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2일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들녘 모습. 100년 만에 닥친 가뭄으로 벌써 끝냈어야 할 모내기를 대부분 못한 채로 있다. 강화/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반도는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0.74도 상승한 데 비해 한국은 1.7도, 북한은 1.9도 상승했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 유지되는 최악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대표농도경로 8.5·RCP8.5)가 진행되면 2100년께 한반도 기온은 4.7도(남한 4.4도, 북한 4.9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북한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하다. 권원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 기후센터 원장은 7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관(과총회관)에서 열린 과총 주최의 ‘한반도 공동번영을 위한 남북과학기술 협력’ 포럼에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연이은 자연재해로 북한의 식량 생산 등 경제·생태환경 피해가 극심했다”며 “기상·기후변화 관련 남북의 교류·협력은 인도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간 재해로 800만t이던 식량 생산은 200만t으로 급감했으며, 2017년에도 500만t에 불과했다. 온실가스 배출도 재해 전 2억t에서 0.7억t으로 줄었다.
2013년부터 북한이탈주민 면담을 통해 북한의 기후변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홍수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갔다거나 산사태로 논농사와 가옥 등에 큰 피해를 보았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길거리에 토사가 흘러들어 걸어 다니기가 힘들다는 얘기도 한다”며 “식량난으로 다락밭·뙈기 밭을 만드는 등 산림훼손이 심해지고 다시 재해를 입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산림은 1960년대 1천만㏊에서 2010년대 중반 600만㏊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산림이 다른 용도로 바뀐 정도를 나타내는 산림전용지수가 인도, 알제리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또 기후변화 관련 국제기구인 ‘저먼워치’의 기후위험지수(2013년)에서 북한은 7위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은 59위였다. 2013년 이후에는 자료 부족으로 북한은 분석 대상에서 빠져 있다.
명 연구위원은 “북한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비롯한 환경, 농업, 에너지 등 사회 전반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고려한 한국과의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연계한 다자간 협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탄소무역’에 관심이 있다며 남북한 사이에도 탄소배출권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인천 송도에 유치된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에 북한이 제안서를 제출해 농업과 수자원 협력 사업을 지원받는 방안도 제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한의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안보 패러다임을 ‘절대안보’에서 ‘협력안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 실장은 “소련 해체 때 우크라이나 등 핵보유국들에 대해 협력적 위험감소(CTR)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전례를 참고해 상황이 다소 다른 북한의 경우 포괄적 시티아르 프로그램과 동시에 북한의 경제개발 계획에 맞춘 남북협력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동대문시장 규모의 대형 시장 9개를 포함해 404개의 공식 시장이 운영되는 등 사실상 시장경제 체제에 돌입했으며, 지역별 대규모 개발 계획 등 10개년 개발 계획이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해 남북 경제협력의 틀도 선순환 구조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5년 8월27일 폭우를 동반한 제15호 태풍 ‘고니’가 할퀴고 간 함경북도 나선시의 홍수 피해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영상 속에는 강풍과 폭우로 아파트의 외벽이 찢겨나가 내부가 드러나는 등 참혹한 나선시의 피해 상황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연합뉴스
특히 북한이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한 30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남북 협력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연평균 풍속이 높은 지역이 많은 점을 활용해 풍력발전으로 전력 수요의 15%를 감당하도록 하는 등 재생에너지로 2044년까지 500만킬로와트의 발전능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홍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풍력연구실 그룹장은 “소규모 용량의 풍력과 태양광 복합발전시스템을 시범 보급하는 사업을 먼저 추진하고 나진선봉지구나 개마고원 등에 대형 육상 풍력발전단지와 장산곶 등에 대형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 뒤 남북 접경지역에 대단위 육상풍력단지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닌 상호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가령 장산곶의 해상 풍력발전단지에서 평양까지 전력망을 설치해주고 직접 전기료를 받든지, 희토류 등 자원을 교환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영식 한국수자원공사 물관리기획처 부장은 “북한의 댐이 보유한 수자원은 369억㎥로, 남한 157억㎥의 두 배가 넘고, 1인당 이용 가능 수자원량이 남한의 1.5배에 이름에도 인프라가 부족해 가뭄·홍수 등 재해에 취약하고 먹는물 공급이 열악하다”며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추진할 수 있는 소규모 식수 위생 개선 지원이나 공유하천 협력을 재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북한의 황강댐과 한국의 군남댐, 북한의 임남댐과 한국의 평화의댐의 경우 수자원-에너지 맞교환 방식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말하자면 북한이 물을 보내주면 한국에서는 전력을 송전해주는 방식이다.
정선양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1987년 서독과 동독이 협정을 체결할 때 제시한 27개 협력 과제 가운데 3분의 1이 환경 등 과학적 이슈였다”며 “북한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방북 때 과학단지를 보여주는 등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은 점을 고려해 과학 관련 협력방안을 우선순위 상위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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