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월31일부터 4월13일까지 남극 라슨빙붕B가 쪼개지고 무너지는 인공위성 사진. 미국항공우주국(나사) 제공
남극은 면적이 1420만㎢에 이르고, 대부분 평균 1.9㎞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다. 지구상 물의 70%를 포함하고 있다. 모두 녹으면 전 지구 해수면이 60m 상승할 정도의 양이다. 최근 남극 빙붕(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 있는 몇 ㎞ 두께의 얼음덩어리)의 붕괴가 잇따르면서 갖가지 원인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유력한 가설은 남극 연안 대륙붕 해역의 심층으로 어는 점보다 수온이 높은 따뜻한 바닷물(환남극 심층수)이 흘러들어 빙붕의 아래쪽이 녹으면서 빙붕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가설도 제기돼 남극 빙붕의 붕괴를 한가지 원인으로만 해석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프랑스, 벨기에, 독일,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 다수 국가 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최근 1995년 발생한 남극 라슨빙붕A와 2002년의 라슨빙붕B의 붕괴가 ‘대기의 강’ 때문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연구팀은 <네이처>가 발간하는 학술지 <지구와 환경 커뮤니케이션> 15일(현지시각)치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난 20년 사이 남극 반도의 두 빙붕이 빠르게 붕괴한 것은 따뜻하고 습한 거대한 공기덩이, 곧 대기의 강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밝혔다.(DOI :
10.1038/s43247-022-00422-9)
대기의 강은 상공에 대량의 따뜻한 수증기가 띠 모양으로 흘러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주로 큰 규모의 정체 고기압과 저기압 폭풍 시스템이 만날 때 합류지점에서 좁고 습한 공기가 형성된다. 대기의 강은 기압계 변동과 어우러져 대홍수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대기의 강을 감지할 수 있도록 특별히 개발한 컴퓨터 알고리즘, 기후모델, 인공위성에서 포착된 사진 등 여러 도구를 사용해 대기의 강이 남극에 도착할 때 경로를 확인하고 추적했다. 그 결과에 라슨빙붕A 붕괴 직전인 1995년과 라슨빙붕B 붕괴 직전인 2002년에 태평양에서 발원한 대기의 강이 남극에 도달했음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대기의 강이 며칠 동안 빙붕 표면을 녹일 수 있고 녹은 물이 얼음의 갈라진 틈에 흘러들어 가면 다시 얼어 팽창하고 균열을 더욱 넓힌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이런 수압파쇄 현상이 반복되면 빙붕은 결국 붕괴하고 만다는 것이다.
또 대기의 강은 바다의 해빙을 녹이고, 대기의 강과 연관된 바람이 해빙을 빙붕으로부터 멀리 밀어내면 붕괴 과정을 촉진할 수 있으며, 파도가 빙붕을 뒤흔들어 더욱 스트레스를 받도록 한다고 연구팀은 덧붙여 설명했다.
논문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조너선 윌리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 기상기후학자는 “대기의 강이 남극반도 빙붕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의 하나임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면적이 4만4천㎢로 남극에서 네번째로 큰 라슨빙붕C는 아직 온전한 상태지만 결국 라슨빙붕A·B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으로 예견했다. 윌리는 “빙붕C의 융해가 아직 심각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빙붕에 비해 남쪽에 위치해 더 춥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가 더 따뜻해지면 대기의 강이 더욱 강해질 것이고 라슨빙붕C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위험에 놓일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2002년 이후 남극반도에서 빙붕 붕괴가 추가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기의 강이 2000∼2020년 사이 발생한 21건의 거대 빙산 분리 현상 가운데 13건을 촉발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캐서린 워커 미국 우즈홀해양지질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논문은 단기간의 기상현상이 빙붕을 급변점(티핑포인트)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 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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