비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인체 열지수모델’을 개발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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