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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목소리 잘 들리지 않는 대선후보 과학기술정책

등록 2012-12-03 11:45수정 2012-12-03 11:51

지난 28일 과실연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과학기술정책 토론회. 사진/ 오철우
지난 28일 과실연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과학기술정책 토론회. 사진/ 오철우


타운미팅, 비정규직, 기초연구 토론회 이어 대선공약 토론회 참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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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 한 해 동안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한 여러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학기술 정책 제안 타운미팅’과 ‘창조적 기초연구를 위한 환경 조성 방안’ 토론회, ‘비정규직 연구원과 노동인권 문제’ 토론회처럼 현장의 목소리가 중심이 된 여러 토론회에 참여해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지난 28일 열린 ‘대선 후보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에는 이런 현장 목소리가 얼마나 후보의 정책에 반영되었고 다음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선보일 것인지 궁금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관심들

그러면서, 여러 주체들이 여는 여러 정책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는 현장의 열정과 정치권의 움직임 사이가 여전히 멀다는 아쉬움도 들었고, 하지만 현장에서 끝없이 행동을 보인다면 점점 이런 격차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품게 되었습니다. 현장의 정책 제안 타운미팅 이야기부터 대선 후보 공약 토론회까지, 제가 각각의 토론회에 참여해서 느낀 점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지난 7월 대전에서 0차 회의부터 시작해 8월과 9월에 서울에서 두 차례의 회의를 열고, 다시 10월에 대전에서 연 3차 회의를 끝으로 토론 행사를 마무리한 타운미팅은 아래에서 위로 정책을 끌어올린다는 상향식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네 차례의 회의에 모두 다 참여하게 됐습니다. 또 지인이나 기사를 통해 자주 접하던 이른바 ‘이공계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이들한테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평생 연구자로 사는 게 꿈인 저로서는 산적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도 참여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타운미팅에서는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현장에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연구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타운미팅에 참여한 인원의 절반이 대학생과 대학원생이어서 논의가 편중될 수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 인원이 많다 보니 합의가 쉽지 않았던 적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환경 개선’만 놓고 보더라도 한정된 재원으로 대학생 등록금과 대학원생 장학금 및 인건비, 초임교수 장비 마련 중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이를 이뤄낼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 합치가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이를 하나의 문장에 담아 정책으로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합의가 가능했기에 여러 정책을 도출해낼 수 있었고(타운미팅 정책 제안 최종 자료집 내려받기), 이 때문에 타운미팅 형식의 의사결정 구조가 시간은 많이 들지라도 분명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타운미팅에 참여하기 시작한 뒤부터 더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의 노동 조건을 바꾸고자 직접 행동하고 있는 전국공공연구노조와 대전청년유니온, 생명공학 비정규직 카페 등이 참여해 연 ‘비정규직 토론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정출연 비정규직 특히 학연생이나 대학원생이 다를 것이 없다는 점도 참여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2012 대통령 선거를 맞아 여러 주체들이 참여하는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 비정규직 연구원 토론회, 기초연구 토론회. 사진/ 김정현, 국과위
2012 대통령 선거를 맞아 여러 주체들이 참여하는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 비정규직 연구원 토론회, 기초연구 토론회. 사진/ 김정현, 국과위

