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이제 신흥기술이 아니라 성숙기술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흥 기술에서 성숙 기술로.
미국 스탠퍼드대 사람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는 최근 발표한 ‘2022 인공지능 지수’(2022 AI Index) 보고서에서 “2021년은 인공지능이 신흥 기술 단계를 지나 성숙 기술로 도약한 해였다”고 진단했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이 산업과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는 걸 뜻한다. 2012년 이미지 인식 경진대회에서 ‘합성곱 신경망’이라는 새로운 딥러닝 방식이 등장해 인공지능 붐을 일으킨 지 10년만에 인공지능의 주류 편입을 선언한 셈이다. 앞서 연구소는
2019년 보고서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가속도가 붙어 3.4개월마다 두배씩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컴퓨터 칩의 집적도가 2년마다 두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보다 7배나 빠른 속도다.
보고서 운영위원회 공동의장인 잭 클락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해 더는 추론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 끼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5번째 발표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주류 경제에 완전히 통합되고 있으며, 이는 자금 조달과 연구, 배포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가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몇가지 있다.
우선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2021년 인공지능 민간 투자액은 총 935억달러(약 113조원)로 한 해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2013~2014년에 두배 증가한 이후 가장 큰 증가율이다.
그러나 투자 대상은 편중된 양상을 보였다. 새로 투자를 받은 회사 수는 2020년 762개에서 지난해 746개로 오히려 줄었다. 2019년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다. 이에 따라 평균 투자 규모도 커져 5억달러 이상 조달한 사례가 2020년 4차례에서 지난해엔 15차례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인수합병이 활발해진 영향이 크다. 온라인 결제 플랫폼 업체인 페이팔이 선구매후지불(BNPL) 서비스 업체 페이디를 27억달러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음성인식기술 기업 뉘앙스를 160억달러에 인수했다.
부문별로는 데이터 관리와 처리, 클라우드 기술 기업들이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고 의료, 핀테크 기업들이 그 뒤를 이었다. 나라별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위인 중국의 2배가 넘는다.
둘째로 인공지능의 저비용 고효율화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보고서는 2018년 이후 이미지 분류 훈련을 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63.6% 줄어든 반면 학습 시간은 94.4% 개선됐다고 밝혔다. 대표적 이미지 학습 도구인 이미지넷의 경우 훈련 비용이 2021년 4.6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7년 비슷한 성과를 낼 때까지 들어간 비용 1112달러의 0.4%에 불과하다. 4년 사이에 인공지능 훈련비용이 헐값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인공지능개발업체 오픈AI의 2020년 보고서에서도 이미지넷의 경우 훈련에 필요한 학습량이 16개월마다 2배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 알파벳의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최근 개발한 언어모델 레트로는 다른 언어모델보다 25배 효율이 좋아졌다.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로봇팔 가격 하락세도 뚜렷하다. 5년새 가격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팔의 중간가격은 2016년 5만달러에서 2021년 1만2845달러로 5년새 74% 하락했다
이런 흐름의 밑바탕에는 활발한 연구 성과가 있다. 보고서는 2021년 인공지능 특허 출원 건수는 2015년보다 30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연평균 증가율이 77%나 된다.
2014년에 등장한 생성적 대립신경망(GAN)의 얼굴 생성 능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크게 좋아졌다. 인공지능 보고서에서
셋째로 인공지능 윤리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윤리 문제의 핵심은 공정성과 편향성이다.
인공지능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연구물이 지난 4년새 5배 증가했다. 기업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학술회의와 워크숍에서 인공지능의 공정성에 관한 연구물을 한 해 전보다 71% 더 많이 발표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흐름은 고무적이지만 기업들은 자사 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내부 연구를 제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메타(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의 인공지능 윤리팀은 ‘이빨빠진 호랑이’와 같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2019년 구글이 인공지능 자문위원회를 만든 뒤 불과 1주일만에 해체한 것, 공정성을 강조해 온 아이비엠이 한때 영상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뉴욕 경찰과 함께 비밀리에 안면 인식 및 인종 분류 모델 훈련을 실시한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실제로 인공지능 업계에서 윤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아직은 기대에 못미친다. 컨설팅업체 맥킨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응답자의 29%와 41%는 인공지능을 도입할 때 ‘형평성과 공정성’ 및 ‘설명 가능성’을 위험으로 인식하지만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처를 취하는 비율은 각각 19%, 27%에 그쳤다.
윤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공지능 관련 규제 법률도 속속 제정되고 있다.
25개국 의회에서 통과된 인공 지능 관련 법안 수가 2016년 1개에서 2021년 18개로 급증했다. 스페인과 영국, 미국이 각각 3개씩 가장 많은 관련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경우 의원들이 제안한 인공지능 관련 법안이 2015년 단 1개에서 2021년 130개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이 가운데 통과된 법안은 2%에 불과하다.
연구소는 보고서와 함께 세계 각국의 인공지능 경쟁력을 보여주는 ‘세계 인공지능 활력 도구’(Global AI Vibrancy Tool)도 발표했다.
23개 지표를 토대로 연구개발과 경제에 가중치를 둔 인공지능 활력 순위표에서 1위는 미국이 차지했다. 이어 중국, 인도, 영국 차례였으며 한국은 캐나다에 이어 6위였다. 한국은 순위표를 매기기 시작한 2017년 이후 매년 4~8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