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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아이 안고 발걸음 재촉한 엄마…선사시대 발자국 화석 속 비밀

등록 2020-10-13 12:20수정 2020-10-14 13:29

미국서 발견된 빙하기 말기의 긴 발자국 화석
북북서에서 남남동 뱡항으로 1.5km 이어져
분명한 목적지 향해…사회집단 있었다는 방증
아이를 안고 길을 떠나는 1만2천년 전 빙하기 말기의 엄마. 발자국 화석으로 추정한 모습이다. NPS 제공
아이를 안고 길을 떠나는 1만2천년 전 빙하기 말기의 엄마. 발자국 화석으로 추정한 모습이다. NPS 제공

"아이가 울면서 엄마한테 집에 가자고 보챈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달래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갈 길은 멀고 아이를 안은 팔은 아프지만 멈출 수는 없다. 부모라면 모두 다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땅은 질퍽하고 주변에는 배고픈 포식동물들이 호시탐탐 이들을 노리고 있다면?"(매튜 로버트 베네트 및 샐리 크리스틴 레이놀즈 영국 본머스대 교수)

1만2천년전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미국 남부의 한 초원지대 호숫가에 살았던 구석기인의 삶의 한 장면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발자국 화석 이야기가 신생대 제4기 전문 학술지인 `쿼터너리 사이언스 리뷰'(Quaternary Science Reviews) 12월호에 실렸다.

2018년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샌즈국립공원에서 발견된 이 발자국 화석은 마지막 빙하기 말기인 1만1550년 전~1만30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석고 성분이 많은 사막지대이나 당시엔 얕은 호수가 있는 플라야(playa) 지역으로 거대한 습지와 함께 초목도 무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점차 건조한 기후로 바뀌면서 큰 호수는 작은 물 웅덩이들로 변해갔다. 이곳에 살던 구석기인과 동물들이 주변 진흙땅에 남긴 수십만개의 발자국들이 화석 형태로 굳어진 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화이트샌즈국립공원의 발자국 화석. 왕복 발자국 사이에 아이의 발자국이 보인다. 오른쪽은 미끄러짐이 없이 온전한 형태의 발자국. NPS 제공
화이트샌즈국립공원의 발자국 화석. 왕복 발자국 사이에 아이의 발자국이 보인다. 오른쪽은 미끄러짐이 없이 온전한 형태의 발자국. NP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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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후 같은 길로 돌아오는 길엔 아이 없어

미국과 영국 공동 연구진이 분석해 발표한 이 발자국 화석은 무려 1.5km에 걸쳐 북북서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발자국 길이다. 게다가 발자국이 남긴 흔적이 거의 직선 형태다. 발자국 주인공이 목표 지점을 향해 직진했다는 얘기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주인공이 몇 시간 후에 다시 그 길을 따라 돌아왔다는 것이다. 왕복 길 사이의 간격이 0.5~2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갔던 길을 따라 정확히 되돌아왔다. 발자국 길이는 230~250mm다. 연구진은 길이로 보아 발자국의 주인공은 체구가 작은 성인 여성이거나 10대 중반 청소년일 것으로 추정했다. 베네트와 레이놀즈 교수는 과학언론 `더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걸음 속도는 초당 1.7m 이상으로 평평하고 마른 땅에서 보통 걷는 속도인 초당 1.2~1.5미터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돌아오는 길은 이보다 조금 더 느렸다.

처음 길을 떠난 북행길에선 발 방향이 바깥쪽을 향하면서 바나나처럼 더 휘어져 있다. 이는 뭔가 하중이 더해져 있다는 걸 뜻한다. 특히 몇몇 곳에서는 작은 아이 발자국이 함께 있었다. 연구진은 아이를 안고 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자세를 고쳐잡기 위해 잠시 아이를 내려놓을 때 만들어진 자국으로 판단했다. 왼쪽 발자국이 더 넓게 나 있는 것은 아이를 왼쪽 팔에 안았음을 시사한다. 발자국 크기로 볼 때 3살 또는 그보다 약간 더 어린 아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서는 아이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음 직하다. 돌아오는 남행길에선 오른쪽 발자국이 좀 더 좁아졌다. 연구진은 "이는 그 사이에 바닥이 좀더 말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발혔다.

빙하기 말기 오테로 호수의 풍경. NPS 제공
빙하기 말기 오테로 호수의 풍경. NP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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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는 인간 냄새 맡고 방향 바꿔 돌아간 듯

이곳은 지금은 멸종된 많은 빙하기 동물들의 주된 서식처였다. 연구진은 이곳에서 매머드와 거대나무늘보, 검치호랑이, 이리, 들소, 낙타 등의 발자국도 발견했다. 연구진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연구에 따르면 당시 아이들은 평소 거대나무늘보 발자국이 만든 작은 웅덩이에서 뛰놀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어쨌든 발자국 화석을 남긴 엄마와 아이가 길을 떠난 뒤 다시 돌아오기 전에 나무늘보와 매머드가 이 길에 나타났다. 돌아오는 길의 발자국이 동물들의 발자국과 교차하는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매머드와 나무늘보의 발자국 경로로 보아 매머드는 인간의 흔적을 개의치 않고 똑바로 지나갔지만 거대나무늘보는 인간이 지나간 것을 알아채고 방향을 틀었다. 나무늘보는 엄마와 아이가 지나간 길에 접근했을 때 냄새를 맡기 위해 상체를 들어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곤 위험하다고 판단했을까? 잠시 멈춘 뒤 몸을 돌려 이곳을 떠났다.

콜롬비아 매머드의 발자국(약간 어두운 부분). NPS 제공
콜롬비아 매머드의 발자국(약간 어두운 부분). NP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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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나 지금이나 엄마의 마음은 마찬가지

엄마와 아이는 어디를 향해 어떤 목적으로 길을 떠난 것일까? 직선으로 난 발자국 모양과 경로는 이 주인공이 자신을 환영하는 분명한 목적지를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는 그가 속한 사회집단이 있었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 길을 떠난 것일까? 아이가 아파서? 아니면 아이가 엄마한테 돌아오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갑작스레 폭풍우가 휘몰아쳤기 때문일까? 연구진은 이와 관련해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자국을 통해 이전보다 질문의 내용은 더욱 상세해졌다.

두 교수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이 여성이 편안한 상황에 있던 것은 아니었으며, 이유야 어쨌든 길을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따라서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는 선사시대 부모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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