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의 새로운 고기후 모델 시뮬레이션과 화석 및 고고학 자료를 종합해 계산한 호모 사피엔스(왼쪽 보라색 음영),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운데 빨간색 음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오른쪽 파란색 음영)의 선호 서식지이다. 음영 값이 옅을수록 서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입된 날짜는(1ka=1950년 기준으로 1000년 전) 연구에 사용된 가장 최근의 화석과 가장 오래된 화석의 나이를 나타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세계는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된 온실가스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기후변화는 발생했다. 지구는 태양을 타원형으로 돌고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주기적으로 기후가 바뀐다. 국내 연구진이 인위적 기후변화로 대멸종을 우려하고 있는 현재의 인류가 역설적이게도 과거 자연적 기후변화 때문에 탄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단장 악셀 팀머만 부산대 교수)은 13일(현지시각) “화석 등 고고학 유물 자료와 200만년의 지구 기후 시뮬레이션 모델을 결합해 기후변화가 현생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한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이날치에 실렸다.(DOI :
10.1038/s41586-022-04600-9)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형으로 공전하는 궤도는 10만년과 40만년의 주기로 시간에 따라 변한다. 또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도 바뀌고 2만년을 주기로 흔들린다(세차운동). 이에 따라 빙하기를 만들기도 하고 지구상 가장 큰 열대 강우대(열대수렴대)를 이동시켜 습하고 건조한 기후 상태를 번갈아 일으킨다. 이런 기후 조건의 변화는 식량을 찾아야 하는 인간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기후물리연구단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인류 종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초기 인류가 선호한 기후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은 누구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200만년에 걸친 기후 자료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축하고 방대한 고고학적 자료와 결합해 인류종의 서식지를 추정해냈다.
서식지 모델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류 종들이 존재했을 확률을 구한 결과(파란색 음영). 점들은 각 인류 종들의 화석 및 고고학 자료 발견 지역.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3200개 지점 고고학 지도와 인류종 서식지 확률 구해
연구팀은 우선 실제로 어떤 인류종이 어디에 살았는지를 조사했다. 이탈리아 나폴리대의 파스칼레 라이아 교수 연구팀은 과거 200만년 동안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포함해 3200개 지점의 인류 역사에 대한 편집본을 만들었다.
다음 연구팀이 할 일은 이들 고대 인류가 살았던 지역의 고기후를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믿을 만한 고기후 자료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구팀의 윤경숙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위원은 기초과학연의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이용해 지구 기후 시스템이 과거 지구궤도의 변화, 대기중 온실가스, 대륙 빙하의 발달과 쇠퇴 등 변화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6개월에 걸쳐 시뮬레이션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실시된 것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고 긴 200만년의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일 것”이라고 밝혔다. 시뮬레이션에서 추출한 온도와 강우, 식생조건을 화석과 고고학 기록에 나타난 고대 인류의 시기 및 서식지와 비교하니 정확히 일치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종의 서식지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은 특정 인류 종이 과거에 특정 시기와 장소에 존재했을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었다.연구팀은 300만년 전 동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출현한 호모 종 곧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가 어디에 서식했는지를 추정했다. 악셀 팀머만 단장은 “분석 결과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균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서식지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종이 다방면으로 적응 가능한 종이라는 기존의 견해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도출해낸 인류 종들의 서식지 확률과 실제 화석과 고고학 자료가 발견된 장소는 잘 맞아떨어졌다.
연구팀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스가 우리 직계 조상이며, 2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아프리카에서 출현한 것으로 추정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200만∼100만년 전 초기 아프리카 호모 종들은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좁은 기후 서식지에서 산 반면 네안데르탈인의 서식지는 주로 유럽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약 80만∼16만년 전에 존재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남아프리카, 동아프리카와 유라시아 지역에서 살았다.연구팀은 기존의 연구와 이번 연구를 연관지어 분석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우리 종(호모 사피엔스)을 포함한 후기 플라이스토세(신생대 제4기의 전반, 258만∼1만2천년 전) 인류종의 발전에 핵심적 구실을 한 고대 인류 혈통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연구팀은 2019년 <네이처> 논문에서 유전적 분석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가 남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연구팀은 주요 빙하기가 시작된 68만년 전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대륙으로 나뉘어져, 유라시아에서는 데니소반종과 네안데르탈인으로 분화되고 아프리카에서는 3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세웠다.이후 10만∼5만5천년 전에 아프리카 밖으로 흩어진 호모 사피엔스는 유럽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반과 교배를 해 현존 인류 중 많은 사람들이 유전적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유라시아를 떠돌던 유랑 집단은 매우 건조하고 추운 지역에 적응하면서 정교한 석기와 불을 통제하는 능력을 통해 환경에 적응해갔는데, 네안데르탈인은 뇌가 가장 큰 반면 특정 서식지에만 산 데 견줘 호모 사피엔스는 적응과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 가장 혹독한 기후 조건에서도 살아 남았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악셀 팀머만 단장은 “현재 인류가 지금의 우리일 수 있었던 것은 인류가 과거 기후의 느린 변화에 수천년 이상 적응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 시뮬레이션에서 수십만년 동안 가장 추웠던 빙하기에도 5도 차이밖에 안 났는데 지금 진행되는 기후변화는 100년 사이에 5도가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인류의 조상들이 기후변화를 이주를 통해 적응했듯이 우리도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