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월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기요금 관련 공약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다양한 공약을 펼쳐 놓고 유권자들의 표를 모았다. 표가 상품이라면 공약은 어음인 셈이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가장 먼저 결제일이 돌아오는 것은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이다. 임기 중에만 이행하면 되는 다른 공약들과 달리 이 공약은 앞으로 약 2주 안에 이행 여부가 최종 판정된다.
지난해 말 한국전력공사는 정부와 협의해 올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기준연료비를 ㎾h당 4.9원씩 올리고, 4월부터 기후환경요금도 ㎾h당 2원 인상하는 전기요금 조정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즉 당장 다음달부터 ㎾h당 6.9원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현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발전용 연료비 등락을 분기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국민의 부담 가중과 물가상승 압박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2020년 수준에 묶어 놨다. 지난해 4분기 소폭 인상이 이뤄졌으나, 이것은 1분기에 인하한 것을 원상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지난해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가 늘어나 5조860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적자는 20조원 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가 늦게나마 전기요금을 올리기로 한 것은 연동제 도입 취지를 무시하며 공기업을 부실화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수용한 결과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천연가스와 석탄 등 발전용 연료 가격이 급등한 상황까지 겹치며 인상 시점의 적기를 놓쳐버렸다는 평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의 요금 인상계획이 발표되자 윤 당선자는 페이스북에서 “공과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굳이 대선 전에 올리지 않고, 대선이 끝나자마자 올리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노골적인 관권선거다”라고 비판했다. 뒤이어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약 자료에서 “대선 직후 전기요금 인상은 탈원전 정책 실패의 책임 회피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국민의 부담을 한 스푼 덜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5월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현 정부에 요청해 이달말까지 4월 전기요금 인상계획을 취소시켜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와 관련된 준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보통 정권 인수 기간이 공약이행 계획을 준비하는 기간인데, 이 공약(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은 이행 시점이 현 정부 임기 내여서 애매하긴 하다”며 “이제 인수위가 구성되는 단계여서 그런지 요청 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전기요금과 같이 국민 생활과 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공공요금을 정부가 결정한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전기요금의 최종 결정권은 산업부 장관에게 있다. 4월 전기요금 인상계획이 취소되려면 한전 이사회가 변경안을 의결해 산업부에 제출하고, 산업부가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가해야 한다. 전기위원회 심의에 앞서 소비자보호전문위원회 심의와 물가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협의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 정부가 4월 전기요금 인상계획을 변경하면 윤 당선자는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한전의 적자를 더 키워 결국 국민 부담을 더 늘린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한전은 지난해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4월과 10월 예고된 요금 인상에 따른 전기판매 수입 증가폭을 3조4000억원으로 잡았다. 올해 요금 인상이 취소되면 그만큼 한전의 적자는 늘 수밖에 없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의 국내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을 탄소중립으로 가는 첫 단계로 꼽는다. 전기요금을 원가에 맞춰 인상해 전력 산업을 안정화하고, 확보한 재원을 에너지 전환 비용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윤 당선자의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코로나19 회복을 위한 지원 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쳐 모든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는 데 따른 것인데 윤 당선자가 탈원전 정책의 실패 탓으로 규정한 것부터가 문제”라며 “윤 당선자는 자신의 공약이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자 선거 캠프에서 원자력·에너지 정책분과장을 맡았던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1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가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공약임을 인정했다. 주 교수는 “그 공약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누적돼 사실 1월에 올리는 것이 당연한데 (현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4월로 미룬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다분히 정치적이고, 정치적인 수를 정치적인 수로 대응한 것”이라면서도 “4월 인상 백지화이지 영원히 인상 백지화는 아니니까 언젠가는 올려야 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결국 윤석열 당선자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 4월 인상계획을 취소시키더라도 얼마 안 가서 결국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것은 5월이나 3분기가 시작되는 7월이 될 수도 있고, 이미 예고된 10월 인상분에 덧붙이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주 교수는 10월로 예고된 인상에 대해서는 “그대로 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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