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경제성 때문에 지난 2019년 5월 정지된 뒤 폐기 과정에 들어간 미국 매사추세츠의 필그림 원자력발전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제공
국내 원전에서 다수 발견돼 원전의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 가짜 부품 사용이 미국 원전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나 제대로 추적되지 않고 있다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감찰실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 원자력규제위 감찰실은 지난 9일 위원회에 제출한 ‘운영 중 원전의 위·모조 및 의심 품목(CFSI)에 대한 특별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위·모조 및 의심 부품이 운영 중인 원전에 있다”며 “NRC의 3권역 발전소에서 이런 부품이 사용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았다”고 밝혔다. NRC 3권역에는 미네소타, 위스콘신 등 미국 중북부 7개 주의 23개 원전이 속해 있다.
미 원자력규제위 감찰실의 특별 조사는 미국의 대다수 원전에서 품질 기준을 통과하지 않은 가짜 부품이 쓰이고 있다는 익명의 고발에 따라, 권역별로 1개 원전씩 표본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CFSI는 합법적인 제품을 모방하거나, 속일 의도로 거짓 표시를 하거나, 정해진 제품의 사양을 충족하지 않는 부품을 말한다. 미국에서 위·모조 및 의심 부품으로 확인한 원전 설비 관련 부품은 밸브, 베어링, 회로 차단기, 파이프에서부터 구조용 강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NRC 감찰실은 보고서에서 “일부 기관에서 2016년 이후 10건 미만의 가짜 부품 사례 보고가 있었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미국 에너지부 직원들이 2021 회계연도에만 가짜 부품과 관련된 100건 이상의 사고를 확인했음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원자력 시설의 안전에 중요한 구성 요소와 관련된 5건의 사고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원전에서 가짜 부품 사용이 횡행하고 있음에도 NRC의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감찰실은 크리스토퍼 핸슨 위원장에게 보낸 이 보고서에서 “NRC는 가짜 부품이 품질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한 원전사업자에게 그것을 추적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운영 중 원전에서 가짜 부품이 사용되는 범위를 알 수 없다”며 “NRC가 지난 10년 동안 가짜 부품이 존재와 관련한 정보나 제기된 우려에 대해 조사나 어떤 실질적인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가짜 부품 사용은 국내 원전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크게 문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원전 부품 납품업체 8개사가 한수원에 검증서를 위조한 237개 품목 7682개 원전 부품을 납품해 원전에 사용케 한 사실을 확인했다.
원전은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는 민감한 설비여서 품질 기준에 맞지 않는 가짜 부품이 사용될 경우 안전에 심각할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짜 부품 사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원전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인정하고 있다.
IAEA는 2019년 펴낸 ‘원자력 산업에서의 위·모조품 관리’ 보고서에서 “원전산업에서 위·모조 부품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부품들은 표준적인 산업 품질 보증 검사로 찾아내기 어려우면서 치명적인 고장이나 기능 손실을 유발해, 원전의 신뢰성, 경제성과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