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학연구원 연구팀이 작은 에너지의 빛을 쬐어도 큰 에너지의 빛을 대량 방출하는 ‘광사태 현상’을 발견한 논문이 과학저널 <네이처>의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작은 에너지의 빛을 쬐어도 큰 에너지의 빛을 대량으로 방출하는 ‘광사태 현상’이 세계 최초로 발견됐다. 이 광사태 나노입자는 바이러스 진단이나 자율주행자동차, 태양전지 등 미래 기술에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은 14일 “나노물질에 작은 빛 에너지를 쏘이면 물질 안에서 빛의 연쇄증폭 반응이 일어나 더 큰 빛 에너지를 대량 방출하는 ‘광사태 현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서영덕 화학연 의약바이오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미국 컬럼비아대 제임스 셕 교수 연구팀 등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성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14일(현지시각)치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DOI : 10.1038/s41586-020-03092-9)
일반적인 물질들은 에너지를 흡수하면 열 등으로 일부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서 다시 방출한다. 반면 특정 나노물질은 작은 에너지의 빛을 받더라도 특정한 격자 안에서 광자들이 서로 합쳐져 큰 에너지의 빛을 방출한다. 앞의 현상을 하향변환이라 하고, 뒤 현상을 상향변환이라 한다. 서영덕 책임연구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사람 키에 비유하면 상향변환은 1m짜리 사람들이 블랙박스 안에 들어갔는데 몇 사람이 2∼3m로 키가 커서 나오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툴륨’(Tm)이라는 원소를 특정한 원자격자 구조를 가진 나노입자로 합성해 작은 에너지의 빛을 약한 세기로 쪼이자 빛이 물질 내부에서 연쇄적으로 증폭 반응을 일으켜 더 큰 에너지의 빛을 강한 세기로 방출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를 눈사태에 비유해 ‘광사태’라 이름 지었다.
기존의 상향변환 물질들은 광변환 효율이 1% 미만이어서 실생활에 응용되지 못해왔다. 연구팀이 만들어낸 광사태 현상 나노입자로는 광변환 효율을 40%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키가 1m인 사람들 100명이 들어가면 2∼3m인 사람이 1명 정도 나오던 데 비해 40명 이상 나오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레이저 포인터 수준의 약한 세기의 빛을 쬐어 빛으로 보기 힘든 매우 작은 25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물질을 높은 해상도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무엇보다 광사태 나노입자를
차세대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태양전지의 효율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화학연 페로브스카이트태양전지연구팀과 공동으로 응용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 책임연구원은 “페로브스카이트태양전지는 흡수할 수 있는 파장대가 기존 실리콘태양전지보다 좁아 효율 향상에 한계가 있는데, 광사태 나노입자가 긴 파장대의 빛을 흡수해 짧은 파장대의 빛으로 변환해주면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태양전지는 1100나노미터의 긴 파장대 빛까지 흡수해 800나노미터 이하의 빛을 흡수하는 페로브스카이트태양전지보다 4∼5% 효율이 높다. 광사태 나노입자가 1064나노미터 빛을 흡수해 800나노미터 빛으로 다시 방출해 페로브스카이트태양전지에 쬐어주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또 광사태 나노입자를 활용하면 자율주행 자동차에 쓰이는 라이다 검출기를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