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오와주에서 2012년 갑작스러운 돌발가뭄으로 옥수수가 고사해 40조원(357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농무부(USDA) 제공
돌발홍수처럼 기습적으로 닥쳐 며칠 또는 몇 주 만에 토양을 메마르게 만드는 ‘돌발가뭄’(Flash Drought)의 발생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염이나 강수 부족이 선행 원인으로 알려져 기후변화로 돌발가뭄 현상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별안간 발생해 대비하기가 어려운 돌발가뭄은 우리나라에서도 2014∼2018년 5년 동안 10회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와 텍사스공대, 홍콩공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3일(한국시각) “돌발가뭄 발생 빈도는 지난 20년 동안 큰 변동이 없었지만 발생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정상 상태인 지역을 단지 닷새 만에 가뭄 상태로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돌발가뭄이 3~19%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돌발가뭄이 심한 아시아 남부, 동남아시아, 북미 중부 지역은 22~59%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근호에 실렸다. (DOI :
10.1038/s41467-022-28752-4)
‘돌발가뭄’이라는 용어는 지난 2018년 학술 발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크 스보보다 미국 국립가뭄경감센터(NDMC) 센터장이 2000년대 초 처음 사용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돌발가뭄을 “가뭄의 급작스러운 시작 또는 심화"라고 정의하고 비정상적인 고온과 강풍, 복사, 낮은 강수율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돌발가뭄은 생애가 짧아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만 지속된다. 하지만 돌발가뭄이 작물 성장 시기에 발생하면 큰 피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2012년 여름 미국 중부에서 발생한 돌발가뭄은 옥수수 등 작물을 고사시켜 357억달러(40조원)의 손실을 낳았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농작물을 고사시킨 돌발가뭄이 극심했던 2012년 7월 중순 미국 전역의 가뭄 상태를 나타낸 지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제공
연구팀은 전 지구 돌발가뭄 현황을 파악하고 과거 20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인공위성 토양수분 측정을 이용한 세계수문기상학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팀이 시기별로 가뭄을 조사해보니, 돌발가뭄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생 속도가 빨라졌다.
데이터 분석에서 돌발가뭄의 34~46%는 5일 안에 닥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도 한 달 안에 발생했으며, 70% 이상은 반 달 이내에 발생했다.
연구팀은 “돌발가뭄 가속화의 배경 원인은 전 지구 온도 상승으로, 해마다 발생하는 기록적인 온난화 현상들이 돌발가뭄의 전조”라고 밝혔다.
또 연구에서는 돌발가뭄이 습한 상태에서 건조한 상태로 전환될 때 더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습도의 계절적 변동을 겪는 동남아시아나 아마존 분지, 미국 동부 연안과 멕시코만 같은 지역이 돌발가뭄이 잘 일어나는 곳이다.
연구팀은 “토양과 대기 건조가 상존하는 취약한 지역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스보보다 센터장은 “이번 연구에 사용한 첨단 가뭄감지기술과 모델링기술은 돌발가뭄의 영향과 결과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이 지식을 현장 계획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심한 봄 가뭄이 계속된 2015년 5월31일 가뭄으로 모내기를 하지 못한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의 한 논에서 시와 소방서, 기업체 등이 민·관 합동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돌발가뭄이 최근 잇따라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경대 지역자원시스템공학과 남원호 교수 연구팀은 미국 네브래스카 링컨대와 함께 한국의 돌발가뭄 발생 현황에 대해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후반부터 가뭄이 심해져 2015년 연간 강수량(948.2㎜)은 평년 대비 72%에 불과하고 중부지방은 10월까지 내린 비의 양이 평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2017년의 경우 5~6월 영농기에 전국 평균 강수량이 각각 29.5㎜, 60.7㎜로 평년대비 각각 29%, 38%였으며, 중부지방과 충청 이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한 가뭄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연구팀은 연구팀이 돌발가뭄 감지 기준을 4주 이내 정상 시기에서 극심한 가뭄 단계 이하로 심화할 경우로 정의해 분석해보니,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돌발가뭄이 10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 논문은 지난해 <한국수자원학회논문집>에 실렸다.(DOI :
10.3741/JKWRA.2021.54.8.577)
연구팀은 “국내에서 통상 가뭄은 봄을 전후해 발생하는 반면 돌발가뭄은 여름철 강수패턴의 변화와 폭염의 영향 등으로 급격하게 가뭄이 심화됐다 다시 빠르게 해갈되는 경향을 보였다”며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가뭄과 달리 돌발가뭄은 단기간에 가뭄이 발생하고 해갈되기 때문에 돌발가뭄에 대한 감시와 조기경보 기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