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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누리호 가는 길, 이제 징검다리 하나 건넜죠”

등록 2018-12-08 13:53수정 2018-12-09 14:07

지난 5일 항공우주연구원의 장영순 단장(오른쪽)과 최지영 연구원이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한 시험발사체의 엔진과 동일한 형태의 모형 엔진을 앞에 두고 발사체 엔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전/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5일 항공우주연구원의 장영순 단장(오른쪽)과 최지영 연구원이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한 시험발사체의 엔진과 동일한 형태의 모형 엔진을 앞에 두고 발사체 엔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전/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시험발사체 개발 장영순 단장·최지영 연구원

11월28일 75t 엔진 시험발사
자력발사 청신호 쏘아올린 날
“어느 순간 환호할지 몰라 어벙벙”
시험발사와 별개로 개발 일정 계속
항우연·기업 등 1200여명 개발참여

폭발위험 연소 불안정 난관 뚫고
무게 줄여 2~3㎜두께 연료탱크 제작
4개 엔진 묶는 ‘1단 기술’이 관문
“성공과 실패 보는 눈 성숙해져야”

▶ 300t급 추력의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2021년 완성을 목표로 한창 개발되고 있다. 1200여 명이 연구개발에 참여 중이다. 지난 11월28일 발사에 성공한 75t급 시험발사체는 누리호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먼 길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장영순 발사체체계개발단장과 최지영 선임연구원을 통해 연구개발 뒷얘기를 들어봤다.

우리 위성을 우리 땅에서 쏘아 올린다는 꿈을 실은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2차례 실패 끝에 2013년 발사에 성공했지만,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Ⅱ)를 우리 연구진의 손으로 만든다는 건 여전히 꿈같은 일이었다. 나로호에서 핵심 구실을 한 1단 로켓은 러시아에서 제작해 들여온 것을 사용해 사실상 ‘절반의 성공’에 그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새로운 출발을 할 터전은 있었다. 우리에겐 그때 건설한 발사대가 있었고 발사 과정 전체를 운용해본 경험이 남았다. 또한 당시에 개발한 30t급 액체엔진의 핵심 기술도 있었다. 거기서 출발했지만, 한국형 발사체의 개발 목표는 간단치 않은 ‘높은 산’이었다.

그로부터 5년 만인 11월28일 오후 3시59분58초, 마침내 75t급 액체연료 엔진의 시험발사체가 전남 고흥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중력을 거슬러 날아올랐다. 시험발사체는 목표치를 넘겨 151초 동안 연소하며 최대고도 207㎞까지 올라 10여분 동안 비행했다. 2021년 1.5t의 실용위성을 싣고 날아오를 300t급 우주발사체의 시험 발사는 아니었지만, 이제 연구자들은 중요한 징검다리 하나를 건넜다. 75t급 추력의 엔진을 4개 묶으면 300t급 엔진의 한국형 발사체가 완성된다. 부담을 한결 덜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을 지난 5일 찾아가 장영순 발사체체계개발단장(56)과 최지영 선임연구원(37)을 통해 연구개발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발사체 개발엔 항우연 연구진 255명과 외부 협력업체를 비롯해 모두 1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발사 10분 전, 손이 차가워졌다

시험발사체 발사는 한 차례 연기되는 진통을 겪은 뒤에 이뤄졌다. 본래 10월25일 발사 예정이었으나 발사 전 점검과정에서 추진제 가압계통에서 압력 감소 현상이 발견돼 일정이 늦춰졌다. 그만큼 발사 당일의 긴장과 감격은 컸을 것 같다. 발사 과정을 총지휘하는 발사지휘센터(MDC)에 있던 두 연구자한테 분위기가 어땠는지 물었다. “(주로 고흥 우주센터에 있다가) 넉 달 만에 대전 항우연사무실로 돌아왔다”는 장 단장은 “사실 어느 순간에 환호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 어벙벙 했다”고 말했다.

?발사 성공 직후에 연구자들이 환호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분위기는 어땠나?

장영순 단장? “발사지휘센터는 차분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이다. 모든 임무가 완료될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발사 직후에 관람석에선 곧이어 환호가 터졌지만 연구자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발사하고 600초가량 지난 뒤에 발사 성공 선언이 나온 뒤에야 환호하고, 난리였다. 사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환호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자력으로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까.”

