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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현재론 1.5도 방어 불가...기후변화 대응 위해선 재원 배분 문제 풀어야”

등록 2022-04-06 04:59수정 2022-04-06 09:16

[단독 인터뷰-이회성 IPCC 의장]
2015년부터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 이끌어
‘제3실무그룹 보고서’ 승인 48시간 지연된 건
탄소가격제 등 각국 정책 직결된 이슈 많아서
이회성 IPCC 의장. 이 의장 제공
이회성 IPCC 의장. 이 의장 제공

5일 0시(한국시각)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3실무그룹(WG3) 6차 보고서의 승인은 애초 계획보다 48시간이 지연됐다. 세계 195개국 정부 대표단은 2주일 동안 63쪽에 이르는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SPM)의 문구 하나하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작업을 벌여왔다. 여러 이견들을 조율해 총회에서 끝내 승인을 이끌어낸 아이피시시 집행부 중심에는 이회성(77) 아이피시시 의장이 있었다. <한겨레>는 4~5일 마라톤 회의를 막 끝낸 이 의장과 이메일 인터뷰로 6차 보고서 승인 과정과 의미 등을 물었다.

이 의장은 지난 2015년 아이피시시 의장에 당선됐다. 추대 형식으로 이뤄진 이전 다섯 차례의 의장 선거와 달리 경선을 통해 선출됐다. 한국인으로 국제기구 수장에 오른 것은 유엔 사무총장,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에 이어 네번째였다. 이 의장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미국 럿거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다. 그간 에너지경제연구원 초대 원장, 세계에너지경제학회 회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자문위원, 계명대 환경대학 학장 등을 지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동생이다.

―지난 4일 승인된 제3실무그룹(WG3) 6차 보고서에서 중점 논의한 사항은 무엇인가? 회의 막바지 48시간 지연을 일으킨 쟁점은 어떤 것이었으며, 어떻게 해결됐나?

“우선 화상회의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승인 총회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세번째로 여는 비디오 화상회의였는데, 전 세계 시간대가 동시에 접속 가능하도록 회의 시간을 2주 동안으로 설정했다. 많은 국가 대표단들이 화상회의의 피로를 토로했다.

또 ‘완화’ 보고서의 성격상 각국의 정책과 직결되는 이슈가 많았다. 탄소가격제도, 선진국 개도국 구분 방법 등등. 각국의 국익보호 차원에서 갑론을박이 길어졌다. 이번 회의 국가대표단 구성원은 상당수가 유엔기후변화협약 책임자들이다. 정치적 협상 시각에서 아이피시시 보고서를 진단하다 보니 쟁점이 많았다. 아이피시시 의장으로서 각국 대표단에게 과학과 정치의 분리를 거듭 당부해야 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제1실무그룹(WG1) 6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인간활동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는 내용이 담겼고, 지난 2월말 제2실무그룹(WG2) 보고서는 “기후 대응(적응)의 미래 목표를 제시하면서 기후탄력적 개발(CRD)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3그룹 보고서의 핵심은 무엇인가?

“보고서 승인 총회에서는 우선 현재의 정책으로는 1.5도(℃) 온난화 저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1.5도 해당 잔여탄소예산은 510기가이산화탄소환산톤(GtCO₂eq)인데 현재 가동 중인 화석에너지 기반의 인프라에서 배출될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은 660GtCO₂eq이다. 대규모 퇴출이 없는 한 1.5도 방어도 불가능하다는 점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하지만 기술적 관점에서 온실가스 감축 전망이 밝다는 점도 담겼다. 탄소가격 톤당 20달러 미만에서도 감축 잠재량이 크다는 것이 확인됐다. 재원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재원 배분의 문제라는 점도 이번 회의를 통해 각국 정부 대표단이 확인한 사항이다. 현재 기후재정의 우선순위가 낮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수요관리의 효과가 이번 보고서에서 강조됐다. 에너지 수요관리로 생활수준 하락 없이 2050년 온실가스를 기준선 대비 40∼70% 줄일 수 있다고 보고됐다. 또한 탄소중립 시스템과 원자재순환 시스템을 접목해야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지난해 10월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사전 개막일. 알록 샤마 COP26 의장(오른쪽 두번째)과 이 의장(오른쪽)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사전 개막일. 알록 샤마 COP26 의장(오른쪽 두번째)과 이 의장(오른쪽)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수요관리 효과 확인은 진전
온실가스 증가율 하락도 희망

―이번 제3실무그룹 보고서로 제6차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 정리되고 종합보고서만 남았다. 이번 6차 보고서들과 지난 보고서들과 다른 점들은 무엇인가?

