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독일 벨리츠의 한 주택가 지붕 위 태양광 패널 가장자리를 따라 황새 한 마리가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저런 사진은 처음 봤다.”
<조선일보>가 9일치 1면에 보도한 ‘패널 수백장이 하얗게…‘새똥광’ 돼버린 새만금 태양광’에 딸린 사진을 본 육상·수상 태양광 관련 전문가·업계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반응이었다.
태양광 패널이 새똥으로 범벅된 채 방치된 이유는 있었다. <한겨레>가 10~11일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에 확인해보니 <조선일보>가 보도한 수상 태양광 패널은 현재 운영 중인 태양광 발전시설이 아니었다. 국내 수상 태양광 발전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한 ‘테스트베드’ 시설이다. 2023년 7월까지 태양광 전문업체 등 15개 기관이 참여해 ‘해상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태양광 모듈 및 시스템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총 600㎾ 용량 시범 발전시설을 6곳에 분산해 설치할 예정이다. 새만금호 태양광 발전시설 현장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실증실험을 하는 곳이라 9~10월쯤 가동을 해보려 한다”고 했다.
산업부는 11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조선일보> 기사에 보도된 태양광 설비는 발전사업용이 아닌 연구·실증용 설비로, 현재 설치공사 진행 중이어서 전력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패널) 세척 등 별도 유지관리를 하지 않았다. 현재 설치공사 중인 설비에서 나타난 현상을 실제 운영 중인 설비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오해할 우려가 있는 보도에 유의해 달라”고 했다. 이어 “현재 국내 설치된 1㎿ 초과 발전사업용 수상 태양광 설비를 조사한 결과, 조류 영향이 있는 설비는 물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세척하고 있어 발전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새똥이 떨어지는 것은 해상, 육상, 도시를 가리지 않는다. 전문가와 업계에선 갑자기 생겨난 소규모 태양광 시설이 바다새들에게 일종의 섬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새똥으로 범벅된 테스트베드 태양광 패널은 수백개 수준이다. 새들 입장에서는 망망대해에 쉬어갈 작은 섬이 하나 나타난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새만금호 수상 태양광 사업은 전체 2.1기가와트(GW) 규모로 태양광 패널 500만개가 설치될 예정이다. 새들이 이 모든 패널을 똥으로 덮을 수는 없다.
이성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수석전문위원은 “새들이 하늘에서 똥을 싸는 것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저렇게 뒤덮이는 문제가 지속될 확률은 매우 낮다. 예외적 사례를 일반화해서 재생에너지를 공격하는 것은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수상 태양광 사업을 많이 하는 한국수자원공사 쪽에 물어봤다. “태양광 발전 효율을 생각하면 새똥이 묻은 패널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항상 일사량·발전량을 확인하고, (패널을) 닦고 조이고 관리해줘야 한다.” 실제 운영에 들어가면 당연히 관리를 하기 때문에 새똥이 무더기로 방치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수상 태양광 발전이라도 지역에 따른 차이도 있다. 윤을진 탑인프라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전남 고흥 간척호에 25㎿규모(10만평)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윤 대표는 10일 “고흥·보성 경계인 득량만에 위치해 있어서 철새가 안 오진 않을텐데, 새똥이 패널 위로 떨어진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윤 대표는 “새똥이 떨어진다고 해도 며칠 치우지 않으면 산화현상 때문에 더 치우기 어려워진다. 보통 관리 직원이 바로 치운다. 간단히 물로 세척할 수 있어 추가 비용이 들어가진 않는다”고 했다.
