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주기와 생리주기 사이에 동조 현상이 뚜렷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서호주 대보초의 산호충류는 보름달 이후 며칠 동안 수정을 한다. 일본 오가모강 상류 산악지대에 사는 토종 새우는 바다로 나가 알을 낳는데, 보름달이나 초승달 때만 산란을 한다. 무미류(개구리, 두꺼비 등)나 쏙독새류(올빼미 등)는 달의 주기에 맞춰 산란하거나 둥지를 튼다. 유라시안 오소리는 초승달 때 짝짓기가 늘어난다. 달과 동물의 생리활동 사이의 동조 현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 연구팀이 달 주기와 인간의 생리주기 사이에 뚜렷한 동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례 분석을 통해 규명했다. 또 미국 연구팀은 달 주기가 수면 형태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6명의 생리주기와 삭망월 주기를 비교한 점묘그래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동조 현상은 수십㎞의 맹그로브숲에서 반딧불이들이 동시에 반짝인다든지, 자매나 룸메이트, 같은 직장 동료들의 생리주기가 닮아간다든지, 수천개의 심장 박동 조절세포들이 동시에 방전하는 것처럼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메커니즘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생리주기가 달의 회전주기와 거의 일치하는 여성들의 임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또 출생률이 보름달 때는 2∼3% 증가하고, 초승달 때는 2∼3% 줄어든다고 분석한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 생물학에서 달의 영향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카를로테 헬프리히-푀르스테르 독일 율리우스 막시밀리안 뷔르츠부르크대 교수 연구팀은 22명의 생리주기에 대한 장기 기록(평균 15년, 최장 32년)을 분석해 달의 주기와 생리 주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연구 논문을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7일(현지시각)치에 게재했다.(DOI :
10.1126/sciadv.abe1358)
연구팀은 달 주기 가운데 삭망월, 회귀월, 근점월 등 세 가지와 생리 주기를 비교했다. 삭망월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달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 생기는 보름달과 초승달의 주기로 평균 29.53일(29.27∼29.83일)이다. 회귀월은 지구 공전궤도 면에 대한 달 궤도의 기울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27.32일이다. 근점월은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근지점과 멀어지는 원지점 사이의 주기로 평균 27.55일(24.5∼28.8일)이다. 삭망월은 달빛의 강도와 인력에 영향을 미치지만 회귀월과 근점월은 주로 인력에 영향을 미친다. 세 주기는 상호작용을 한다. 달이 근지점에 있을 때면 자동으로 달-태양-지구의 삭망(보름달 또는 초승달)에 들어가고 지구에 대한 인력이 매우 높아진다.
연구팀은 “달의 세 가지 주기가 생리 시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한밤의 달빛은 가장 강력한 차이트게버(생물시계에 영향을 주는 빛과 어둠, 기온 등의 요소)였으며, 인력도 일정 정도 기여함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분석 대상자는 35살 이하가 15명과 36살 이상이 17명이었다. 연구팀은 보름달과 초승달, 달의 최대 적위(달의 하지)와 최소 적위(달의 동지), 달의 근지점과 원지점 등과 생리 시작 사이의 상관관계를 개인별로 분석했다. 생리시작일과 달 주기를 회화의 점묘법처럼 점으로 찍어 그래프를 그려 비교했다.
독일 남부에 사는 6명의 1978∼2014년 동안 기록과 삭망월의 관계를 분석해보니, 다섯명은 간헐적이지만 생리 시작일이 보름달과 상관관계를 보였다. 인구 150만명의 대도시에 살아 밤늦게까지 인공조명에 영향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잠자리에서도 취침등을 사용한 사람만 삭망월과의 동조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 여성의 생리주기 또한 평균 26.0일로 다른 사람들보다 짧았으며 나이가 들면서 더욱 짧아졌다.
나이대별로 구분해 분석한 다른 대상자들한테서도 보름달이나 초승달과의 동조 현상이 관찰됐는데, 보름달의 상관관계가 더 높았다. 첫 번째 그룹의 여섯 번째 대상자와 마찬가지로 잠자기 전에 인공조명을 많이 사용한 ‘저녁형 올빼미족’들은 생리기간이 짧을뿐더러 달 주기와의 상관관계가 적게 나타났다. 나이가 젊은 층의 동조율이 나이가 많은 층에 비해 2.5배 높았다.
회귀월과 근점월 주기와의 상관관계를 비교하는 점묘그래프에서도 생리주기가 일시적으로 이들 주기를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달 주기와 생리주기 사이의 상관관계는 삭망월과 달리 젊은 층보다 나이가 많은 층이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계절별로는 밤이 짧은 여름보다 겨울에 달의 영향이 더 컸다.
연구팀은 “달빛이나 인력은 개별적으로는 차이트게버로서 구실이 약하지만, 달이 지구와 가까워질 때 두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 생리주기와 강한 동조를 이룬다는 것을 밝혀냈다”며 “이번 발견이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달 주기와 수면주기를 비교한 그림에서 움직이는 형태로 비교해볼 수 있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한편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98명의 아르헨티나 부락민과 464명의 미국 도시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면 형태와 달빛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아르헨티나 토바쿰 3개 토착마을 주민들한테 수면과 기상을 기록하는 측정기(액타임메트리)를 손목에 차고 2개월을 지내도록 했다. 한 마을은 전기가 원활하게 공급되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공급이 제한적이며 나머지는 전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곳이다. 연구 결과 모든 마을주민의 수면시간이 달의 주기에 따라 20~90분까지 다양하게 조절된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주민들은 보름달이 되기 전 3~5일에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연구팀은 또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 달빛의 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 달빛이 적은 기간에 보름달 때보다 25분 더 자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견줘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19분, 전기 공급이 원활한 마을 사람들은 11분을 더 잤다. 연구팀은 대도시에 사는 워싱턴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이날치에 실렸다.(DOI :
10.1126/sciadv.abe0465)
논문 제1저자인 리안드로 카시라피 워싱턴대 박사후연구원은 “달빛은 산업화 이전 사람들이 보름달일 때 평상시보다 더 늦게까지 깨어 있고 활동할 수 있게 해줬다”며 “인공조명 아래에서도 비슷한 수면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현대의 인공조명이 이 고대의 습관을 깨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