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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때보다 더 일방적”…산업부 방폐물 관리계획 추진 논란

등록 2021-12-24 17:29수정 2021-12-29 14:32

기본계획안 예고·토론회 개최도 안 알려
원전지역민 “여론수렴 노력없이 일방 추진”
산업부 “확정된 계획 아닌데 오해할까봐”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오른쪽이 영구정지된 1호기 원자로 격납건물이다. 연합뉴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오른쪽이 영구정지된 1호기 원자로 격납건물이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원칙과 로드맵을 담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을 여론의 주목을 피해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기본계획 수립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 때 기본계획이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시민사회 주장을 받아들여 재검토를 공약한 데서 출발했다. 그럼에도 지난 정부때 방식을 답습하는 산업부의 태도에 원전 지역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산업부는 지난 7일 알파선 방출 핵종이 g당 4000Bq(베크렐) 이상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원전 부지에 임시저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행정예고했다. 행정예고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행정계획을 수립할 때 국민들에게 주요 내용을 알려 의견을 듣기 위한 절차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려면 행정예고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하지만 산업부는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았다. 지난 17일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개최한 토론회도 마찬가지다. 토론회 개최 사실을 부처 누리집에만 공지하고 따로 홍보하지 않아 이 사실을 모르는 지역 주민들은 이해 당사자임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산업부가 논란이 심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 확정 전 마지막 의견 수렴을 하면서 언론에 보도자료조차 배포하지 않은 것은 산업부의 기존 홍보 방식에 비춰 이례적이다. 산업부는 기본계획안을 행정예고한 지난 7일에는 △시스템반도체 첨단패키징 공장 준공 △제2차 수소·암모니아 발전 실증 추진단 회의 △2021년 신기술 실용화 촉진대회 개최 등의 행사나 당장 중요 안건이 의결되지도 않는 회의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다.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립과 관련해서는 지난 17일 전력정책심의회에서 제10차 계획 수립을 위한 공식 논의에 착수한다는 보도자료까지 내는 적극성을 보였다.

당장 원전 주변 지역에서 “산업부가 주변 지역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무시하고 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산업부는 예정대로 27일 원자력진흥위원회에 기본계획을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다. 김부겸 총리가 주재하는 원진위 심의를 통과하면 기본계획은 확정된다. 다만 확정되더라도 바로 시행되지는 못한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의 특별법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시행되려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다루는 이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선행돼야 한다.

산업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 태도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산업부가 지난 2019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방안에 대한 공론화 기구로 구성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위원장이 중도 사퇴하는 등 파행을 빚은 것이 단적인 예다. 당시 정정화 위원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이해 관계자와의 소통과 사회적 합의 형성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난제인데, 산업부가 월성원전 임시저장시설(맥스터) 확충에만 급급하다는 탈핵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며 산업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사퇴했다.

탈핵 진영과 지역 시민단체 쪽에서는 산업부가 제2차 기본계획안에 ‘부지내 저장’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후핵폐기물의 임시저장을 추진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을 특히 문제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임시저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는데 ‘부지내 저장’이라는 개념으로 바꿔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지내 저장에 대해 원전 지역 주민들은 사실상 원전 부지를 ‘영구처분장’화하려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박근혜 정부의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재검토를 시작한 것에서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기본계획 수립 과정이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산자부는 행정예고된 제2차 기본계획을 철회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의 권고에 따라 향후 설치될 독립행정위원회에서 원전지역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방적 추진 지적에 산업부 관계자는 “기본계획이 확정된 계획이 아닌데 마치 확정된 것처럼 오해될 수 있어 (보도자료 배포를) 하지 않았다. 토론회 개최도 마찬가지 이유로 자료를 안 냈지만 지자체라든가 탈핵단체, 원자력계에서는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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