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저·고온, 방사선에도 살아남아
2년 전 탐사선에 실려갔다 추락
추락 속도·충돌 재현 실험한 결과
"충돌 압력에 바스라졌을 것" 추정
2년 전 탐사선에 실려갔다 추락
추락 속도·충돌 재현 실험한 결과
"충돌 압력에 바스라졌을 것" 추정

지구 최강의 생명력을 가진 동물로 평가받는 물곰.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스라엘의 무인 달 탐사선 베레시트가 추락 직전 고도 22km 지점에서 찍은 달 표면 사진. 스페이스일 제공

험 전의 물곰(a와 b)과 초속 728m로 발사한 물곰(c), 초속 901m로 발사한 물곰(d). d의 물곰은 몸이 바스라졌음을 알 수 있다. 저널 ‘우주생물학’
실험 결과 추락 속도 초당 900미터가 한계치 달에 추락한 물곰은 그의 말대로 엄청난 추락 충격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까? 호기심이 발동한 영국 켄트대 과학자들이 궁금증을 풀기 위한 실험을 한 뒤, 그 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 ‘우주생물학(Astrobiology)’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우선 실험에 쓸 물곰 20마리를 확보했다. 그런 다음 실제 베레시트에 실렸던 물곰과 마찬가지로 물곰들한테 먹이(이끼와 물)를 준 다음 48시간 동안 얼려서 동면상태로 만들었다. 이 상태에서는 평소의 0.1% 수준 에너지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어 동면 상태의 물곰 2~4마리씩을 속이 빈 나일론 총알에 넣고, 실험용 가스총으로 초당 556m~1km 범위에서 6가지 다른 속도로 발사했다. 총알은 수미터 떨어진 모래더미에 박혔다. 실험 결과 물곰의 생존 한계는 초당 900미터(시속 3240km), 충돌 압력 1.14기가파스칼(GPa)를 넘지 못했다. 그 이상에선 물곰이 모두 바스라졌다. 초당 728미터(시속 2621km)에선 100%, 초당 825m(시속 2970km)에선 60%가 생존했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물곰이 추락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베레시트의 추락 당시 속도는 초당 수백m이지만 금속성 본체에 들어 있어 달 표면에 부딪히는 충돌 압력은 1.14GPa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봤다. 연구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물곰들은 살아남지 못했다고 확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보다 적은 속도와 충격을 경험한 물곰들은 살아남기는 했으나 동면상태에서 깨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최대 36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인 동면 물곰의 회복 시간(8~9시간)보다 4~5배 길다. 연구진은 “이는 물곰이 추락 과정에서 어느 정도 내상을 입었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살아남은 물곰이 번식까지 할 수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 실험은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지구체 충돌한 소행성이나 운석에서 찾는 범종가설에도 시사점을 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명의 기원 ‘범종가설’ 성립할 수 있을까 이번 실험 결과는 물곰의 생존 여부와는 별도로, 지구 생명 기원 가설 중 하나인 범종가설(panspermia hypothesis)과 관련해서도 시사점을 준다. 범종가설이란 생명이 지구상의 무기물에서 스스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외계 운석 등을 통해 묻어 온 DNA를 가진 박테리아류의 유기체에서 발생되었다는 이론이다. 이번 연구는 범종가설의 성립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지구에 추락하는 소행성이나 운석의 속도는 초당 11km 이상이다. 이는 물곰의 생존 한계치를 훨씬 뛰어넘는 속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생존 한계치를 넘더라도 그 중 일부는 충격의 정도가 낮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또 만약 지구에 충돌한 소행성의 암석과 잔해들이 되튀어 달로 돌진할 경우엔 그 물체의 달 충돌 속도는 이보다 더 느릴 것이다. 연구진은 이 물질의 약 40%는 물곰의 생존할 수 있는 속도 범위 내에서 달에 도착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론적으로는 물곰이 지구에서 달로 이동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화성과 그 위성 포보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물곰보다 더 빠른 초당 5km 속도의 충돌에서도 살아남는 생물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종가설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물곰 충돌 실험으로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상상력이 한층 풍부해졌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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