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데이터 저널리즘과 법률 인공지능‘ 세미나에서 강연 중인 임영익 변호사(프리젠테이션 앞에 선 이)와 참석자들.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제공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바꾸고 있는 영역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법률’ 분야다. 기술과 법의 결합, ‘리걸 테크’는 이른바 4차산업혁명 바람을 타고 순항 중이다.
현재 결성을 준비 중인 국내 첫 범 언론사 데이터 저널리즘 협회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는 그 첫 세미나 주제를 ‘데이터 저널리즘과 법률 인공지능(AI)’으로 잡고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노스테라스 카페에서 모임을 주최했다. 기자는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결성 준비위원이자, 세미나의 모더레이터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이날 세미나는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대표(변호사)가 강연하고 이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는데, 임 변호사는 이 분야의 대표 전문가로 꼽힌다. 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세상을 바꾼 데이터’ 독자께 전한다.
우선 첫 세미나를 임 변호사의 법률 인공지능으로 진행하게 된 이유는, 지난해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와 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DCRC)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구글이 후원해 열린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국제 콘퍼런스의 영향 덕분이다. 당시 강연자 가운데 하나였던 임 변호사는 참석자들로부터 “강연이 짧아 아쉽다”라는 호응을 가장 많이 끌어낸 바 있다. 이에 단독 강연으로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임 변호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이며, 판사 역시 인간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조너선 레바브(Jonathan Levav) 교수가 2011년 발표한 논문이다. 레바브 교수는 8명의 이스라엘 재판관의 범죄자 석방 여부에 대한 판결이 하루 동안 어떻게 바뀌는지 조사했는데, 휴정이나 점심 직전까지는 점점 범죄자에게 엄해지다가 휴정, 점심 뒤에는 크게 관대해지는 경향을 관찰한 것이다.
고도의 법률 전문가인 판사조차 자신의 생리적, 심리적 상태에 따라 흔들린다면, 밥도 먹지 않고 인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공지능이야말로 법률적 판단에 가장 적합한 존재가 아닐까? 미국과 영국 등에선 이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겠노라며 법률 인공지능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지난해 미국 시카고 대학교 다니엘 마틴 카츠(Daniel Martin Katz) 교수(법대)가 개발한 인공지능은 미국 대법원 판결 10개 가운데 7개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이런 성취에 도달하기까지 기계학습과 신경망 분야에서 어떤 혁신들이 이뤄져 왔는지 개괄했다. 연구자들이 먼저 주목한 분야는 시각이었다. 과일을 보고 사과인지 배인지를 구분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먼저 이뤄졌다는 뜻이다. 시각 정보를 히든 레이어에 통과시켜 결과를 내는 신경망 구조에 무수히 많은 사과와 배 사진을 통과시켜 학습 시키는 신경망 기계학습은 이를 가능케 했으며, 그 발전된 형태인 콘볼루셔널 신경망(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은 그 성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 성과가 기념비적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이다.
특히 그 성취가 놀라운 이유는 ‘폴라니의 패러독스’를 깼기 때문이다. 영국-헝가리계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의 세상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상이라고 봤다. 즉, “우리는 말로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이다. 이런 암묵적인 지식은 언어 등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물론 어떤 기술로도 재현하기 불가능하다는 추론이 폴라니 패러독스에 담겨 있다. 그런데 알파고는 그런 영역을 표현해 낸 것이다. 우주 원자 보다도 많다는 바둑의 경우의 수 가운데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인 것이다.
그 다음 도전의 대상은 ‘언어’였다. 임 변호사는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기술로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자인 미콜로프(T.Mikolov)의 워드투벡(Word2vec) 기술을 꼽았다. 이 기술은 언어를 수학적인 벡터로 변환하여 처리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컴퓨터 인공지능이 언어를 다루는 방법을 비약적으로 확장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최근에는 주목받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까지 등장해 기계의 역량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면 이런 진보 속에 인간 법률가는 이제 다른 여러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임 변호사의 예측이다. 우선 우리나라 법의 경우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우리의 헌법은 인간 판사의 판단을 최종 결정으로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기계가 아무리 정교한 판단을 내리더라도 인정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판사 또는 배심원의 재량이 큰 영미법과 달리, 우리 법은 죄의 유무와 형량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 연구에서 나타난 ‘오락가락 판결’이 나타나기 힘들다는 게 임 변호사의 지적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법 체계에 이야기를 국한하지 않더라도, 영화 <터미네이터> 식으로 기계가 인간을 퇴출시키리라 예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발상이라 지적했다. 기계와 인간의 미래를 해석하는 두 가지 관점, 자동화 대 증강화(Automation Vs Augmentation)에서 자신은 증강화에 더 무게 중심을 둔다는 것이다. 법률 인공지능을 데이터 측면에서 본다면 이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다가 가끔 변호사가 필요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변호사가 필요하단 것은 바꿔 말하면 현재 처한 상황의 데이터를 해석하기 충분한 지식이 우리에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률 인공지능은 이런 데이터 해석을 도와주는 비서, 또는 우리 뇌의 ‘증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