김지석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육상인 충남 공주, 경남 함안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직접 설치해 이용한다. 공주 벌판에 100㎾, 함안 창고 지붕에 100㎾짜리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김 위원은 “비가 내려 씻겨주기 때문에 별도로 청소를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조선일보> 9일치 1면에 실린 사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생태계 해치지 않는 경제적 세척 방법 고민 필요”
태양광 발전을 하면 패널 온도는 외부 기온보다 약 30도 높아진다. 업계에서는 실제 운영되는 태양광 발전시설의 경우 뜨거워진 패널 위에 새들이 내려앉아 배설하는 일은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도 새똥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 새만금호에 패널 500만개가 깔리면 빗물에 의한 자연적 청소로는 한계가 있고, 인위적 세척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산업부 역시 “새만금 수상 태양광과 같은 철새 도래지에 설치되는 대규모 태양광의 경우 전체 설비 대상 주기적 세척 가능여부, 소요 비용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설치 중인 새만금호 연구·실증용 설비를 활용해 조류 영향 최소화 방안, 효과적 유지 관리 방안 등을 테스트해서 최적의 방식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어떤 방식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울어진 태양광 패널 위에 새가 앉기 어려울 정도로 가는 와이어나 로프를 설치해서 새들이 패널 위에 쉬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임춘택 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은 “2년 전부터 새만금호, 시화호, 부산 바다 등에서 수상 태양광 발전 시범실시를 통해 조류로 인한 문제점을 확인하고 이를 줄일 방법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임 전 원장은 “그물을 설치하면 새가 걸려 죽을 수있고 새똥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뾰족한 스파이크를 설치하는 방안도 있지만 새가 다칠 수 있었다. 그보다는 가느다란 철선을 적정한 높이에 설치하면 갈매기 등 바다새가 앉을 수 없어 이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다.
유력한 해결 방안으로 꼽히는 와이어 설치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허위행 국가철새연구센터운영팀 연구관은 “아직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 다만 양식장에서도 비슷한 와이어 작업을 하면 걸려 죽는 새들이 보고된다. 태양광 패널에 설치하는 경우에도 새에게는 부정적 영향이 있긴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4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와이어 설치) 방법 만으로는 조류 배설물을 완전히 방지하기 어려우므로, 태양광 모듈의 코팅막을 손상하지 않으며 세척할 수 있는 세척액과 경제성을 고려한 세척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연구보고서를 냈다. 새만금호 태양광 발전 현장 관계자는 “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패널을 설치할 때 침을 꽂아 새가 앉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비용적으로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이번 연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고 했다.
2018년 시화호 인근 태양광 발전 시설에 새들이 앉아있다. 태양광 패널 각도가 완만한 소규모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의 경우 새 입장에서는 비행 중 쉬어가는 섬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 임춘택 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제공
태양광 발전은 설비용량 대비 낮 시간대 발전 효율이 35% 정도다. 발전을 할 수 없는 흐린 날이나 밤 시간대를 포함한 24시간 기준 평균 발전량은 15~16%로 떨어진다. 이를 두고 친원전 진영에서는 설비용량의 최대 80~90%까지 가동하는 원전과 태양광 발전 시설의 ‘능력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수치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원전이 안고 있는 여러 위험, 재생에너지에 역전되는 경제성 등 복합적으로 고려할 것이 많아 직접 비교는 어렵다.
새똥은 태양광 발전 효율을 떨어뜨린다. 태양광 발전 도입에 적극적인 국가들은 ‘그래서 태양광 발전은 안 된다’는 식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 초 미국 전역 대규모 태양광 시설에서의 조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한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을 위해 일리노이주 아르곤 국립연구소 연구팀과 130만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의 한 태양광 관리 업체는 태양광 패널 둘레에 철 구조물을 세워 새들이 머물지 못하도록 장벽을 치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올해 축구장 45개 면적에 수상 태양광 패널 12만2천개를 설치했다. 발전용량은 60MW다. 1만6천가구가 연간 사용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2GW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구축해 3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싱가포르 태양에너지연구소(SERIS)는 수상 태양광 발전 테스트베드 시설을 통해 새똥 문제 해결책을 연구한다. 즉각적인 세척, 장애물 설치, 초음파·음파 이용 퇴치 등이다.
싱가포르 태양에너지연구소 자료. 수상 태양광 발전 테스트베드를 통해 패널 위에 떨어진 새똥 관련 해결책을 연구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해결책은 연구 중이다. 한화큐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태양광 발전시설 관리업체 등이 소개한 방법을 보면, 맹금류 홀로그램을 통해 새를 쫓거나 새들이 싫어하는 소음과 초음파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에너지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고위 관계자는 11일 “외국에서는 재생에너지의 단점부터 찾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늘어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