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표정 흉내가 얼굴 근육 바꾼다’는 30년 전 가설
인간 판정단·인공지능 교차 검증한 결과 근거 없어
인간 판정단·인공지능 교차 검증한 결과 근거 없어
부부는 살면서 서로 얼굴이 비슷해져간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픽사베이
연구진은 다른 사람보다 부부 사이의 얼굴이 더 비슷하다는 점은 확인했다. 픽사베이
외모 비슷한 사람끼리 부부 인연 맺는 경우 많아 연구진은 1987년의 연구가 표본 수가 12쌍으로 극히 적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표본 수를 대폭 늘려 같은 실험을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당시엔 12쌍의 사진을 비교했다. 이번엔 517쌍의 부부 사진을 온라인에서 수집해 신혼 때(결혼 후 2년 이내)와 20~69년 후의 사진을 비교했다. 단 백인 이성부부의 사진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비백인 부부와 동성 부부는 의미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사진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외모 유사성 평가에서도 사람과 함께 인공지능을 동원했다. 인간 판정단은 온라인을 통해 153명을 모집했다. 인공지능은 최고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안면인식 알고리즘(VGGFace2)을 이용했다. 먼저 비교 대상을 선정한 뒤, 이 사람의 실제 배우자와 무작위로 선택한 다른 5사람을 함께 보여주고, 누구 얼굴이 가장 비슷한지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그 결과 연구진의 예상과 달리 부부가 서로 닮아간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인간 판정단은 오히려 부부의 얼굴이 서로 약간 더 달라졌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물론 이는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연구진이 이번 연구에서 얻은 수확은 따로 있었다. 외모가 비슷한 사람끼리 상대방을 부부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배우자가 아닌 임의로 선택한 다른 사람의 얼굴과 비교한 결과,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는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류혼’(homogamy), 즉 그중에서도 외모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며 “이런 점에서는 이전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결론은 부부의 얼굴은 닮은 구석이 많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닮은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외모는 관심사, 성격, 지성, 태도, 가치관, 생활수준 같은 여러 특성을 반영하며 이것이 얼굴 닮은 부부 탄생의 바탕이 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수렴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명세와 상관없이 모든 연구 결과는 검증받고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픽사베이
“유명 연구 결과라도 검증 필요” 메시지 던져 이번 연구는 학계 풍토와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같은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이전 연구 결과라도 유효성 또는 타당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동연구자인 컴퓨터심리학자 마이클 코신스키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회과학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는 새롭고 획기적이며 기삿거리가 되는 이론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과장되거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개념과 이론이 넘쳐난다는 점”이라며 “학문은 절대적으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에 잠재해 있는 결함을 드러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걸’ 꺼린다는 점에서 ‘현장 청소’(Cleaning up the field)는 오늘날 사회과학자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다며 연구를 주도한 젊은 과학자 핀 핀 테아-마콘(Pin Pin Tea-makorn)의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현재 스탠퍼드대 전기공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테아-마콘은 대학 웹사이트에 ‘수학과 공학을 응용해 사회심리학 질문에 답하는 것’을 자신의 관심사로 밝혔다. 두 사람은 ‘얼굴만으로 이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검증하는 것을 다음 연구 프로젝트로 정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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