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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지구 식혀줄 ‘쿨링 풍선’ 뜬다, 사상 첫 지구공학 실험

등록 2021-03-31 10:04수정 2021-12-30 15:01

과학기술 이용해 지구 환경 변화시키는 ‘지구공학’
미세입자 방출로 햇빛 반사율 높여 지구 식히기
하버드대 연구진, 올 여름 성층권 풍선 띄우기로
태양 지구공학은 뜨거운 햇빛을 가려 지구를 식히자는 실험이다. 픽사베이
태양 지구공학은 뜨거운 햇빛을 가려 지구를 식히자는 실험이다. 픽사베이

오존층 파괴 원인을 밝혀낸 공로로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던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1933~2021)은 생전에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담한 프로젝트를 제안한 바 있다. 대기 환경을 직접 조작해 지구를 식히자는 것이다.

대기 상층부에 황 입자를 퍼뜨려 햇빛 반사율을 높이면 지구 온도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산화황이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 가운데 하나라는 걸 잘 아는 그가 이런 파격적 제안을 한 것은 그만큼 지구의 기후변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국제학술지 `기후변화'(Climatic Change)에 실린 그의 과학 에세이는 근본 처방이 아닌 임시미봉책이라는 비판 속에, 실험 효과에 대한 기대감과 지구 환경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과학기술을 이용해 지구 환경을 인류의 필요에 맞춰 대규모로 변화시키는 것을 지구공학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크뤼천의 제안처럼 태양 에너지와 관련한 것은 ‘태양 지구공학’이라고 부른다.

스웨덴 이스레인지우주센터에서 성층권 풍선을 날려보내는 장면. SSC 제공
스웨덴 이스레인지우주센터에서 성층권 풍선을 날려보내는 장면. SS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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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키루나서 풍선 띄우기로…잠정 예정일은 6월

과학자들이 올 여름 태양 지구공학 실험의 첫발을 떼려 하고 있다. 잠정 일정은 6월로 잡고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미국 하버드대 기후과학자 데이비드 키스(David Keith)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스웨덴 키루나에 있는 국영기업 스웨덴우주코퍼레이션(SSC)의 이스레인지우주센터에서 고도 20km 성층권을 향해 과학실험용 대형 풍선을 띄워 올릴 계획이다.

2014년에 처음 제안된 이 실험 프로젝트의 이름은 스코펙스(SCoPEx=Stratospheric Controlled Perturbation Experiment)다. 기본 아이디어는 대형 풍선에 프로펠러와 센서가 탑재된 실험 장비를 매달아 성층권에 올려 보낸 뒤 최대 2kg의 미세입자를 방출하는 것이다. 미세입자를 뿌려 길이 1km, 폭 100m의 반사입자층을 형성한 뒤 빛 반사율의 변화를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의 지구공학 실험 장비. 하버드대 제공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의 지구공학 실험 장비. 하버드대 제공

연구진은 우선 분필 주성분인 탄산칼슘 미세입자를 뿌려볼 계획이다. 연구진이 그동안 주로 거론돼 온 이산화항 대신 탄산칼슘을 먼저 실험해보기로 한 이유는 이산화황의 위험성 때문이다. 이산화황이 만드는 황산염은 오존층을 잠식하고, 성층권 온도를 높이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자칫 기상 패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탄산칼슘이라고 해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리관 실험에서는 탄산칼슘이 성층권 물질과 특별히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환경에서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연구진은 지난 몇년 동안 성층권 온도와 공기 조건을 갖춘 유리관을 만들어 그 속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해왔다. 하지만 유리관 안의 공기 입자 구성이 실제 성층권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직접 실험해보지 않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연구진이 주변의 우려섞인 시선을 알면서도 성층권 현장 실험을 하려는 이유다.

지구공학 실험에서 미세입자를 뿌리는 경로. 하버드대 제공
지구공학 실험에서 미세입자를 뿌리는 경로. 하버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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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과학장비 성능만 시험…자문위에 승인 여부 요청

연구진이 이번 시험에서 바로 태양 지구공학 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이번 시험에선 이산화황이나 탄산칼슘 같은 입자를 방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엔 지구공학 실험용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대기 환경이 지상과 너무나도 다른 성층권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만 한다. 성층권은 기온이 영하 수십도로 매우 낮고, 기압은 지상의 수십분의 1~수백분의 1이다.