최지영 연구원 “발사 10분 전 자동발사과정에 들어가자 손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났다. 내 임무는 비행성능을 평가하는 일이라 제대로 날아갔는지 궤적을 추적하느라 사실 발사 성공 선언 뒤에도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발사체 비행의 실측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기존 시뮬레이션을 평가하는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발사일 오전엔 상공의 바람 상황에서 심상찮은 조짐이 보여 발사 일정을 또 연기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에 (고도 10~20㎞에서 부는) 고층풍이 발사에 적합하지 않은 쪽으로 변하는 듯했다. 다행히 오후 분석 결과를 토대로 발사 결정을 내려졌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이 발사 순간엔 어떨지 몰라 내내 긴장했다. 무사히 예상 궤적을 따라 비행하는 모습을 확인하니 떨리면서도 기뻤다.”

“발사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을 두 가지로 말한다면, 하나는 불안정한 이륙의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층풍이다. 고층풍이 강하면 발사체가 밀리기 때문에 자세 제어 프로그래밍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라디오존데’(풍선 모양의 대기 측정장치)를 띄워 고층풍을 모니터링한다.”

성공의 감격은 잠시이고 다시 바쁜 일정이 이어진다. 인터뷰 한 날 항우연의 북적이는 구내식당에서, 건물 복도, 연구워 내에서 많은 연구자와 직원을 만났지만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의 분위기만 느껴졌다.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을 두고서 항우연의 한 연구자는 페이스북에 ‘30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라는 감격을 전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한국과학로켓(KSR) 시리즈의 개발 노력이 75t 시험발사체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항우연과 과학로켓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이룩한 한국과학로켓의 성과를 잇지 못하고 나로호에 러시아 1단 로켓(RD-151)을 써야 했던 일이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13t급 액체엔진 과학로켓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게 2002년이었다. 큰 성과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우주발사체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데 발사체 개발 일정이 크게 앞당겨지면서 현실적으로 자력 개발이 어려워졌다. 그런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 선진국 기술 협력이었고 러시아가 함께하게 됐다. 과학로켓의 성과를 잇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러시아와 함께 나로호를 발사한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다. 아시다시피 발사대를 함께 만들었고 실제 발사 과정을 경험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를 자력으로 개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나로호 경험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75t 엔진 4개 묶어 1단 로켓으로

지구 중력을 거슬러 거대 발사체를 날아오르게 하는 데에는 엄청난 추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추력을 내기 위해선 많은 연료를 짧은 시간에 안정적으로 분사하고 연소하는 고압, 고온, 극저온의 기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폭발적 추력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견디도록 로켓 몸체를 무작정 두껍게 만들 순 없다. 발사체는 될수록 가벼워야 한다.

?더욱 강력한 폭발과 더욱 가벼운 몸체, 이런 모순적인 요건의 종합과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게 발사체의 아슬아슬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 “그렇다. 엔진 추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사체를 가볍게 만드는 것도 비행 성능에 매우 중요하다. ‘연료가 연소된 이후의 발사체 무게’를 ‘연료를 탑재한 발사체 무게’로 나눈 값을 ‘구조비’라 하는데 낮을수록 발사체 성능은 높게 평가된다. 좋은 발사체는 구조비가 7~8% 수준이지만 이번 시험발사체는 10%를 넘겼다. 갈 길이 멀다. 연료탱크 무게를 줄이는 게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시험발사체의 연료탱크 벽 안쪽은 격자무늬 구조로 만들었다. 격자무늬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는 2~3㎜ 두께까지 파냈다. 격자 문틀에 한지를 바른 한옥 방문과 비슷하다.”

?발사체 무게를 줄이는 게 그렇게 힘든가?

“발사체를 설계할 때 목표로 삼는 비행 성능을 내는 데에 허용되는 총 무게 값이 나온다. 그 무게를 엔진, 연료탱크 등 개발 연구팀에 배분한다. 그러면 연구팀들은 서로 허용 무게를 더 많이 배분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전체 시스템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게를 줄이는 게 매우 어렵다. 발사체 무게의 92~93%가 추진제 연료다. 그걸 빼고 이미 줄일 데까지 줄인 발사체 장치와 설비에서 무게를 더 줄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연소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발사체 엔진을 개발할 때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연소불안정이란 무언가?

