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고대의 폐허가 열대 우림과 뒤엉킨 이국적 풍경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이자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이다. 사실 이 지역은 13세기 세계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가 있던 자리다. 메트로폴리스 앙코르가 패망한 이유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논란이 분분한데, 그 원인이 ‘기후’에 있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가 새로 나왔다
앙코르는 인도차이나 반도와 지금의 중국, 베트남까지 걸쳐 있었던 크메르 제국의 중심 도시로, 번성기에는 면적이 최소 100㎢에 달하는(현대 서울이 약 600㎢) ‘메가 시티’였다. 600년 동안 번창하면서 인구가 늘고 각종 건축물이 들어섰는데 앙코르와트(와트란 사원을 뜻함)는 그 대표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도시는 갑자기 버려지고 나무와 폐허가 어우러진 흔적만 남았는데, 이에 대한 뚜렷한 문헌이 없어 원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연구는 샴족의 침략, 종교적 이유, 내전 등의 인문학적 설명에 초점이 맞춰졌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의 지구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다니엘 페니(Daniel Penny)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지역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컴퓨터 모델링 기법을 통해 그 원인이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한 대홍수에 있다고 분석해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17일(미국 현지시각) 발표했다.
연구팀은 해당 지역에 대한 가능한 고고학적 지도 자료를 모두 동원해 도시를 모델화했다. 거대 도시 앙코르는 거주민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수로, 해자, 저수지 등으로 이뤄진 복잡한 관개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는 도시 구조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 지역은 14세기 말께 심한 여름 몬순 기후를 경험했다. 강우 자료에 의하면 몬순 때 내리는 지역 폭우가 당시에는 특히 심각해서 큰 홍수가 연이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이 강우량 데이터를 앙코르 도시 모델에 적용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았다. 그 결과 홍수에 의한 막대한 물의 유입에다 침식 현상과 퇴적물이 쌓이는 현상이 겹치면서 관개시스템이 급격히 붕괴한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연구진의 결론은 수로 시스템의 남아 있는 물리적 흔적과도 잘 들어맞았다. 즉, 홍수가 이어지면서 앙코르의 관개시스템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주민을 먹여 살릴 농작물 생산이 타격을 입으면서 도시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닥친 기후 변화는 인류의 산업화 시기 이전이라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지구 온난화와 큰 상관은 없다. 하지만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거대 도시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는 현대 도시에도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페니 교수는 “우리 연구 결과는 (도시) 인프라의 취약함이 갑작스러운 기후 변동과 만나면 도시의 패망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앙코르의 멸망의 원인은 복잡한 인프라를 갖춘 현대 도시들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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