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10일 시작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에는 짧은 ‘흑역사’가 있다. 2002년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을 중심으로 한차례 시행됐다가 5년 만에 폐지된 전력이다. 코로나19 시대,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 필요성이 커지자 14년 만에 보증금제가 부활했다. 전문가들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회수와 반납이 용이한 인프라를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서 환경부와 패스트푸드 7개 업체와 커피전문점 24개 업체는 2002년 10월4일 자발적 협약을 맺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한 바 있다. 일회용컵에 개당 50~100원의 보증금을 물려 판매하고, 소비자가 컵을 구입한 매장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식이다.
소비자 참여를 유도해 일회용품 이용량을 줄이자며 세계 최초로 시행된 제도지만, 취지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약사항으로 ‘업계의 자율적 판단에 시행여부를 맡기자’고 했고, 이듬해인
2008년 3월20일 제도는 폐지됐다.
낮은 회수율 때문에 5년 만에 폐지된 슬픈 과거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폐지된 표면적인 이유는 37% 수준의 낮은 회수율이었는데 회수를 어렵게 한 배경에는 여러 문제가 자리했다. 자발적 협약이라 법적 근거가 부재했던 데다 미환불금이 기업 홍보비로 쓰여 논란이 일었다. 일회용컵을 구입한 매장에만 컵 반납이 가능한 회수방식이 아쉬웠다. 보증금 금액도 50~100원에 그쳤는데, 보상 대비 컵 반납은 번거로운 일로 인식됐다. 당시 자원순환사회연대는 다른 브랜드 매장에 컵을 반납해도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하라는 대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귀찮음을 극복할 유인책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 사이 일회용컵 사용량은 크게 늘었다. 환경부 집계를 보면 커피전문점, 제과점, 패스트푸드점 가맹점 수는 2008년 3500여곳에서 2018년 3만549곳으로 급증했다. 일회용컵 사용량도 2007년 4억2천만개에서 2018년 25억개가 됐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플라스틱 폐기물 급증 사태까지 겹치자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다시 시작하라는 요구가 커졌다.
폐지의 쓴맛을 겪고 다시 시작한 제도인 만큼 현 정부는 과거 지적된 문제를 보완했다고 설명한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환경부 산하에 보증금 관리 전담 기구인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를 뒀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반환보증금은 반환률을 높이기 위한 용도 등 공적인 목적으로 쓰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컵 반납 또한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참여한 전 매장에서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수율을 높이는 게 핵심인데 이를 위한 준비는 아직 부족하다고 우려한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 활동가는 “회수가 잘 되도록 환경부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매장 내부에서만 회수할 게 아니라 매장 밖에 무인회수기를 두는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 노약자들이 키오스크(무인회수기)를 잘 이용 못하는 문제가 종종 지적되는데 무인회수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우미 등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대표도 “다음달까지는 시민들이 편리하게 컵을 회수하고 보증금을 반환받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완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카페에서 수거한 일회용컵이 질 좋은 재활용품으로 다시 쓰일 수 있도록 판로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일회용품 이용을 줄이기 위한 다리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대표는 “규제만 만드는 것은 궁극적인 대안이 아니”라며 “일회용컵 보증금을 낼 바에는 자기 컵을 들고 다니는 게 낫다는 트렌드가 정책돼야 한다. 300원 냈으니 된 게 아니라 일회용컵을 덜 쓰는 쪽으로 소비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일회용컵 보증금이 300원이고 다회용 컵 할인도 300원 수준이다. 다회용 컵 이용하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가 더 커져야 소비자들도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가지고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유인들이 별도로 보완돼야 일회용품을 덜 쓰는 사회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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