“발사 추력을 높이려면 연소기에서 될수록 더 많은 연료를 더 빠르게 연소해야 한다. 시험발사체에선 중대형 자가용의 연료보다 더 많은 250㎏의 연료를 1초 만에 연소한다. 섭씨 3000도 되는 고온과 고압, 그리고 산화제(액체산소) 연료탱크의 극저온(영하 183도) 같은 서로 다른 극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엄청난 음향 진동이 일어날 수 있다. 연소기 안 수백 개 구멍에서 연료가 균일하게 분사돼야 엔진 성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약간의 불안정도 순식간에 커져 엔진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75t 엔진 연소시험에서도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폭발이 일어난 적이 있다. 위험한 작업이라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이제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언가?

장 “75t 엔진을 4개 묶어 1단 로켓을 완성하는 ‘클러스터링’(여러 개를 하나로 묶음) 기술이 중요하다. 여러 구상이 있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다. 조립과 시험도 대단히 복잡해 실수의 확률도 커진다. 엔진 1개는 완벽해도 4개를 묶다보면 약간씩 편차가 생기니까.”

항우연 내에선 발사체 분야를 두고 ‘군대 조직 같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성공과 실패의 판정이 곧바로 나는 ‘거대과학’의 실물을 만드는 발사체 연구개발엔 250여명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우주기술의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우주발사체를 중심으로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연구문화는 어떠할까?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나로호 때 경험한 러시아 연구진을 보면 아주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만 하는 사람이 있고 볼트만 조이는 사람이 있더라. 우리는 여러 일을 함께 해야 했다. 러시아 연구자가 ‘너희는 못하는 게 뭐냐’는 말까지 했다. 우리는 기술을 흡수하고 빨리 적용하는 일을 잘 한다. 장점이다. 하지만 발사체 연구가 나아갈수록 어떤 문제를 누가 어떻게 검토하고 다뤄야 하는지와 같은 체계적인 연구문화도 점차 갖춰질 것으로 기대한다.”

후배 여성 연구자들 도전할 만한 분야

항공우주 분야에선 여성 연구자가 소수이다. 항우연의 길 건너에 있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선 여성 연구자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항우연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발사체 연구진 255명 중에서 여성은 10명이다. 최 연구원은 그렇다고 연구 과정에서 남녀 차이를 별달리 느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최 “여성 연구자라고 특별히 보는 것 같진 않다. 우주발사체 연구자가 적어 이런 직업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여성 연구자가 소수이긴 하지만 연구문화에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연구자들은 발사체 구조, 추진, 제어, 체계 등 여러 분야에 골고루 속해 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분야라 후배 여성 연구자들이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 생각한다.”

두 아이 엄마인 최 연구원은 “시험발사 운용 업무에 참여하면서 9살, 6살 두 아이와 떨어지는 시간이 늘어 걱정이 컸는데 아이들이 잘 적응해주어 대견했다”면서 “엄마가 하는 일에 관심도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얘기하고 다니는데 이번 시험발사가 잘 마무리돼 다행스럽고 보람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우주 기술의 성공과 실패엔 열광과 환호, 또는 냉소와 비판이 쉽게 뒤따른다. 그래서 나로호 때에 우리 사회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분위기를 경험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들은 성공과 실패에 따른 사회 분위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는 점점 개선되고 있는 듯하다.

최 “사실 나는 운 좋게 2013년 나로호와 올해 시험발사체 발사에서 성공만 경험했다. 젊은 연구자들에겐 부담보다 신기하고 도전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지난 10월 시험발사가 연기됐을 때 댓글의 반응이 궁금해 찾아보았는데 뜻밖에 꽤 많은 분들이 우주발사체 연구개발이 본래 이런 식이라며 이해해주어 큰 힘을 얻었다.”

장 “나로호의 실패와 성공을 겪으면서 우주 기술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큰 부담을 안고 일한다.”

이제 다시 또 하나의 징검다리가 남아 있다. 75t급 액체연료 엔진 4개를 묶어 과연 300t급 1단 로켓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2020년 중반기에 1단 로켓의 연소시험이 예정돼 있다. 장 단장은 “이 연소시험을 통과해야 한국형 우주발사체가 가능한지가 확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년 반가량 시간은 남아 있지만 발사체 연구자들의 마음은 바쁘다.

대전/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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