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영 한국방송 기자가 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앞서 최 기자는 지난달 27일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하차와 퇴사 뜻을 밝혔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달 27일 최경영 한국방송(KBS) 기자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오늘이 마지막 방송이고, 케이비에스도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기자는 여는 말에서 “사회적으로 공분할 사안에 제대로 공분하지 못하는 퇴행적 언론 상황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분노를 품으며 살지는 않겠다”며 “분노를 품고 사는 건 힘든 일이고, 무엇보다 본인의 삶도 망가진다. 숨이 막혀 죽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나가는 것이니 너그럽게 양해해달라”고 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도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선 유권자는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정보가 필요하고 저널리즘의 기본 사명은 유권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그런데도 아직 가면무도회에 몰두하는 기득권 집단들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사훈 한국방송 기자도 지난 3일 자신이 진행하는 ‘홍사훈의 경제쇼’에서 하차와 퇴사 소식을 알렸다. 두 기자는 2021년 2월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후로 국민의힘과 보수 성향 언론단체는 두 기자는 물론 방송인 김어준·주진우씨, 시사평론가 김종배씨, 신장식 변호사 등 공영방송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들이 ‘편파적’이라며 공격했다. 최 기자는 1995년 한국방송에 입사한 뒤 2012년 이명박 정부 방송 장악에 저항하는 파업 과정에서 해고 처분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정직 6개월이 확정됐다. 이듬해 퇴사해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겼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2018년 한국방송에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했지만 다시 퇴사를 결심했다. 지난 6일 최 기자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최경영 한국방송 기자가 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앞서 최 기자는 지난달 27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하차와 퇴사 뜻을 밝혔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검찰 개혁, 대통령 친인척 비리 보도 아쉬워”
―마지막 방송에서 우리 언론이 “공분할 사안에 공분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했는데요, 어떤 맥락인지요?
“1960년대까지 미국에선 버스에서 백인 따로, 흑인 따로 앉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공정한 걸까요? 백인 잣대로 본 공정일 뿐이죠. 지금 우리 정부는 과거 미국 백인의 공정 잣대로 언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면 불공정 보도, 가짜뉴스가 되는 거죠. 이렇게 미국의 매카시즘과 우리나라의 서북청년단 같은 광풍이 불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공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비판한 거죠.”
―“숨이 막혀 죽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나가는 겁니다”라고도 했는데요.
“언론인은 ‘탄광 속 카나리아’(과거 카나리아는 탄광 안에서 울음으로 유독가스를 경고했음)와 같은 존재입니다. 언론인은 언론 자유의 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그 위험을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리 내 울어야 할 카나리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서 한 말입니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가 학급을 장악하듯, (윤석열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지만 모두 숨죽이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방송 마무리 말에서 ‘가면무도회’를 얘기했는데요, 어떤 의미일까요?
“가면무도회에선 한 사람만이 가면을 쓰지 않죠. 여러 사람이 가면을 쓰고 무도회를 벌이죠. 권력은 나쁜 정책을 내기도 하고 비리를 감추려고도 해요. 그런데 지금 언론은 같이 가면을 쓰고 권력의 일방적인 내용을 보도하는 데 급급합니다. 예를 들면, 언론은 권력이 만든 정책이 어떤 집단과 어떤 사람의 이익에 충실한지를 팩트로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언론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그냥 권력과 함께 춤만 추고 있어요. 그런 현상을 비판한 겁니다.”
―마지막 방송 코멘트는 언제부터 준비했나요?
“2~3개월 전부터였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나 고쳤죠.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래 ‘쌩큐 포 더 뮤직’도 선곡했어요. 이 노래엔 ‘내가 얘기할 땐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노래 부를 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그래서 노래에 감사해’라는 가사가 나와요. 저는 명분이나 가치만 찾는 좀 지루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최강시사’에서 한 말과 얘기를 들어주신 케이비에스와 제작진, 무엇보다 청취자와 시청자(유튜브)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선곡했습니다.”
―‘최강시사’는 어떤 점에 초점을 두고 진행했나요?
“선정성을 지양했어요. 예를 들면 남현희-전청조 사건은 청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겠죠. 하지만 공영방송 역할은 그런 걸 보도하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방송 소재는 정책적이거나 구조적인 것에서 찾으려 했어요. 그러면서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려고 했습니다.”
―여권과 보수단체 등은 계속 ‘편파적’이라 주장했는데요.
