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소강 상태인 지난 8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세워져 있는 캐리커처가 진흙물에 잠겨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올해 54일의 최장 장마는 이례적인 북태평양고기압의 ‘깜짝 북상’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여느해 7월 하순에 끝났던 장마가 올해 8월 중순까지 이어진 것은 북상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많은 수증기가 우리나라로 유입돼서인데, 원인이 북대서양에서부터 인도양, 남중국해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인 대류 활동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장마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대기 흐름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어서 주목된다.
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 연구팀은 27일 기상청이 관측한 자료와 북태평양·인도양·대서양 상공의 대류 활동과 대기 순환을 분석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28∼29일 열리는 한국기상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연구팀 분석에서 올해 6∼9월 12시간 누적 강수량이 110㎜가 넘는 집중호우가 16차례 발생했는데, 6월 말∼8월 중순 장마기간에 11건(69%)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6월 말∼7월 말 기간의 집중호우와 7월 말∼8월 중순 집중호우는 양상이 달랐다.
6월 말∼7월 말 장마철 집중호우를 발생시킨 대류 활동 양상. 한국기상학회 제공
6∼7월 집중호우는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이 억눌리면서 온대저기압이 강하게 발달해 단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때는 호우가 남부지방과 동해안지방에 집중됐다. 반면 7∼8월 집중호우는 갑작스럽게 북상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많은 수증기가 우리나라로 유입돼 발생했다. 다량의 수증기로 정체전선이 강하게 연속적으로 발달해 집중호우도 지속됐다. 이 시기 호우가 집중된 지역도 태백산맥과 소백산백 서쪽으로 달랐다.
연구팀은 두 시기 집중호우의 양상이 달라진 원인을 지구적 대기 흐름의 변화에서 찾았다. 우선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는 인도양 상공에서 대류 활동이 평년보다 강해 이 영향으로 남중국해 상공의 대류 활동이 감소하면서 한반도로 전파되는 대기 파동이 만들어졌다. 또 여름철 북대서양 진동이 유라시아대륙을 지나는 대기 파동을 만들어, 이 두 파동이 합쳐지면서 우리나라 상공에 찬 저기압을 형성시켰다는 것이 연구팀 분석이다. 이 찬 저기압이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을 억제했다.
7월 말∼8월 중순 장마철 집중호우를 발생시킨 대류 활동 양상. 한국기상학회 제공
반면 7월 말부터 8월 중순에는 남중국해 상공의 대류 활동이 다시 증가하고, 북대서양 진동도 달라져 우리나라에 전파되는 두 파동의 위상이 바뀌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상공의 찬 저기압이 소멸하고 북태평양고기압이 급격하게 북상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을 주도한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고온으로 북극 해빙이 많이 녹고 유라시아 블로킹이 형성됐지만 올해 장마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며 “올해 최장 장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전지구적 대기 순환의 변동성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올해와 같은 대기 순환이 흔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마를 좀더 잘 예측하려면 지역적 순환뿐만 아니라 지구 차원의 대기 흐름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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