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국무총리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이 원전을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묵히는 그건 어떻게든 정리를 빨리하자는 건 원자력안전위원장님한테 요청하겠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경북 울진 신한울 원전 1호기 운영허가와 관련해 한 이 발언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발언은 운영허가가 늦어지는데 따른 경제적 피해를 거론하며 탈원전정책 폐기를 주장한 김영식 의원(국민의힘)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장에게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를 빨리 내주라고 요청하겠다는 얘기다.
김 총리의 이 발언에 대해 법률 전문가 사이에는 “원안위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을 넘어 직권남용을 하겠다는 발언”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국무총리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장들에게 행정감독권을 행사한다. 국무총리 소속 기관인 원안위의 위원장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원안위의 일부 업무에 대해서는 총리가 행정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 원안위가 원자력 안전 관련 사항을 독립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예외 규정을 뒀기 때문이다. 지금 원안위에서 심의 중인 원전 운영허가가 그런 업무 가운데 하나다. 국무총리가 원안위원장에게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를 빨리 내주라고 요청하는 것이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김 총리의 발언에 누구보다 당혹스러울 사람들은 엄재식 원안위원장을 포함한 9명의 원안위원들이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어진 발언에서 원안위원들을 ‘완성 단계에 있는 원전을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묵히는’ 주체로 여긴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기·승·전·탈원전 공격’에 집중해온 야당과 보수언론 쪽 주장을 뒷받침 해주면서 수천 수만 쪽의 원전 안전 관련 보고서와 씨름하는 원안위원들의 노력을 폄하한 셈이다. 원안위원들이 원전의 안전과 관련된 허가 사항을 심의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다. 쉽게 허가에 동의했다가 잘못돼 사고라도 날 경우의 책임과 비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한울 1호기의 운영허가는 지난 11일 열린 제140회 원안위 회의에 심의·의결 안건으로 처음 상정됐다. 원안위는 안건 상정에 앞서 지난해 11월 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이 제출한 운영허가 심사보고서를 놓고 모두 12차례 사전검토 회의를 열었다. 이 사전검토 회의 횟수는 원안위가 앞서 운영허가를 내 준 신고리 4호기(8회·2019년 허가), 신월성 2호기(6회·2015년 허가) 등에 비해 다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야당과 보수 언론에서 주장하듯 원안위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의식해 운영허가를 고의로 늦췄다고 볼 수는 없다.
보고가 길어진 것은 킨스와 한수원이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속 안전 개선사항 적용, 원자로의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설치한 피동촉매형수소재결합기(PAR)의 안전성, 항공기 재해의 설계 반영 등의 쟁점에서 원안위원들의 의문점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가 심의·의결안건으로 처음 상정된 지난 11일 원안위 회의는 운영허가가 왜 늦어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회의였다. 이날 회의는 회의 전날 한수원이 자신이 제출한 운영허가 심사 서류에 오류가 있다고 뒤늦게 보고하는 바람에 충분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
김 총리의 발언에 대해 원안위 안팎에서는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호철 원안위원은 “한수원이 원전 안전을 담보하는 서류로 내는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조차 실제와 다른 허위 내용으로 작성해 킨스가 재심사에 들어간 사실 하나만으로도 허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원안위가 아니란 사실이 증명된다”며 “총리가 사정을 살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 위원장에게 (운영허가를 빨리 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한 것은 아무래도 경솔하고 경도된 언행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대표)는 “국무총리에게 신한울 1호기가 안전성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다 지었으니 무조건 운영허가를 해주라는 것인지, 안전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묻고 싶다”며 “김 총리가 하려는 것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원안위에 압력을 행사한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국민의 안전보다 원전 산업계의 이익을 우선시 한 매우 불법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총리가 이날 원전 설계수명 연장을 주장하는 양금희 의원(국민의힘)의 질의에 답하며 “(원전의) 설계수명을 어떤 형태로든지 조금만 더, 여러가지 보정하면 그걸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그런 것들은 계속 지켜 봐야겠죠”라고 발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고수해 온 탈원전 정책의 절반을 뒤집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는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와 함께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에너지전환(탈원전)로드맵의 핵심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