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을 ‘걷게 해서’ 운반했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논문이 발표되어 국제 고고학계에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칠레 육지에서 서쪽으로 3700 킬로미터 떨어진 이스터 섬은 면적이 163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며 대부분이 화산암으로 뒤덮인 황량한 섬입니다. 이스터 섬 전역에는 최대 높이 10 미터, 무게 74 톤에 달하는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1000여 개나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이 채석장에서 암석을 캐내어 석상을 정교하게 조각한 다음에 수레와 동물의 도움 없이 섬 곳곳으로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채 그동안 불가사의로 남았습니다. 심지어 외계인이 석상을 만들어 옮겼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 캘리포니아주립대학(CSULB)의 칼 립(Carl Lipo) 교수 연구팀의 ‘걷는 모아이’ 가설은 국제 학술지 <고고과학 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10월호에 실렸습니다. 모아이 석상을 3개의 밧줄로 묶은 뒤 양쪽에서 교대로 잡아당기면 석상이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위 동영상). 연구팀은 가설을 증명해 보이고자 약 4.4 톤에 달하는 콘크리트 석상 모형을 제작해 하와이의 쿠알루아 렌치(Kualoa Ranch)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18명으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석상이 엎어지지 않도록 석상의 뒤쪽에서 밧줄로 잡아당겼고, 나머지 두 밧줄은 석상의 양쪽에 묶어 ‘힙-호’라는 구령에 맞추어 교대로 끌도록 했습니다. 이 실험으로 연구팀은 석상을 한 시간에 약 100 미터 정도 옮길 수 있었습니다.
▲ 연구팀은 ‘걷는 모아이’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섬의 길가에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석상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석상들이 채석장을 중심으로 언덕의 오르막길에서는 뒤로 나자빠지고, 내리막길에서는 앞으로 엎어져 있다는 사실이 석상을 꼿꼿이 세워 운반했다는 단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버려진 석상의 37 퍼센트가 두 개 이상의 조각으로 깨져 있다는 점도 석상을 눕히지 않고 세워서 운반했다는 근거로 세웠습니다. 연구팀은 또한 컴퓨터로 모아이 석상의 3차원 모델을 만들어 무게중심을 분석했습니다. 석상의 무게중심이 위·아래, 좌·우의 중심부에서 살짝 앞으로 기울여져 있으므로 무게중심을 계속 이동해 석상을 걷도록 하는 데 적합하다는 주장입니다.
◆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이스터 섬 석상 프로젝트(The Easter Island Statue Project, EISP)를 이끌며 석상을 연구한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조 앤 반 틸버그(Jo Anne Van Tilburg) 교수는 칼 립 교수 연구팀의 실험이 “묘기일 뿐 실험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일축했습니다. ‘걷는 모아이’ 실험에 사용된 석상 모형이 실제 모아이 석상 모양과 똑같지 않으므로 가설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모아이 석상이 원주민에 의해 통나무에 실려 운반되었다는 조 앤 반 틸버그 연구팀의 학설(아래 동영상)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학설은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석상을 세우기 위해 나무를 베어 없애는 바람에 위대한 문명이 자멸에 이르게 된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한 때 이스터 섬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문명이 발전했다가 환경 파괴와 함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 립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적은 수의 원주민으로도 모아이 석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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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은과 수현의 플러스 채팅
수현 : 틸버그 교수의 학설은 <총·균·쇠>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저서 <문명의 붕괴>에 소개하기도 했대.
성은 : 어떤 내용인데?
수현 :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석상을 세우기 위해 나무를 모두 베어 없애 버렸고, 그래서 결국에 위대했던 문명은 스스로 소멸하고 말았다는 거야.
성은 : 자원을 마구 고갈시키며 환경을 파괴하면 결국 문명이 사라진다는 거로구나. 하지만 석상을 세워서 운반했다는 칼 립 교수 연구팀의 학설이 앞으로 더욱 지지를 받으면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은 힘을 잃겠네.
수현 : 석상을 세워서 운반했다는 학설과 눕혀서 운반했다는 학설로 두 연구팀이 서로 맞서다니, 흥미진진하다. 앞으로 나타날 논쟁의 향방을 더 지켜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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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플러스'는 사이언스온의 과학저널리즘 동아리 '과감(과학으로 세상의 감을 잡다)'의 회원인 김수현, 김성은 님이 주로 운영하는 뉴스룸 코너입니다.
김성은 어린이 과학잡지 <우등생과학> 기자
에코과학부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현재 잡지사에서 일하며 어린이를 위 한 글을 쓰고 있다. 성인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만만한 글, 깨알같이 재미있고 참신한 글을 쓰는 것이 목표다. <초등과학 뒤집기 -호흡>, <초등과 학 뒤집기 -생태와 환경> 등을 썼다. 이메일 : time2write4@gmail.com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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