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인 지난해 12월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 기후·에너지컨퍼런스’에 참석해 기후·에너지 정책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자는 “감축 목표를 뒤로 후퇴시키지 않는다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정신을 존중하며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우리들의미래 제공
산업계가 새 정부를 향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낮출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국제협정으로 이미 확정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하향은 사실상 불가능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산업연합포럼(KIAF) 정만기 회장은 31일 오전 한성대에서 열린 연합포럼 주최 ‘전환시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 포럼’에 참석해 “정부가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는 안을 확정했지만 목표 달성이 녹록지 않다”며 “새 정부가 목표 자체를 유연하게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철강협회, 한국전자산업협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한국기계산업진흥회 등 15개 산업별 단체가 규합해 있다.
정 회장은 이날 “우리 경제가 탄소 감축 목표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에는 홍일표 국민의힘 지속가능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기조 발언자로 나서 “전체 에너지의 75%를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충당해야 한다”며 원전 확대론을 펴 산업계를 거들었다. 원전 비중을 늘리면 그만큼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언급한 2030년까지의 ‘2018년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회의(CPOP26)에서 공표하고 다음달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국가결정기여(NDC) 감축 목표’를 말한다. 각국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하향 조정은 2015년 타결된 파리기후협정을 어기는 것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리기후협정은 당사국들에게 3년마다 더 진전된 수준의 엔디시를 다시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엔디시의 후퇴는 협정 위반인 셈이다.
윤석열 당선자가 지난해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목표 하향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벌어지자 한 달 뒤 ‘서울 기후·에너지컨퍼런스’에서
“감축 목표를 뒤로 후퇴시키지 않는다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정신을 존중하며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2030 엔디시는 25일 발효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에도 명시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이날 “기존에 수립된 엔디시는 과학적 근거 미흡,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감축목표 자체는 준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산업계에서 하향 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실제 엔디시가 아닌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대한 노림수란 분석이 나온다. 새 정부가 전환(발전), 산업, 수송, 농업 등 각 부문의 세부적인 감축 계획을 작성하며 감축량을 할당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산업계에게 부과될 책임을 덜려는 포석이라는 얘기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하향 요구는 국내총생산 대비 무역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계속 하는 것은 강화된 목표에 따라 윤석열 정부에서 연도별 부문별 감축목표와 배출권 할당계획을 재조정할 때 산업계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위원은 “이를 통해 초단기적 부담은 줄일 수 있으나, 결국 불과 몇 년내 세계 시장의 흐름에 따라 준비 없이 강제로 감축할 수밖에 없게 돼 국내 산업계에 더 큰 피해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산업 부문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에서 2018년 기준 35%의 높은 비중을 차지해 그만큼 감축 책임도 크다. 산업 부문이 감축을 미룰 경우 미래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로 인한 위험과 고통 부담은 미래의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국장은 “전 사회적인 노력 없이는 결코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없는데, 산업계가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 등 근본적 해결 방안이 없는 원전 확대를 감축 노력을 게을리하는 방패막이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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