“‘최강시사’에선 대통령을 무조건 비판만 하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경제 상황이 매우 나쁘죠. 하지만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기에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진 않았죠.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검찰 개혁 문제나 김건희씨 등 대통령 친인척 의혹을 좀 더 강하게 방송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편파적이라는 주장은 왜 나온 거라고 보나요?
“그런 주장은 대통령 선거 전부터 조직적으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6일 윤석열 후보는 의정부 유세 현장에서 ‘민주당 정권이 강성 노조를 앞세우고 전위대를 세워서 갖은 못된 짓을 한다. 그 첨병 중 첨병이 바로 언론노조’라며 ‘말도 안 되는 허위보도를 일삼고, 국민을 속이고 거짓 공작으로 세뇌해왔다. 정치 개혁에 앞서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일베 같은 극우에서 주장한 거였죠. 그런데 윤 후보는 당선된 뒤 케이비에스를 상대로 감사원 감사를 했고, 수신료를 건드렸습니다. 이어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이 민주당과 손잡고 윤석열 대선 후보를 떨어지게 하려 한 보도였다며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했죠. 즉, 시간을 거슬러가면 최근에 편파 논란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후보 때부터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편견으로 접근한 것이죠. 언론은 이런 문제를 왜 제대로 짚어보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최경영 한국방송 기자가 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앞서 최 기자는 지난달 27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하차와 퇴사 뜻을 밝혔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국방송을 떠나면서 아쉽거나 후회되는 게 있나요?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게 먼저 떠오르네요. 회사에 있으면서 불합리에 대해 분노를 먼저 한 것 같습니다. 세련되게 얘기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는 분노를 어떻게 승화해 웃으면서 전달해야 할지 고민해 볼 생각이에요.(웃음)”
―그동안 ‘최강시사’를 애청한 청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언론 탄압에 분노하지만 여러 이유로 퇴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케이비에스에 많이 있습니다. 케이비에스를 사랑하는 분들께 그들을 이해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홍사훈 기자도 방송 하차와 퇴사 소식을 알렸는데요. 이와 관련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홍 선배와는 친한 사이예요. 이전부터 언론환경을 놓고 자주 얘기를 나누곤 했지만, 구체적인 퇴사 시점과 관련해선 얘기한 적은 없어요.”
―현재 ‘최강시사’는 진행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박민 케이비에스 사장 후보자가 사장이 되면 폐지할 거라고 봅니다. 박 후보자는 사장이 되자마자 ‘케이비에스가 불공정했다’고 내부적으로 비난하고, 대외적으로는 불공정에 대해 사과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연대를 얘기하면서 영화 ‘300’을 말했는데요.
“그 영화는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가 민주주의를 위해 페르시아 100만 대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다루고 있죠. 이명박 정부의 언론 탄압에 맞서 싸울 때는 그 영화 느낌 같았죠. 해직당할 각오로 엄청나게 탄압에 맞섰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한 탄압을 받고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개혁 세력이 케이비에스를 잘못 이끌었기 때문에 운동 동력이 상실됐다는 주장도 있고요. 반대로 지금의 많은 이들이 언론인보다 직장인으로 안주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판단은 다들 다를 수 있겠죠.”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요?
“다음달 4일을 목표로 ‘최경영 티브이(TV)’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함께 퇴사하는 조휴정 케이비에스 피디와 함께 만들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방송했던 ‘경제쇼’ ‘최강시사’ ‘이슈 오도독’을 합해놓은 거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 방송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미디어 스핀닥터’라고 자임하잖아요. 이 말은 사전적으로는 정부나 기업의 정책이나 입장 등을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일입니다. 나쁜 정책이라도 좋은 쪽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언론은 이런 걸 밝혀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디벙커’가 되려고 합니다. 벙커에 빠진 골프공을 빼내듯 잘못된 이념이나 정책, 뒤틀려진 사실을 팩트로 보여주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룰 생각인가요?
“우리는 유권자이자 투자자입니다. 같은 주체지만 어떨 때는 투표를 하고 어떨 때는 투자를 합니다. 둘 다 필요한 게 있어요. 투명하고 평등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는 투명하고 평등한가요?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경제적 담론 시장에서 최대한 투명하고 평등한 정보를 깊이 있게 드러내 시청자와 소통하는 방송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기 돈 투자하는 것처럼 자기 한 표를 신중하고 현명하게 행사한다면 권력의 언론 장악 같은 후진적 논란이 사라질 거라 봅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