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이사의 철새 ‘검은대륙지빠귀’의 등에 부착한 송신기. 로데슈바르즈 제공
우주에서 지구 전역의 동물 생태를 관찰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우주를 이용한 동물연구 국제협력’, 일명
‘이카루스’(ICARUS) 프로젝트의 첫 운용 보고서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 주도 아래 프로젝트가 출범한 지 20년, 시험 운용을 시작한 지 2년만이다. 이카루스는 국제우주정거장의 데이터 송수신기와 동물에 부착한 송신기를 연결해 동물의 행동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카루스팀이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 경향’(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 4월호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카루스의 첫 프로젝트는 2020년 9월에 시작한 유라시아의 철새 대륙검은지빠귀(Turdus merula)의 이동경로 추적이었다. 연구진은 그해 가을 이 철새가 알바니아 월동지로 이동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추적할 수 있었다.
새의 등에 부착된 송신기는 평소 절전모드로 있다가 고도 400km의 국제우주정거장이 새가 있는 지역의 하늘을 지날 때마다 자동으로 켜지며 새의 위치를 포함한 다양한 데이터를 우주로 보낸다. 그러면
우주정거장의 러시아 모듈에 설치한 안테나와 수신기가 이 신호를 받아 처리한 뒤 지구로 보낸다. 동물들이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시간은 15초, 송신기에서 쏜 전파가 우주정거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5초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보낸 데이터는 러시아의 관제센터를 거쳐 독일 데이터 센터로 보내진 뒤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가 운영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무브뱅크’에 저장된다.
연구진은 “한 번에 받는 데이터량은 223바이트에 불과하지만, 이는 우주 기반의 지구 관측과 생물 탐지의 신기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카루스가 우주정거장을 데이터 중계소로 선택한 것은 우주정거장이 극지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의 상공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카루스 네트워크를 이용해 추적한 캐나다흑꼬리도요(왼쪽 아래) 등 조류 15종의 이동 경로. 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
보고서에는 2021년 3~11월 수집한 갈매기, 비둘기, 뻐꾸기, 박쥐 등 전 세계 조류 15종의 데이터 수집 분석 결과도 들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캐나다흑꼬리도요는 칠레 남부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 텍사스까지 논스톱 비행을 했으며, 오리엔탈뻐꾸기는 일본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바다 위를 날아갔다. 또 다른 뻐꾸기는 인도양을 건너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갔고, 극제비갈매기는 러시아 북서쪽 백해를 출발해 스발바르제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를 거쳐 서아프리카까지 이동했다.
보고서 주저자인 월터 제츠 예일대 교수(생물학)는 “이번에 처음으로 세계적인 규모에서 최신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이는 동물 센서로 생물학적 지구를 관찰하는 길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카루스 시스템은 저렴한 소형 센서를 통해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실시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동물의 위치와 행동을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에 기반한 동물인터넷(Internet of Animals) 시스템이다. 이카루스망이 제대로만 구축된다면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동물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확장할 수 있다.
송신기의 크기는 2㎠이며 표면에는 얇은 태양전지가 있다. 이카루스 프로젝트
이카루스팀이 블랙버드에 부착한 송신기의 무게는 5g이었다. 동물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송신기의 무게는 동물 몸무게의 5%를 넘어서는 안된다. 블랙버드 몸무게는 100g 정도다. 이카루스팀은 송신기 무게는 현재 4g으로 더 가벼워졌으며, 조만간 3g으로 더 소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카루스팀을 이끌고 있는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의 마르틴 비켈스키 소장은 2025년까지 1g으로 줄인다는 희망 사항을 피력한 바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작은 박쥐는 물론 잠자리, 나비, 메뚜기 같은 곤충도 추적할 수 있다.
송신기에는 리튬이온 배터리, GPS 장치, 가속도계, 자력계, 온도 및 습도와 압력 측정 센서가 들어 있다. 또 밖으로는 길이 200mm의 데이터 송신용 안테나와 길이 50mm의 GPS용 안테나가 뻗어 있다. 배터리는 송신기 표면의 얇은 태양전지로 충전한다.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한 이카루스 안테나. 예일대 제공
이카루스팀이 지금까지 제작해 배포한 송신기는 5천여개다. 1차 목표는 조류, 포유류, 파충류 500종의 동물에 10만개의 송신기를 부착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향후 이카루스 시스템으로 조류의 약 40%, 포유류의 50% 이상, 그리고 수백종의 악어와 거북, 대형 도마뱀의 행동 양태를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카루스팀은 더 많은 송신기를 마련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현재 제작 비용은 송신기 1개당 300달러이지만 수요가 늘어날 경우 개당 100달러 안팎으로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
연구진은 이카루스 네트워크가 확장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지구 생태계의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천종의 동물로부터 얻는 시·공간 및 환경 정보는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를 더욱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멸종 위기종을 비롯한 일부 동물종의 개체군이 감소하는 이유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유럽에선 철새의 30%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카루스 네트워크가 새들의 이동 경로 추적을 통해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또 개별 동물의 일생에 대한 추적 자료는 진화와 질병 연구의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동물 추적 센서를 이용한 지구 관측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잠재적 발원지를 확인하고 장거리 또는 국경간 전파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 감염병학자들은 항체를 가진 동물의 추적을 통해 에볼라나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동물원성 감염병의 숙주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자연재해 예방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비켈스키 박사는 2020년 이탈리아에서 소와 양들에 부착한 센서를 통해 이 동물들이 지진이나 화산 분출이 일어나기 전에 비정상적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카루스 송수신기를 통해 이와 관련한 행동 변화를 실시간으로 잡아낼 수 있다면 재해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추적 가능한 동물들이 늘어나게 되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끌어낼 수 있는 재미있고 극적인 동물 이야기들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카루스 시스템의 등장은 인간과 사물은 물론 동물까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세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징표로 볼 수 있다.
이카루스팀이 개발한 동물 추적 앱 ‘애니멀 트래커’.
이카루스의 또 다른 힘은 시민연구자들과 협력하는 시민과학 프로그램이다. 이카루스 연구진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동물 추적 앱(ANIMAL TRACKER)을 운영하고 있다. 누구나 앱을 설치하고 등록해 송신기를 부착한 동물의 현장 관찰 기록과 사진을 올릴 수 있다. 아직 한반도에는 이카루스 송신기가 부착된 동물은 없는 상태다.
명실상부한 동물인터넷이 완성되려면 우주정거장의 안테나만으로는 전 세계 동물들을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 소형 또는 대형 위성을 이용한 추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카루스팀은 이에 따라 현재 미 항공우주국(나사)를 비롯한 여러 우주기관과 이카루스 시스템에 마이크로 위성을 이용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나사와 독일 헬름홀츠협회, 독일우주국, 막스플랑크협회의 공동프로젝트인 `그레이스1' 이카루스 시스템을 통합할 계획이다. 그레이스1은 2대의 저궤도 위성으로 지구의 중력장과 물 순환 시스템을 추적하는 지구 관측 프로젝트다.
이카루스에는 독일과 유럽, 러시아, 미국의 대학과 연구기관, 기술기업 20여곳이 협력, 후원 등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