소량의 입자 방출 시험은 이 플랫폼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를 확인한 뒤 시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구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지구공학 실험에 적합한 물질을 찾아내는 게 목표다.

연구진은 지구공학 실험의 민감성을 고려해 자문위원회에 이번 시험을 둘러싼 법적, 윤리적, 환경적 문제를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자문위는 2월15일에 내리기로 했던 결론을 추후로 연기한 상태다. 연구진은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자문위의 의견을 따른다는 방침이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화산에서 치솟고 있는 화산재 구름. 미국지질조사국 제공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화산에서 치솟고 있는 화산재 구름. 미국지질조사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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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기상패턴에 악영향 우려…‘아편’에 비유하기도

대기 중의 입자가 햇빛을 반사해 지구를 식힐 수 있다는 건 이미 자연 현상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때 대기로 방출된 2천만톤의 이산화황 입자들이 일사량을 30% 줄여, 이후 2년 동안 지구 온도가 0.5도 떨어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공식적인 태양 지구공학 아이디어는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의 과학자문위원회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분을 상쇄하기 위해 햇빛 반사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냈다. 당시 제안된 방식은 성층권이 아닌 바다에 입자를 뿌리는 것이었다. 태양 지구공학에 대한 관심은 기후변화가 세계적인 이슈가 된 2000년 이후 크게 높아져 100개 이상의 관련 논문이 나왔다. 특히 2006년 크뤼천 박사의 논쟁적인 과학 에세이가 주목을 끄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대부분 소규모 연구였다. 2009년엔 러시아 과학자들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200미터 상공에 입자를 뿌리는 소규모 공중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층권 입자 방출은 자칫 지구의 날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에 직면해 있다. 한 국제공동연구팀은 2016년 인도에 지구공학을 적용할 경우 땅콩 수확량이 20% 감소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피나투보화산 폭발의 지구 냉각 효과도 이듬해 가뭄을 유발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일부에선 소량의 입자 방출조차도 너무 멀리 나아가는 실험이라고 반대한다.

하버드대의 지구공학 연구팀 일원인 프랭크 코이치 교수(대기과학)도 그런 입장이다. 그는 지구공학 실험을 아편에 비유했다. 일시적으로 극심한 통증을 완화해주지만 중독 증세를 비롯해 더 큰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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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과학자단체, 최대 2억달러 지구공학 연구 제안

지구공학을 둘러싼 논란 와중에 미국의 권위있는 과학자단체인 미국국립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NASEM)가 최근 태양 지구공학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이 기구는 지난 25일 발표한 `햇빛반사' 보고서에서 앞으로 5년 동안 1억~2억달러 규모의 태양 지구공학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을 미국 정부에 제안했다.

보고서는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세 가지 지구공학 아이디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세 가지는 지구 대기에서 가장 높은 성층권에 미세입자를 뿌리는 것, 선박을 이용해 염수를 저고도 바다 구름에 뿌려 반사율을 높이는 것(클라우드 브라이트닝), 마지막으로 고고도 구름을 엷게 만드는 이른바 `구름 솎아내기'(클라우드 씨닝)다. 앞의 두가지는 햇빛 반사율을 높이는 방안이고, 세번째 아이디어는 열이 지구 밖으로 더 많이 빠져나가게 하는 방안이다. 보고서는 그렇다고 그 기술을 실행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보고서 작성 책임을 맡은 스탠퍼드대 크리스 필드 교수(환경과학)는 “태양 지구공학 연구 프로그램은 사회가 더 많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보고서 취지를 설명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에밀리 슈크버그 교수(기후과학)는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보고서는 태양 지구공학 시대가 왔다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지와 위험성을 파악하는 국제적 학제간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가 왔다는 걸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찰스스터트대의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공공윤리학)는 "태양 지구공학 연구 프로그램 제안은 기후변화가 티핑 포인트(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는 것에 대한 기후과학자들의 공포심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평가했다. 비록 미국의 연구 프로그램일지라도 태양 지구공학을 채택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티핑 포인트라는 것이다.

스웨덴 환경단체들은 올해 자국 영토에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하버드대의 지구공학 실험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사상 첫 태양 지구공학 실험 시도에 대해 하버드대 자문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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