비정규직의 목소리, 기초연구자의 목소리

비정규직 연구원에 관한 토론회는 처음 열리는지라 어떤 최종의 합의점을 바로 도출하기보다는 현재의 실태를 서로 공유하고 이후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만남을 약속하는 자리라는 인상이 많이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연구 현장의 수많은 어려움 중 비정규직 연구자의 노동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뤘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통로는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다는 논의가 계속 제기되었습니다. 타운미팅에서는 ‘노동자’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점은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타운미팅과 비정규직 토론회의 참여자는 주로 20~30대 연령층이 대부분이어서, 이번에는 연배가 퍽 있는 연구현장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에스엔에스(SNS)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주관으로 기초연구 토론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곳에 가면 중장년층의 요구와 기초과학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적 기초연구를 위한 환경 조성 방안’ 토론회에서는 참석자들이 전반적으로 ‘연구의 자율성’을 무척 강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예컨대 관리 중심의 지나친 행정 체제를 개편하고 평가 체계를 개선하여 연구자의 잡무를 줄여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로 나왔습니다. 토론회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고용 안정성과 관련해 연구자의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고 많은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므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고소득의 공무원을 양성하자는 주장, 그리고 여러 이질적인 연구현장이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가상 연구소를 세워 여러 연구소를 오갈 수 있게 하되 고용은 보장하는 체계를 구축하자는 주장 등이었습니다. 특히 가상 연구소는 저 또한 고민하고 있던 관심사로, 산학연을 오가며 일하는 연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장려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속 시원했던 점은 현재 우리나라 정책은 연구개발 중에 ‘개발’에만 치중해 지원하고 있다면서 응용할 수 없는 기초과학도 활성화하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였습니다.

이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여러 토론회를 돌아다니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를지라도 대부분이 연구환경 개선 같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움은 누구든 동의할 만큼 고질적인 문제들인데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여러 대선 후보의 정책 자료를 보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책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는 연구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 해결책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타운미팅과 과실연 등 여러 모임에서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책을 꾸준히 제안했기 때문에, 이번 대선 토론회는 그 요구가 얼마나 반영되어있는지 확인하고 부족하다면 다시 요구할 수 있는 자리라 생각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조직개편 논의에 관심 쏠린 공약토론

그러나 ‘대선 후보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에 대한 인상은 한 마디로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 담론이 쟁점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 정책의 세부 쟁점에 관해 논의할 시간이 후보 캠프들에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책이라 하기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만 오갔습니다.

특히 새누리당은 과학기술 공약이 대외적으로 발표할 정도로 확정되지 않았다며 박 후보의 ‘창조경제론’ 구상을 발표했는데 과학기술 전담 부처로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빼놓고는 어디에 과학기술 정책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였는데 과학기술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라는 말처럼 과학기술을 ‘이용’해 경제 발전 등을 이루겠다고 말하는 것이지 정작 과학기술을 ‘위한’ 구체적이고 진지한 정책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토론회를 여러 군데 다녀본 저로서는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이 왔습니다. 실제로 당일 토론회 참가자들은, 정부 조직 개편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이날 토론회 행사를 주최했기 때문인지, 거버넌스에 대해 구체적인 상을 보여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거버넌스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답을 미뤘습니다.

당일 제가 가장 안타깝게 느낀 점은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양당의 시각이었습니다. 기술은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이고, 기초과학은 원천기술로 다시 기술 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초연구 토론회에서도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타운미팅에서는 과학의 경제적 효용뿐 아니라 과학이 지닌 문화적 가치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을 보니 기초과학의 위상이 어디쯤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큰 아쉬움과 작은 희망

분명 발전적인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의사결정의 민주화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연구개발(R&D) 체계에서 분권화를 이루고 하의상달식 의사결정 구조를 강조하며, 국과위도 이를 보장하고 조정하는 방향으로 정립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 쪽 발표자는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에 무엇을 담을지는 아직 논의 중이라며, 인수위에서 결정될 때까지 그 상을 어떻게 다듬어갈지에 관해 과학기술계가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새누리당은 정책이 공개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으나, 민주통합당 쪽의 발표에서는 학생연구원의 학위과정 자기 부담 비중 감소, 정출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문제만큼은 해결 또는 완화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습니다.

저는 현장 목소리가 중심이 된 세 가지 토론회에 참여하고, 대선 후보 공약 토론회에 참가하면서 현장과 정치권이 얼마나 이어져 있는지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현장의 목소리는 그 절박함이나 열망만큼 정치권에 반영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도 이를 점차적으로 반영할 의지를 보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 현장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기적으론 과학기술계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치권에 상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장기적으론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수많은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 해결이 좀 더 쉬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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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포스텍(포항공대) 생명과학과 학부생
“먹고 살 걱정 하는 세상을 넘어, 놀고 즐길 수 있는 세상으로.” 포스텍 에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학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열 정과 기쁨을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지향합니다.
이메일 : kimjun@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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