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태평양 지역의 대기순환인 ‘워커순환’ 강도의 최근 강화 경향은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자연변동성 때문이라는 사실이 규명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적도 지방의 대기순환이 강해진 원인은 인간 활동에 기인한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인 기후 변동성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1일 “기후물리연구단이 국내 및 미국·독일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한 결과 적도 지방의 대기순환인 ‘워커순환’의 최근 강화 경향이 온실가스(온실기체)의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기후시스템 안의 자연변동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 이날(현지시각)치에 실렸다.
열대 지방에는 대기가 적도에서 남·북위 30도 사이에 남북 방향으로 순환하는 해들리순환과 적도 태평양에서 관측되는 동서방향의 워커순환이 존재한다. 적도 태평양에서는 차가운 동태평양과 따뜻한 서태평양 사이의 해수면 온도 차이로 인해 시계 회전 방향의 대규모 대기 순환이 존재하는데, 이 순환의 변화로 생기는 ‘엘니뇨-남방진동’(ENSO)을 발견한 기상학자 길버트 워커의 이름을 따 ‘워커순환’이라 부른다. 순환 과정을 보면, 우선 해수면 온도가 높은 서태평양 지역에서는 구름이 연직으로 발달하고 강수를 동반함과 동시에 강한 상승 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반면 해수면 온도가 낮은 동태평양에서는 수직적으로 발달하는 구름의 생성이 억제되고 하강 운동이 지배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지표 부근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관측되고 대기 상층에서는 반대 방향의 바람이 주로 나타난다.
워커순환은 1990년대 초부터 2010년대 기간에 강도가 증가해 온실가스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화석연료 사용 등 인간 활동에 기인하는 기후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만든 기후모델(컴퓨터 수치모형)들이 워커순환 강도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놓은 전망과 배치돼, 관련 학계에서는 논쟁거리로 주목을 받아왔다. 워커순환의 강도의 강화 경향은 미국 캘리포니아지역의 가뭄 현상을 심화시켜 농업, 수자원 관리 및 산불 발생 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커순환 모식도. 왼쪽 상단 그림은 적도 태평양에 존재하는 동서방향의 대규모 대기순환인 워커순환을 나타낸다. 기후변화 모델들은 워커순환 강도의 감소를 예상(왼쪽 하단 그림)하는 반면 실제 위성관측을 토대로 한 분석에서는 자연변동성 영향으로 워커순환이 최근 강화되는 경향(왼쪽 중간 그림)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변동성 영향이 줄어들어 관측에서도 온실가스 증가에 다른 워커순환 약화를 판별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오른쪽 그림)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연구팀은 해양에서는 장기간 정기적으로 관측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해 상대적으로 전지구 범위를 정기적, 포괄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기상 관측을 주축으로 하고 오차를 보정한 지상 관측 자료를 참고해 워커순환의 변화 패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최근 워커순환 강화 경향의 주원인은 인간 활동에 기인한 기후변화보다는 기후시스템 안 자연변동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논문 제1저자인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 정의석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로 온실가스의 증가를 포함한 인간 활동이 열대 지역의 대규모 대기 순환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수반한 수권(물권) 순환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시스템의 여러 과정들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지구를 포괄하는 장기간의 정확한 관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워커순환에 대한 자연변동성의 영향이 줄어들어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약화 현상을 구별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에는 정 연구위원을 비롯해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 단장, 하경자 부산대 교수 등 국내 연구팀과 미국의 마이애미대, 해양대기청(NOAA), 국가환경정보센터(NCEI), 독일의 유럽기상위성센터(EUMETSAT) 연구팀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