“제1그룹 보고서의 경우 지역 단위의 기후변화 데이터가 제공됐으며, 기상이변에 대한 불확실성 판정이 새로 도입된 내용이다. 제2그룹 보고서는 127개의 핵심 위험(리스크)을 제시한 점과 1.5도 초과 뒤 이번 세기말에 1.5도로 회귀해도 불가역적 기후영향이 발생한다고 진단한 점이 특징이다. 제3그룹 보고서는 수요관리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이 진전이다. 2도 안정화 때 발생하는 글로벌 혜택이 2도 억제를 위한 글로벌 비용을 초과한다는 분석을 담았다.”

―5차 평가보고서 이후 7~8년이 지났는데, 그사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세계 흐름의 변화와 아이피시시의 성과와 역할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고, 지금까지의 대응 노력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나?

“우선 가장 큰 변화는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또 선진국이 1000억달러의 지원을 약속한 점도 진전이다. 온실가스 증가율이 최근 10년 동안 연 1.3%로 이전 10년보다 하락한 것도 희망적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에너지공급 부문에서 저탄소 기반의 전력생산과 에너지저장기술 확산이 필요하고, 에너지 최종소비 부문에서도 빌딩과 산업 수송의 에너지효율 향상이 필요하다. 농업산림 부문에서의 지속가능한 농업산업도 요구된다.”

기후변화 속도를 대응 속도가 못 따라가
과학·정책의 균형 위한 합의엔 시간 필요

―2015년 10월 취임 뒤 국내 기자회견에서 “아이피시시가 27~28년 진행돼왔지만 정책, 정치 측면에서 거의 진전이 없었다. (파리기후협정 체결에 따른 신기후체제가 도입되면) 이는 기회이며, 해결책(솔루션)이고, 예산(버짓)이 될 것이다. 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변화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변화가 있었나?

“핵심은 속도의 문제다. 기후변화 속도를 기후대응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그 결과로 기후리스크가 현실화했다. 대응 속도는 효율성과 형평성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과학은 효율성의 문제이고, 정책은 형평성의 문제이다. 양자의 균형은 사회적 합의를 의미한다. 사회적 합의 도출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피시시 출범 때부터 봉사해온 관록이 의장이 된 가장 큰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자가 의장에 올랐다는 데 더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었다. 취임 당시에도 “이제까지는 기후변화는 문제점, 비용, 위험 등 개념으로 전달돼왔다” “해결방안과 해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아이피시시가 세계 정책 입안자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탄소가격제도가 각국에 정착하는 데 애쓰시겠다고 했는데, 진전이 있었나?

“현재 다수의 국가가 탄소세 또는 배출권거래제도를 도입했다. 2020년 전 세계 배출총량의 약 20%가 탄소가격제도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또 56개 국가에 온실가스 감축 목적의 기후법이 입법돼 있다. 이들 국가의 총배출량은 2020년 전세계 배출량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기후 관련 소송도 증가 추세에 있다. 주로 선진국이지만 개발도상국에서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2019년 8월8일 이 의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후변화 및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 관련 회의에서 엘레나 마넨코바 WMO 사무차장(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8월8일 이 의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후변화 및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 관련 회의에서 엘레나 마넨코바 WMO 사무차장(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로컬푸드처럼 로컬에너지 시대로 전환
넷제로 선점 국가가 21세기 리더 될 것

―아이피시시 의장으로서 특정 국가에 대한 평가를 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 출신의 네번째 국제기구 수장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조언은 해줄 수 있지 않나 싶은데, 기후변화를 기회로 삼으려면 어떤 정책과 자세가 필요한가?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이피시시 총회에서 탄소중립 배출경로가 담긴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발표됐다. 지구온도를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1.5도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방어하려면 향후 30년간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은 매년 7% 줄어 2050년에는 넷제로 배출 수준, 곧 탄소중립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이산화탄소배출형 에너지 시스템에서 이산화탄소중립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에너지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신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에너지저장, 에너지기술과 디지털기술의 접목, 차세대 원전, 이산화탄소활용 및 저장, 생태계 기반 해법 등등이 있다.

