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심사 과정 개입 의혹 동아대 교수 논문 24편 무더기 철회
문 교수 "셀프 심사는 없었다", 출판사쪽 "근거 자료 있다" 논란
문 교수 "셀프 심사는 없었다", 출판사쪽 "근거 자료 있다" 논란
‘문제가 된 이메일 계정의 주인은 누구인가?’
100종 넘는 학술지를 내는 국제적인 학술출판사가 최근 국내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의 심사과정에 부정행위(misconduct)가 개입됐음이 뒤늦게 밝혀졌다며 이 연구자의 논문을 무려 24편이나 철회하는 조처를 취했다. 특히 출판사 쪽은 이번 사례에서는 논문의 데이터 조작이나 표절 같은 기존의 연구부정이 아니라 논문 저자가 제3의 논문심사자(reviewer)를 가장한 이메일을 통해 자기 논문을 스스로 심사하는 이른바 '셀프 심사'의 부정을 저질렀다고 밝혀, 연구자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과학논문의 출판 과정에서 논문의 진실성을 검증하고 인증하는 장치인 논문 동료심사(peer review) 체계가 교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논문 저자는 "가짜 이메일 계정을 만든 적도, 셀프 심사를 한 적도 결코 없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저자의 위기: 논문 24편 대량 철회 사태
국제 학술출판사인 '인포마 헬스케어(Informa Healthcare)'에서 출간되는 과학저널인 <국제 식품과학과 영양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Food Sciences and Nutrition)>과 <제약 생물학(Pharmaceutical Biology)>은 최근인 지난 8월 문아무개 동아대 교수가 교신저자로 발표했던 논문 3편과 1편을 각각 철회한다고 공지했다. 이 사실은 논문 출판의 연구부정 사례를 보도하는 해외 블로그 매체 <리트랙션 워치>의 보도로 국내외에 알려졌다. 출판사가 '출판사와 저자의 합의' 형식으로 공지한 논문 철회 사유는 다음과 같다.
“위의 모든 논문들에 대해 시행된 동료심사 과정이 문아무개 교신저자에 의해 훼손되고 부적절한 영향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그 결과로 논문에 담긴 연구성과와 결론은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교신저자와 출판사는 이 저널에서 출판되는 출판물의 진실성을 지키고자 (이번에 문제가 된) 이 논문들을 철회하고자 한다. 출판사는 제공받는 심사평이 진실하며 공평무사할 수 있도록 심사 과정의 진실성을 더욱 엄격하게 검증했어야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출판사는 독자들께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하며, 비슷한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동료심사 과정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는 조처를 취했음을 알려드린다.”
이번 논문 철회는 출판사가 밝힌 저자의 부정행위 방식 때문에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국제 식품과학 및 영양학 저널> 등을 관리하는 관리에디터(managing editor)인 킴버 제스트(Kimber Jest)는 <리트랙션 워치> 인터뷰에서, 교신저자가 논문 심사자를 추천하면서 가짜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제공했으며, 심사 의뢰를 받고서 저자 자신 또는 주변 인물이 그 이메일 계정에 들어가 호의적인 심사평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제스트는 “일부 경우에 실제 인물의 이름이 제공됐으나 교신저자가 이메일 계정을 가공했으며 그 계정에 자신이나 동료가 접속해 심사평을 (저널 에디터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논문심사 과정에 허점이 드러나자 큰 폭의 대응 조처를 취했다. 4편 논문 철회에 이어 며칠 뒤엔 이 출판사가 내는 다른 학술지 <면역약리학과 면역독물학(Immunopharmacology and Immunotoxicology)>에 문 교수가 2010~2012년 발표했던 논문 20편을 한꺼번에 철회한다는 공지를 내보냈다. 논문 철회 사유는 앞의 경우와 같았다. 이로써 이번 사태로 인해 철회된 문 교수의 논문은 무려 24편에 이르렀다.
