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아일랜드’(Null Island)를 표현한 가상의 지도. 출처: 이언 케언스(Ian Cairns)의 깃허브(GitHub)
지구 상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한 곳은 어디일까? 서울 명동 한복판 같은 대도심이나 이집트 피라미드, 바티칸 성당 같은 유명 문화 유적지가 떠오를 법하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곳을 가리킨다. 환상의 섬, ‘널 아일랜드’(Null Island)가 바로 그곳이다. “자욱한 가을 안개가 떠나지 않고 사이렌(선원을 홀리는 반인반수)이 둘러싸고 있는 신비의 섬”(널아일랜드 트위터 @NullIsland) 말이다.
이 듣도보도 못한 섬이 왜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인지 설명하기 위해선 지오코딩(geocoding)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네이버 지도’나 ‘구글 지도’ 같은 앱을 보면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한겨레신문사’ 같은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위치에 정확히 핀이 찍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계는 사람처럼 주소를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컴퓨터가 핀을 찍는 절차를 들여다보면, 앱은 해당 주소에 대해 사전에 가지고 있는 정확한 위도와 경도 주소 데이터를 조회해서 그 점을 지도에 표시하는 것뿐이다. 한겨레신문사의 경우 ‘위도 37.5469287, 경도 126.9566267 정도가 된다. 이렇게 인간의 주소를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수치 정보로 변환하는 과정을 지오코딩이라 한다.
널 아일랜드는 이런 지오코딩에서 적도와 본초자오선이 만나는 위도 0, 경도 0의 지점인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널(Null)은 ‘아무것도 없음’을 뜻한다. 실제 이 지점에 신비의 섬 따위는 없다. 적도 기니 앞 주변에 땅덩어리 하나 안 보이는 대서양의 한 점일 뿐이다. 당연히 사람이 갈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기가 가장 붐비는 곳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오코딩에 있다. 여러 지오코딩 프로그램에서 어떤 이유로든 좌푯값을 반환하기 어려운 경우, 기본값이 위도 0, 경도 0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이 지점을 다녀갔다고 표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우리들의 이동 데이터를 본다면 이 곳을 인류의 성지쯤으로 여길 것이다.
누리꾼이 만든 널 아일랜드의 국기. 출처: 레딧(reddit)의 ‘Rome/Bolivia (Wiphala)‘
실제 지난해 초 운동보조 앱 ‘스트라바’(Strava)가 전 세계 이용자의 위치 정보 1조건가량을 공개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널 아일랜드에서 수시로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자신의 위치 정보를 드러내기 싫은 많은 사람이 좌표를 그저 (0, 0)으로 두었을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용자가 비공개를 하거나 처리 중 에러가 나면 그 사람들은 대부분 널 아일랜드로 보내진다.
이 섬은 공용 온라인 지도 ‘내추럴 어스’(Natural Earth)가 2011년 소개하면서 지리학자와 지리정보를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람들은 이 환상의 섬의 포스터와 국기를 그리고, 트위터 계정을 열고 역사까지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망망대해의 한 점’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상상의 섬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실제 이 지역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기후 데이터 수집 프로젝트, ‘피라타’(PIRATA·대서양 황량한 지역의 기후 예측·연구용 센서 배열)의 목적으로 놓인 부표다. 이 부표는 “소울”(Soul·영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실제 위도 0, 경도 0 근처에 떠 있는 것은 이 부표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기후 데이터 수집용 부표 13010, 일명 ‘소울‘. 출처: 그래엄 쿠란(Graham Curran)/위키미디어(Wikimedia)
널 아일랜드는 단순히 괴짜들이 지어낸 재밌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소중한 교훈까지 선사한다. 데이터에서 어떤 값이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널 아일랜드의 (0, 0)이 실제 좌표가 아니라 ‘값이 없음’(널)에 불과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 성인동영상 업체 ‘포르노허브’는 2012년 미국 각 주별로 얼마나 야동을 많이 봤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캔자스주가 다른 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캔자스주 사람들을 야릇한 눈초리로 봤는데, 실상은 달랐다. 이 사이트의 시청자가 자신의 위치 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은 경우 단지 미국 지오코드의 중앙에 있는 캔자스주로 주소가 찍혔을 뿐이었던 것이다. 널 아일랜드는 데이터의 바다에서 정신 차리지 않는 뱃사람이 도달하는 암초 같은 곳인 셈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