또한 로컬푸드를 선호하듯 로컬에너지를 선호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글로벌공급망 의존형 에너지에서 로컬자립형 에너지 시대로 전환된다. 소수의 국가가 광물자원 등 주요 원자재를 독과점한다면 글로벌공급망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될 것이다.

로컬자립형 에너지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21세기는 탄소중립화 경쟁시대이다. 넷제로를 선점하는 국가가 21세기 리더가 될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 분석을 보면, 세계 최상위 1% 부유층의 탄소 배출량은 하위 50% 극빈층 배출량의 2배 이상이다. 또 지난 2월 발간된 제2실무그룹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는 성별, 인종, 민족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치며, 이는 모두 경제적 취약성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이피시시에서 정책결정자들한테 권하는 정책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경제적 취약성 해결은 모든 국가의 기본 과제이다. 기후변화 적응이건 감축이건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부유층과 극빈층 탄소배출량 비교가 의미하는 기후정책은 소비 탄소의존도의 최소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부유층, 중산층, 극빈층 누가 소비를 하든 소비 1단위당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최소가 되거나 제로가 되도록 기술발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소득계층별 적정탄소배출량은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아이피시시는 형평성 공정성 효율성에 기반한 기후정책과 행동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차적으로 석탄화력발전의 퇴출을 약속하고 실천에 나서는 한편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약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화석연료 퇴출 속도를 늦추거나 원자력의 유지 내지 확대를 내세우는 국가들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권 교체로 원자력에 대한 의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번 제3 실무그룹 회의에서 어떻게 논의됐나?

“이번 승인된 제3실무그룹 보고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완료돼 논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또 보고서는 원자력을 저탄소에너지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비용은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으며,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에너지의 탄소의존도는 연 0.3% 감소하고 있다. 같은 기간 원유 가격은 큰 폭으로 변동했으나 에너지의 탄소의존도 감소는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원유 가격변동은 계속 발생하며 에너지안보 이슈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으로의 여정 또한 계속될 것이다.”

―아이피시시 보고서 내용이 전반적으로 비관적이고 암울한 얘기들이 많다고들 한다.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는 희망적인 과학적 근거는 없나?

“제1그룹, 제2그룹 보고서가 기후변화의 과학적 사실을 알리고 더 악화될 기후변화 미래를 전망하기 때문에 암울한 것은 사실이다. 제3그룹의 초점은 대응 방안으로,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희망적 메시지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기후대응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 의료, 국방, 고용, 안전 등 우선순위를 선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희망적 시그널은 지난 10년간 글로벌 배출증가율이 감소했다는 것인데 증가율 감소에서 증가량 감소로 빨리 변해야 탄소중립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피시시 출범 때부터 참여해 6차 보고서 의장을 맡고 있다. 의장으로서 감회는? 한국 전문가들의 아이피시시 활동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향후 어떤 활동이 필요한가?

“아이피시시에 참여하면서 늘 기후변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문제는 분명한데 왜 대응행동은 느린가’ 하는 것이 늘 화두이다.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성공하기 위해 아이피시시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도 고민의 하나다.

아이피시시 제1차 보고서에 저자 등으로 참여한 한국 학자가 한 명도 없었던 데 비해 이번 6차 보고서에는 총괄주저자를 포함해 18명이 참여했다. 그만큼 연구 성과가 많아졌다는 것을 반영한다.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꾸준한 연구만이 답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2월17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IPCC의 2017년 계획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이회성 IPCC 의장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6년 2월17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IPCC의 2017년 계획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이회성 IPCC 의장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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