저자의 반박: “셀프 심사는 없었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논문심사 과정에 자신이 개입해 ‘셀프 심사’를 한 적은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과 한 네댓 차례의 전화·이메일 인터뷰에서 문 교수는 “논문 제출자인 내가 이메일 계정을 직접 만들어 추천 리뷰어(논문심사자)의 이메일이라고 제공한 적이 없다. 모두 실제 리뷰어의 메일 주소들이며 포스트닥터나 벤처기업 연구자들처럼 기관 메일 계정을 지니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 사람들이 쓰는 개인 메일 계정을 제공했을 뿐”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기관 계정이 아닌 데다 연구자 실명을 유추할 수 없는 아이디(ID)로 이뤄진 메일 주소(예컨대 구글 지메일 같은 서비스 계정과 서양 이름으로 이뤄진 한국인 계정)를 보고서 출판사와 저널 에디터들이 가짜 계정이라고 오해한 것이며, “내(문 교수)가 제공한 메일 계정에 (나 또는 주변인물이) 접속해 리뷰을 써서 제공한 적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리트랙션 워치>는 개인 블로그일 뿐이며 출판사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 쪽이 ‘동료심사평이 24시간 이내에 도착한 점을 이상하게 여겨 (조사에 나서게 됐다)’고 <리트랙션 워치> 인터뷰에서 말한 대목에 대해서도, “리뷰어가 요청을 받고서 리뷰를 바로 보내건 며칠 묵히건 그것은 개인 성향이며 그것 때문에 가짜 리뷰어라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라고 반문하며 “유럽에 있는 저널 쪽이 아침에 메일을 보내고 우리나라에서 다음날 저녁 시간에 리뷰를 보내도 해당 저널의 시간으로는 24시간 이내이지만 우리나라에선 하루 묵힌 리뷰가 된다”고도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은 연구자 수가 적은 관련 전공 분야에서 친분 있는 심사자를 추천한 일이며, 설사 그렇더라도 추천된 심사자를 공정하게 선정하느냐 마느냐는 저널 에디터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에디터가 논문 저자가 추천한 심사자를 논문 심사자로 선정하고서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선정된 심사자는 논문 저자한테 따로 물어보면 안 되는데, 심사자가 논문에 관해 전화나 메일로 문의해올 때 호의적인 심사 결과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답변하고 부탁한 적이 있고, 이것이 공정한 제3자 논문심사의 원칙에 어긋난 것임은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셀프 심사를 한 적은 없고, 또한 논문 저자가 제출한 추천 리뷰어가 적절한 제3자 심사자인지는 저널 에디터가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런 주장 또는 해명은 출판사 쪽이 밝힌 논문 철회 사유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문 교수는 해명 과정에서 “(같은 출판사에서 내는 다른 저널의 논문 20편까지 철회한 것은) 출판사의 권한 남용”이라고도 말했다.
출판사의 재반박: “근거 자료 있다”
출판사인 인포마 헬스케어와 해당 저널의 에디터한테 문 교수의 부정행위가 무엇인지 직접 물어보았다. 출판사의 관리에디터인 킴버 제스트는 <사이언스온>에 보내온 이메일 답장에서 논문 저자가 제3자 심사자를 대신해 자기 논문을 스스로 심사했다며 <리트랙션 워치>와 한 인터뷰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제스트는 답장 메일에서 “우리는 교신저자가 훼손된 얘기해준 동료심사 과정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서, 저자가 철회에 동의한 논문들을 철회했을 뿐”이라며 “교신저자는 자기 논문에 대한 리뷰를 제공할 때 자신이 사용했던 특정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우리한테 얘기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공정하고 윤리적인 동료심사 과정이 수행되도록 하는 게 에디터들의 책임”이라면서도 “그러나 일반적으로 에디터들한테 이메일 주소를 일일이 검색해 비교해보라고 요청하지는 않으며 저자들이 추천 심사자 명단을 제공할 때 그것이 진실하다고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저자가 가짜 인물을 만들거나 실존하는 사람을 가장해 가짜 이메일 주소를 사용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철회 대상 논문의 선정과 관련해, 이번 기망행위의 영향을 받았다고 교신저자가 인정한 논문들을 철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 교수가 ‘셀프 심사’를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는 것과 관련해, “우리는 앞에서 말한 사실을 입증해주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며 “문 교수가 이런 개입 사실을 계속 부인한다면 우리는 (이메일들을) 취재기자한테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이번 논문 철회 사태에 관해 조사 활동을 하고 있는 ‘문 교수 소속 기관’(동아대학교)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 교수는 취재 초기에는 가짜 이메일 계정과 셀프 심사에 관해 출판사 쪽에 인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으나, <사이언스온>의 출판사 접촉 이후에는 “출판사 쪽이 메일 계정이 이상하다며 실제 인물인지 따져물었으나 당시에는 실제 인물의 계정임을 입증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출판사 쪽의 일방적인 논문 철회보다는 출판사-저자의 합의에 의한 논문 철회 조처를 빨리 밟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출판사 쪽의 추궁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며 “하지만 가짜 메일 계정은 아니고 실제 인물의 계정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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